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치앙마이 여행기
여름휴가차 치앙마이에 다녀왔다. 최근 몇 년 새 치앙마이가 여행지로 각광을 받는 것 같기에 관심이 생겼다. 트민남(트렌드에 민감한 남자) 전현무만큼은 아니어도 나 역시 뭐가 유행이다, 핫하다 싶으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이긴 하다. 그놈의 호기심.
8월 초 4박 6일 일정으로 계획하고 항공과 숙소는 진작 예매해 두었다. 구체적인 여행 계획은 떠나기 직전에야 세웠다. 계획적인 사람들은 일정을 다 정하고 숙소를 잡는다던데 나는 급한 마음에 숙소부터 잡고 느긋하게 준비를 미룬다. 남편은 한술 더 떠 나의 등에 빨대를 꽂고 무임승차를 기다린다. 뛰는 놈 위에는 항상 나는 놈이 있는 법.
가고 오는 데 쓰는 시간을 빼면 순수하게 여행 기간은 나흘이었다. 그 나흘의 일정을 구성하는 기본은 식사-커피-마사지의 3요소다. 아주 작은 비율로 쇼핑이 끼기도 하지만 남편도 나도 쇼핑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아기자기한 소품이 정말 자주 눈에 띄었지만 구매욕구를 한 방에 잠재우는 나름의 주문이 있었으니 '예쁜 쓰레기'였다. 한때 예쁜 쓰레기 예찬론을 펼치기도 하였으나 이미 충분하므로 워워.
남편은 가기 전부터 마사지 타령을 했었다. 태국 하면 마사지 아니냐고, 1일 1마사지를 받자고. 반가운 소리였다. 한국에서는 1시간 마사지를 받으려면 못해도 5만 원 내외로 지불해야 하는데 치앙마이에서의 마사지 최저가는 1시간에 1만 원이 채 되지 않는다. 마사지받는 게 남는 거다 하면서 신나게 받으러 다녔다.
그리하여 여행에서 돌아와 보니 어디 명소는 간 기억이 없고 그저 식사-커피-마사지의 3요소만이 남았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기억 하나를 남기는 것으로 치앙마이 여행기를 대신하련다. 주제를 간결하게 유튜브 썸네일 식으로 표현하자면 '태국 재소자에게 마사지받은 썰 푼다.'
첫째 날 마사지받을 곳을 물색하다가 퇴짜를 맞은 곳이 있었다. 4시 반까지만 영업인데 이미 예약이 다 찼다는 거다. 관광지인데 영업을 참 짧게 하는구나 싶어 물러나며 내일 마사지를 미리 예약할 수 있냐고 물었다. 고개를 가로저으며 내일 아침 8시에 와서 줄을 서란다. 꽤나 까다롭네 하며 구글로 리뷰를 검색해 보니 놀랍게도.
치앙마이 여자 교도소 재소자들의 사회 복귀를 돕는 차원에서 재소자들이 마사지사로 고용되어 운영되는 곳이었다. 넓은 부지에 카페와 함께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공간이 있고 알록달록한 글씨로 women’s prison라고 적힌 간판이 있기에, 들어가면 나가지 못할 만큼 좋은 곳인가 보다 생각했는데 그게 진짜 교도소를 뜻할 줄이야.
구글 리뷰는 호평 일색이었다. 금액도 치앙마이 최저가인 250밧(우리 돈 1만 원 미만). 가성비를 중시하는 남편의 표정은 이미 결연했다. 약간의 노파심(재소자라고라…)이 일어나는 것을 구글 평점으로 누르고 누군가의 제2의 삶을 응원하는, 조금은 근사한 일을 해보는 마음을 보태 다음날 그곳을 찾았다.
9시 반쯤 마사지샵에 도착했다. 희망하는 메뉴를 택하니 11시 반으로 시간이 지정되었다. 더 늦게는 안 되냐 물으니 '순차적으로 받는 게 규칙'이라는 문구를 손으로 가리키며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10분 전 도착하라는 지시도 잊지 않았다. 순순히 금액을 지불하고 시간을 때울 카페로 이동하며 툴툴거렸다. "어제부터 되게 빡빡하네." 남편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저기 카운터 보는 사람 마사지샵 사장님 아니야. 교도관이야."
카페에서 대기하던 우리는 정확히 11시 19분에 마사지센터에 도착했다. 간단한 세족과 환복의 과정을 거쳐 드디어 마사지실로 이동했다. 사람들을 안심시킬 목적에서인지 구분 없이 탁 트인 넓은 공간에 놓인 11개의 침대마다 마사지가 한창이었다. 내부 곳곳에는 감시카메리가 돌아가고 있었다.
내게 배정된 마사지사는 앳되고 밝아보였다. 일단 안심이었다. 편견에 맞서기 위해 연습했을 미소, 훈련된 친절일지 몰라도 언어가 통하지 않는 사이일수록 미소의 힘은 큰 법이다. 마사지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눌러야 할 곳을 정확히 힘 있게 누르는 실력자의 솜씨였다. 재소자라고 하는데 무슨 죄를 지었을까, 궁금했다.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았다. 흉악범일리는 없겠지, 그런 사람을 외부 활동에 데려올 리는 없잖아? 내 마음이 편해지는 쪽으로 생각을 굴렸다. 절도범이거나 어쩌면 사기? 돈을 빌렸다가 못 갚아도 사기죄에 해당되니까. 중범죄는 아닐 거라 생각하면서도 마사지받는 내내 묘한 긴장이 흘렀다.
1시간의 마사지가 끝나고, 주섬주섬 일어나려는데 그녀가 다가와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두 주먹의 엄지 손가락을 세운 채였다. 해피해피 굿굿. 남편은 자기 후기 잘 써달라는 소리 같은데?라고 농담 섞어 폄하했지만 나는 그게 아니라고 확신한다. 몸 이곳저곳을 눌러 신체의 피로를 풀어주고 종국에는 환한 미소와 응원으로 마음까지 풀어주려 했다고 나는 믿는다.
마사지 내내 이 사람은 무슨 죄를 지었을까, 재소자라고 의식한다는 사실을 들키지 말아야지, 따위의 생각을 했던 게 조금 미안해졌다. 다음 날 우리는 한번 더 그곳을 찾았다. 첫날 만난 그 마사지사를 또 만나지는 못했고 두 번째 만난 마사지사는 해피해피 굿굿에 버금가는 비슷한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젠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지만 자그마한 몸집과 해피해피 굿굿이라고 했던 다정한 목소리는 어렴풋하게나마 기억이 난다.(이젠 글도 썼으니 더 오래 기억되겠지.) 출소가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그쪽이야말로 언제나 해피해피 굿굿 하시기를!
나흘 동안 총 8시간 30분의 마사지를 받았다. 여행 경비 중 마사지에 쓴 돈이 가장 많을 것이다. 최저가 마사지만 받은 것은 아니었으니까. 내 몸의 근육들이 호사를 누리며 나흘을 보냈다. 반전은, 귀국길 제주항공 이코노미석에서 꼬깃꼬깃 구겨진 채 다섯 시간 넘게 실려오느라 만신창이가 되었다는 사실. 집으로 가기 위해 인천공항 밖으로 나오자마자 뜨거운 열기가 훅 끼쳤다. 아 이거였지, 익숙한 열기. 여행은 짧고 인생은 길다.(2023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