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에는 이야기가 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세계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제목을 참 잘 짓는 것 같다. 들으면 잠깐이나마 마음이 사로잡히거나(밤의 해변에서 혼자,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 의미를 곱씹다 보면 여운이 남는다.(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그중에서도 내게 가장 인상적인 제목은 ‘강원도의 힘‘인데, 노골적인 듯 모호해서다.(정작 영화 내용은 모름)
강원도는 언제 와도 좋아, 어쩐지 끌려. 이런 말을 뱉으면서 강원도에는 어떤 ‘힘’이라도 있는 걸까, 있다면 그게 뭘까 하는 영화와는 영 무관한 생각을 하곤 했다. 사설이 길었는데 강원도를 아주 좋아한다는 소리다. 최애 도시 속초를 비롯해 춘천, 원주, 강릉, 평창, 철원, 인제, 양양까지 다 좋았고 기꺼이 N차 방문할 의사가 있다.
3월 초 남편의 옆구리를 찔러 1박 2일로 또 강원도에 다녀오게 되었다. 자율 연수 휴직도 신청해 두었겠다, 급할 것 없는 마음이라 겨울 방학 동안 여행을 다녀오지 않았더니 엉덩이가 들썩거리던 참이었다. 남편의 금요일 휴무, 이번엔 영월이었고 기억하는 한, 나의 첫 번째 영월이었다. 동네 산책조차 갔던 길 그대로 돌아오는 걸 싫어하는 남편의 제안이었다.
영월은 미지의 도시일뿐더러 그다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지도 않았다. 다만 어디든 가고 싶어하는 내 기분을 맞춰주려 피곤한 몸을 움직이시는 남편님의 하해와 같은 은혜에 망극하여 기꺼이 응했을 뿐이었다. 당일 아침에야 여행지가 결정되었으니 할 일이 많았다. 조수석에 앉아서 검색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정할 것은 숙소였고 제일 중요한 것은 식사였다. 소도시 여행의 아쉬운 점은 역시나 숙소. 숙박앱을 통해 리뷰가 좋은 모텔을 예약했다.
10시가 넘어 나서는 바람에, 도착하면 바로 점심을 먹어야 했다. 포털에서 영월 맛집을 검색한 끝에 찾아낸 곳은 ‘산속의 친구들’이라는 식당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육류 위주의 화려한 식단을 골랐을 텐데 그즈음은 남편의 건강이 이슈였을 때라 최대한 건강한 메뉴를 선택했다. 네비를 따라가다 보니 식당 이름처럼 길은 산을 향해 나 있었고 막판에는 일방통행도 아닌데 외길이었다. 반대편에서 차가 오면 어쩌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식당에 도착했다.
외딴 산속에 있는 식당이지만 꽤나 넓은 주차장에는 차들이 이미 여럿이었다. 일단 안심이었다. 평일 점심인데 사람들이 찾는 곳이라면 기대를 품어도 되겠다 싶어졌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과연 이미 식사 중인 사람들이 많았는데 연령 분포로 보니 우리 부부가 젊은 축이었다. 큰 창이 여러 개 나있는 식당은 따뜻하고 정갈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메뉴는 한 가지였다. 강원나물밥 한상차림. 음식은 무척 맛있었다. 모든 게 과하지 않고 자연스러웠다. 간이 센 것도 아닌데 손맛 덕인지 상에 깔린 모든 접시에 바쁘게 손이 갔다. 떡갈비와 두부김치, 샐러드를 먹다가 나중에는 특제 고추장을 넣어서 비벼 먹으라는 안내에 충실히 따랐다. 서빙을 해주시는 직원분이 음식에 대해 설명하시는데 식당에 대한 긍지가 느껴졌다. 기쁘게 일하는 사람들이 뿜어내는 에너지가 있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일어섰다. 계산대 앞에 서니 주방으로 난 긴 창이 보였다. 주문받은 음식이 오고 가는 통로였다. “맛있게 잘 드셨어요?” 환하게 웃으면서 인사하시는 분이 손맛의 장본인인 듯했다. 그제야 식당벽을 둘러보니 인간극장에도 출연한 적 있으신 모양이다. 처음 느꼈던 식당의 분위기가 일하는 분들과 무관할 리 없을 터다. 너무 맛있게 잘 먹었다고 웃으며 인사하고 가게를 나왔다. 그리고 늘 그렇듯 남편에게 물었다. “어땠어?”
머리를 박고 우걱우걱 바닥까지 긁어먹고도, 맛이 어땠냐 물으면 열에 여덟은 “별로!”라고 일갈하듯 말하는 남편이다. 먹는 동안 맛을 내색하지 않는 남편의 넓은 아량(?)이 감탄스럽기도 하고 재밌기도 해서 꼭 식당 밖으로 나와서 묻곤 한다. 한 번은 나의 질문에 "이 가게는 우리와 함께할 수…(두 호흡 정도 고른 후) 없습니다!” (쇼미더머니 심사 방식 참고)라고 말해서 한참 배를 잡고 웃었던 적도 있다.
“맛있네. 그동안 자기가 데려온 식당 중 탑급이야.”
이런 반응은 일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희귀한 것이라서 대단한 칭찬이라도 받은 듯 기분이 좋아졌다. 게다가 치른 금액이 4만 원이라고 했더니 가격도 합리적이라며 또 감탄을 쏟아냈다. 차를 타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동안에도 식당에 대한 우리의 찬사는 이어졌다. 이제 보니 영월 여행은 시작부터가 참 좋았다.
