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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길들인 어플, '꾸주니'

내가 가진 가장 중한 것, 에너지

by 박기복

내가 비록 기복이 심해 필명마저 박기복이라 하였지만, 평탄하게 꾸준한 사람이고 싶은 소망마저 없는 것은 아니다. 일상 속에서 작은 루틴들을 만들어가려고 애쓰는 것도 그러한 소망에서 비롯된다. 루틴한(어법에 맞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으나) 삶의 최대 장점은 에너지 소모가 적다는 점이다. 수없이 마주하는 갈림길 앞에서 이거 할까 저거 할까, 지금 할까 나중에 할까 주저하고 망설일 필요가 없으니까. 마치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기계처럼 일말의 미적거림 없이, 오늘만 하지 말까 올라오는 마음을 누르려 스스로를 설득할 필요도 없이, 나의 중한 에너지를 곱게 보존할 수가 있다는 말이다.


한때는 가장 귀하게 써야 할 것은 시간이라고 생각했었다. 한 번 지나간 시간은 절대 돌아오지 않고 누적된 시간의 힘이면 뭐든 해낼 수 있다고 믿었으니까. 그렇다고 매 순간 알차게 살았느냐 하면 쩝. (인생이 어디 마음먹은 대로 되더냐. 지향점이 그러했다는 거다.)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가진 가장 중한 것은 에너지다. 뭐라도 하고 싶은 마음, 할 수 있는 마음 상태. 의욕이나 열정으로 바꾸어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므로 에너지가 없는 상태란 체력 저하가 아니라 마음이 무기력한 상태이고, 내가 끔찍하게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그 무기력이다.


물리적으로 아무리 시간이 주어진다 한들 에너지가 방전되면 무소용이다. 그저 널브러져 있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으니 그 앞에서 시간을 알차게 쓰라는 요구는 폭력에 가깝다. 하여 나는 에너지 지킴이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좋은 습관 만들기에 지대한 관심을 두며 살고 있다. 건강한 식습관, 운동 습관, 멘털 케어를 위한 작은 노력들을 몸에 익혀서, 일부러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아도 일상이 술술 굴러가게 만드는 것. 이것은 더없이 훌륭한 노후 준비이기도 하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노년을 보내기 싫은 사람이 있을까?


올초 애플 앱스토어에서 찾아낸 보물 같은 어플은 '꾸주니-30일 챌린지'이다.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 뭔가를 꾸준히 하도록 도와주는 어플이다. 이것 말고도 같은 목적으로 어플 몇 개를 더 깔았지만 결국 이것만 남겼다. 나머지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는데 내 경우에 그렇다는 것이고, 결국 이 글도 어딘가에 있을 나랑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습관 만들기에 큰 관심이 있으며 시각적 자극이 중요한-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쓰는 글이다. 6개월째 꾸준하게 사용하고 있고 당연히 어플 제작자와는 일면식도 없다.


꾸주니의 규칙은 아주 단순하다. 습관으로 만들고 싶은 것을 제목칸에 쓴다. 그리고 매일 꾸준히 그것을 하면 된다. 30개의 동그라미에 30개의 스티커를 붙이면 완성이다. 어린 시절에 했던 포도송이에 포도알 채우는 거랑 뭐가 다르냐고? 실은 같다. 하지만 꾸준히 하게끔 만드는 깨알 같은 장치들이 있다. 참으로 스마트하다.


일단 스티커가 귀엽다. 붙일 수 있는 스티커는 여러 종류이지만 처음엔 대부분 비활성화 상태다. 스티커를 부착해 나가면 5개마다, 10개마다, 또는 나름의 룰에 근거해서 새로운 종류의 스티커가 하나씩 활성화된다. 보상을 주는 것이다. 오늘은 어떤 스티커를 붙일까 선택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시각적 자극이 중한 사람이라야 공감할 것이다.) 알록달록 스티커가 채워져 나갈 때는 은근히 뿌듯하다. 한쪽 구석을 누르면 화면이 전환되어 스티커가 아닌 부착한 날짜들이 표시된다. 날짜를 보면 주기를 파악해 볼 수 있고 통계를 낼 수도 있다. 유료버전에 한해서지만 간단한 메모도 가능하다.

꾸주니는 단순하되 단호하다. 한번 정한 제목은 절대 바꿀 수 없고, 하루에 오직 하나만 붙일 수 있고, 오늘 것은 오늘만 붙일 수 있다. 지나간 것을 소급해서 붙일 수도 없고 오늘 의욕이 앞선다고 미리 여러 개를 붙일 수도 없으며 중간에 어물쩍 제목을 바꿔가며 의지를 희석시킬 틈도 주지 않는다. 최소 한 달을, 꾸준히 행할 뿐만 아니라, 매일 어플을 열어 스티커를 골라 붙여주는 일도 잊으면 안 된다. 오늘이 지나면 오늘 것은 영원히 붙일 수 없기 때문에 어플에 대해 충성도가 높아지고 그래서 자주 들락거리다 보니 그게 동기 부여 작용을 하는 선순환이 일어난다.

30개를 채우면, 금테를 두른 상장이 발급된다.(이미지 파일) 그게 뭐라고 기분이 좋다. 무료버전은 챌린지를 3개까지만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얼마 전 pro 버전(유료)이 나왔다. 오픈기념 50% 할인가는 1,500원. 한번 구매하면 영원히 사용가능하다. 물론 나는 유료 버전을 구입해서 쓰고 있다. 하지만 큰 욕심을 내지 않고 5개 정도의 챌린지를 진행 중인데 운동, 명상, 음악감상(아니 이런 것도 챌린지라니) 나머지는 두 개는 비밀이다.


활용 꿀팁을 한 가지 전수하자면 (무료 버전 기준) 3개의 챌린지를 모두 의욕적인 행동습관으로 채우면 안 된다는 거다. 하나 정도는 웬만하면 매일 붙일 수 있도록, 기분 상태 체크용이라던가 마음먹기용 정도로 활용하면 좋다. 매일 들어가서 하나씩 스티커를 골라 붙이는 맛을 들이는 게 중요하다. 어플을 자꾸 들락거리다 보면 어서 서른 개를 붙여서 챌린지를 완성하라는 목소리가 들려올 것이다. 믿지 않을지 모르지만 스티커를 붙이려는 마음 하나로 운동하러 갈 때도 많다. 내 나이 마흔을 넘긴 지 오랜데. 풋.


여기까지 글을 다 읽은 사람이라면 속는 셈 치고 한번 무료 버전을 깔아보시라. 당신이 잘 만들어둔 습관들이 당신 에너지의 누수를 막아줄 것이니... (2023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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