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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기다려 준 이웃

빈 배는 말이 없고

by 박기복

오늘 점심 때의 일이다. 집 근처 돈가스 맛집에 가기 위해 지갑을 챙기고 신발을 신으며 문 앞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를 호출하기 위해서다. 집을 나서며 문을 여는데 마침 배송된 생수 2박스가 보였다. 남편이 박스를 집 안으로 들였고 나는 문이 닫히지 않도록 잡아주었다. "엘리베이터 어디쯤 왔나 봐 봐." 남편의 말에 그제야 고개를 내밀어 엘리베이터 쪽을 봤다. 이럴 수가. 엘리베이터가 도착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어느 여성분이 열림 버튼을 누른 채 조용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화들짝 놀라며 급히 엘리베이터를 탔다. "죄송합니다." 남편도 뒤이어 타며 한 번 더 사과를 했다. 우리와 같은 층에서 내린 그분은 안녕히 가시라고 웃으면서 인사까지 건네주었다. 이렇게 친절할 수가. 반대의 경우라면 나는 아마 속으로나마 짜증을 냈을 것이다. 뭐야, 왜 안 나와 하다가 몇 초만에 닫힘 버튼을 누르고 내려갔을지 모른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애쓰며 산다. 남들이 내게 폐를 끼치는 것도 싫다. 내 수준의 역지사지란 내가 당하기 싫은 짓은 남들에게도 행하지 말자 정도이다. 그렇게 신경 써도 오늘처럼 본의 아니게 작은 피해를 끼치며 산다. 의도한 바도 아니고 알아차린 순간 더없이 미안함을 느끼는데 만약 상대가 화를 냈다면 무안함 끝에 마음이 상했을 것이다. 웃으며 받아준 이웃 덕에 새삼 나를 돌아보게 된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떤 사람이 강에서 나룻배를 타고 노를 저으며 여유를 누리고 있는데 뒤에서 다른 배가 '쿵'하고 와서 박는다. 좀 전까지 평화로웠던 마음은 온 데 간데없고 누가 와서 내 배를 박은 거야? 분노가 치민다. 조심성도 없이 내 평화를 방해한 자는 누구인가!! 인상을 쓰며 돌아보는데, 눈에 들어온 것은 아무도 타고 있지 않은 빈 배다. 그저 물살에 떠밀려 와서 나에게 부딪쳤을 뿐. 분노는 한순간에 사라진다. 이른바 '빈 배 이야기'


우리가 상대에게 화가 나는 것은 내가 입는 피해가 상대의 의도를 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리라. A라는 행동이 나를 화나게 하는 건 그 A자체가 아니라 그 배경에 깔려있(다고 본인이 추측하)는 상대의 생각 때문이다. 빈 배 이야기는 분노가 상대가 아니라 내 생각에서 비롯됨을 일깨워 준다. 상대의 작은 실수에 과민한 반응을 보이는 일을 경계해야 한다는 가르침도 준다.

5개월 전에 이사를 왔다. 첫날부터 층간 소음으로 고초를 겪었다. 새벽과 늦은 밤을 가리지 않고 쿵쿵대는 통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린 아이들이 뛰노는 소음이 아니라 이른 바 '발망치'였다. 마치 뒤꿈치로 못이라도 박는 양 쿵쿵 찍으며 걷는 위층 이웃을 향한 미움은 점점 커져갔다. 일주일 정도 기다렸다가 말을 골라가며 조심스레 쪽지를 남겼다. 몰랐는데 미안하다고 주의하겠다는 답장이 왔다. 며칠 좀 괜찮아지는가 싶었지만 이내 마찬가지였다. 낭패감을 느꼈다.


층간 소음으로 칼부림이 난다는 말이 이해가 갔다. 머리 위에서 울려대는 진동은 사람을 굉장히 예민하게 만든다. 근데 가만 생각해 보면 소리나 진동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알면서도 일부러 그런다고 생각하니 더 약이 올라서 화가 났던 것 같다. 의도가 개입되었다고 느끼는 순간 분노 버튼은 여지없이 눌린다.


3월이었는데 당시 시즌2 개봉으로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 <더 글로리>를 보면서 아, 내가 문동은(송혜교)이었으면 위층의 윗집 이웃과 친해져서 그 집 거실에서 신나게 뛰면서 복수해 줄 텐데 하는 어이없는 상상도 했었다.(미모가 부족해서 불가!) 지금도 소음은 여전하지만 분노는 많이 누그러졌다.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 그저 걷는 습관의 문제려니 생각을 하니 짜증은 나도 분노와 원망까지는 가지 않는다.


수십 세대가 한 건물에서 벽과 천장, 바닥을 공유하고 같은 엘리베이터를 나누어 탄다. 이웃의 위험은 나와 직결되고, 재해라도 일어난다면 같은 대피소로 이동할 처지다. 비록 통성명도 않고 지내지만, 공동 운명체인 셈이다. 나도 언제든 남에게 피해를 끼칠 수 있다는 생각, 아무리 조심해도 실수는 벌어지고 내 의도와 무관하게 다른 사람을 화나게 만드는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조금은 겸손한 마음이 된다. 차감을 대비해 미리 적립하는 포인트처럼 그렇게 배려와 양보, 친절을 차곡차곡 적립해 볼까나. 이웃의 작은 친절에 이렇게나 배우는 게 많다. (2023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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