영월에 대해 알지 못했던 나와 달리 남편에게는 처음부터 염두에 둔 목적지들이 있었다. 가장 먼저 '한반도 지형'으로 향했다. 하천의 침식 작용에 의해 생겨난 지형이 마침 한반도 모양을 빼다 박아서 이런 이름이 붙은 거였다. 거북 바위니 용두암이니 하는 것과 같은 방식의 작명이지만 책에서 보던 지도를, 수업하며 칠판에 수백 번은 그렸을 한반도를 탁 트인 전망대에 서서 내려다보니 어쩐지 웅장해지는 기분이었는데 그 정체는 아마도 국뽕이었을 것이다.
다음 목적지는 선돌이었다. 말 그대로 서 있는 돌인데 그 크기가 워낙 크고 모양이 특별해서 한참 바라보게 하는 힘이 있었다. 거대한 돌을 숭배하는 문화가 왜 생길 수밖에 없었는지를 자연스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선돌이 바라다 보이는 산길 근처 나무에는 노란 리본이 매여 있었다. '단종대왕 유배길'이라는 일곱 글자가 쓸쓸했다. 우리의 남은 행선지가 다름 아닌 단종의 유배지와 무덤인 장릉이었다.
단종은 세종대왕의 손자이자 문종의 아들로 12세의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작은 아버지 수양대군은 과연 왕이 될 상이었고(계유정난) 왕위를 내준 단종은 사육신이 시도한 복위 운동의 실패로 영월로 유배를 오게 되었다가 기어이 사약까지 받고 승하하였다. 향년 17세였다. 왕의 자리에서 물러나 앉은 '상왕'이 아닌 일개 왕자 노산군의 지위로 전락한 단종의 유배지가 바로 청령포였다.
청령포 역시 한반도 지형과 비슷한 원리로 형성된 곳으로 삼면이 강이고 남은 한 면은 절벽이다. 말하자면 천혜의 감옥이랄까. 입장료 3,000원에는 뱃삯이 포함되어 있다. 드나들 때 배를 타야 했는데 그 운행거리가 짧아도 너무 짧아서 이럴 거면 다리를 놓지 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지만, 유배지로서의 고립감을 전하는 데는 배가 유효한 선택일 것도 같다. (수익을 고려했을 가능성도 크다.)
청령포에는 특별히 볼 것은 없었다. 소나무길을 걸으며 곰곰이 생각한 주제는 단종이었다. 왕의 자리가 명색은 화려하지만 위험천만한 것임을 철든 열두 살이면 알고도 남았을 것이다. 야심만만한 작은 아버지에게 밀려나 기어이 귀양길에까지 오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곳에서 누구를 가장 그리워했을까. 고작 열일곱은 두려움, 외로움, 그리움으로만 채우기엔 너무한 나이다.
수많은 열일곱들을 알고 있다. 학교에서 내가 만난 그들은 한없이 아이였지만 어른이 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특히 제 인생의 무게를 대충이나마 알고 뭐라도 하려 한다는 점에서 그랬다. 생각 없어 보여도 알고 보면 저마다의 고민과 희망에 나부꼈다. 꿈이 있건 없건 미래는 있었고, 때론 치기 어린 이기심일지언정 대체로 자신을 중히 여겼다.
영월이 영월인 이유는 멀기 때문이었다. 거미줄처럼 도로가 깔려있는 지금으로선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일찍부터 외딴곳, 험한 곳이었다. 영월관광 안내지도 한쪽 구석에는 '달달영월'이라고 적혀 있지만 달은 영월과는 무관했다. 안녕할 ‘녕(영)’과 넘을 ‘월’ 자를 썼다. 워낙 험한 지역이니 안녕히(무사히) 잘 넘어 다니라는 기원의 의미를 담은 지명이라는 걸 검색을 통해 알았다.
그 험한 곳으로 떠밀려 왔던 단종은 이내 거기에서 세상을 떠났다. 유배 4개월 만의 일이었다. 왕릉의 모습을 갖추기까지는 사후 50여 년이 걸렸다. 좋게 말하면 소박하고 달리 말하면 초라한 왕릉을 보면서 본 적도 없는 소년이 측은했다. 버려지다시피 한 소년의 시신을 수습한 이가 있었던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앞으로 수업 시간에 단종에 대해서 좀 더 말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추모의 마음을 달랬다.
단종뿐이랴. 역사적으로도, 그리고 일상적으로도 아깝고 애통한 죽음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560년도 더 된 죽음을 유난스레 비통해하는 것이 내가 목격한 동시대의 죽음들 앞에 죄스럽게 느껴져서 복잡한 기분도 되었다. 평화가 있는 어딘가, 안식을 취할 수 있는 어딘가가 정말 있기는 할까. 있었으면 좋겠는데. 죽은 이는 말이 없고 남은 이는 할 수 있는 게 추모뿐이다.
한반도 지형, 선돌, 청령포, 장릉은 모두 서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끝내주는 날씨에, 가는 곳마다 한적해서 좋았다. 다만 산길을 오르내려야 했고 내부 동선이 넓다 보니 슬슬 다리가 아팠다. 입장 가능 시간을 염두에 두고 부지런히 움직이느라 여행 중에 꼭 가야 하는 곳을 아직 못 갔다. 해가 지기 전에 어서, 카페에 가야 했다. (20240414)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