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나트랑 여행기 2
액땜 운운하며 시작한 나트랑 여행은 아주 만족스럽게 끝이 났다. 이심 오류나 픽업 차량 기사의 잠수 같은 돌발 상황은 더 이상 없었고, 여행 일정은 순풍에 돛을 단 듯 매끄러웠다. 도착 직후 겪은 소란들이 기대감을 낮추어준 덕분에, 여행하는 동안 더 쉽게 감동하고 더 크게 만족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게 액땜이 기능하는 방식일까.
3박 5일의 여정에서 가고 오는 날을 빼면 온전히 즐길 수 있는 날은 사흘이었다. 여행의 콘셉트는 '힐링'. 작년 여름의 치앙마이에서처럼 그저 잘 먹고 실컷 마사지나 받고 오자는 생각이었다. 근데 막상 가보니 나트랑은 치앙마이와는 결이 달랐다. 바다가 있었고 늦도록 사람들로 북적이는 아름다운 해변이 있었다. 고층 호텔방에서 내려다보면 어느 유명 사진작가의 작품처럼도 보였고, 밤에는 바다 너머 멀리 빈펄리조트의 화려한 조명이 시선을 끄는 통에 지루할 틈이 없었다.
첫째 날, 머드 스파로 유명한 아이리조트에 가기로 했다. 나트랑 여행을 다녀온 친구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이미 ‘머드하우스’라는 패키지 상품을 결제해 둔 상태였다. 가장 고가의 프로그램이었는데 평이 좋았다. 애초에 머드탕 자체를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터라 기대가 됐다. 택시를 타고 11시쯤 도착했는데 입구부터 사람들로 북적였다. 예약 상황을 확인한 직원은 사람들 무리에서 떨어진 한적한 응접실로 우리를 안내했다.
그제야 알았다. 머드하우스 상품을 결제한 순간부터 우리는 그곳에서 VIP였다. 잠시 후 외국인 남성 한 명이 응접실에 도착하자 이제야 올 사람이 다 왔다는 듯 직원이 우리를 밖으로 안내했는데 거기에는 buggy라 불리는 차가 대기 중이었다. 문은 따로 없이 운전석 뒤로 두 줄의 의자와 햇빛을 가려줄 든든한 지붕을 가진 차였다. 우리는 이곳에서 걸을 틈 없이 내내 차로 이동했다.
머드하우스 본부는 리조트의 가장 안쪽, 높은 지대에 있었다. 차로 이동하는 동안 뚫린 사방에서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왔다. 본부에 도착하니 직원은 민소매와 반바지로 구성된 수영복 세트와 커다란 수건, 그리고 락커 열쇠를 주었다. 옷을 갈아입고 나오니 기다리고 있던 직원이 2~3명이 들어갈만한 크기의 욕조들이 옹기종기 놓인 곳으로 안내해 주었다.
머드탕, 약초탕 안에서 신선놀음을 하면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 할 무렵 직원이 나타났다. 실내로 들어가 수영복 대신 가운을 입고 초콜릿 마사지를 받았다. 액체 상태의 끈적한 초콜릿을 피부에 바르는 경험은 새롭기는 해도 찝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사지실 가득했던 단내가 좋아서 뭐든 참을만했다.
초콜릿으로 범벅이 된 몸을 닦아 내고 집에서 챙겨간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다. 이제 워터파크에 가서 각자 놀면 되는 건가 싶었는데 다시 차에 타라고 했다. 마사지룸에서 20분 정도 발마사지를 받고, 간단하게 요기를 할 수 있는 식당에 도착했다. 음료와 가벼운 식사, 과일도 코스에 포함된 사항이었다. 인당 6만 5천 원 남짓되는 돈으로 이렇게 융숭한 대접이라니 기대하지 않은 VIP 대접에 나는 신이 났다.
식사하는 곳 옆에 폭포 장식을 갖춘 꽤 넓은 수영장이 있었다. 머드하우스 손님 전용 수영장이라 한산했다. 수영장 물은 무려 온수였다. 7월부터 수영 강습을 받기 시작한 터라 남편 앞에서 갓배운 재주를 뽐내며 (팔 젓기 없이) 발차기만으로 전진하는 가소로운 수영을 했다. 수영에, 아니 발차기에 지치면 선베드에 누워서 멍하니 하늘을 봤다.
놀이시설을 갖춘 워터파크에서 한참 놀고 돌아와, 사우나(찜질방)까지 하고서야 모든 코스가 끝이 났다. 들어온 지 5시간 만이었다. 시원한 캔음료로 갈증을 풀고 택시를 타고 다시 시내로 돌아왔다. 머드하우스에 대해서 이렇게 구구절절 쓴 이유는 그 경험이 아주 강렬한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다. 후한 대접이 좋았지만 어딘가 마음이 복잡했다. 그 정체를 파악하기까지 2주나 걸렸고 이 글이 필요했다.
사정은 이러하다. 아이리조트에 도착해서 머드하우스 본부까지 이동하면서, 사람들이 파란 색깔의 큰 수건을 지니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의아하게도 우리가 받은 것은 보라색 수건이었다. 알고 보니 머드하우스 이용객은 수건의 색깔이 달랐다. 단출한 수영복 차림에 둘러맨 커다란 수건이 색깔로 구분 짓는 경계는 뚜렷하고 정확했다. 보라색 수건을 들고 있으면 지나가는 차(buggy)를 잡아탈 수 있었지만 파란색 수건을 든 사람은 탑승을 저지당했다. 차를 탈 수 있는 자격이 수건으로 구분되었다.
십 년 전 유럽 가는 비행기에서 내릴 때였다. 이코노미석의 내가 비행기에서 나가려면 비즈니스석과 일등석을 지나쳐 가야 하는 구조였다. 좁은 공간에서 오랜 시간 견디느라 찌뿌둥한 상태에서 담요가 널브러진 널찍한 일등석을 볼 때의 기분이 지금도 기억난다. 내가 설국열차의 꼬리칸 사람이었네 하는 자각.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비행기에서 내릴 때에야 그걸 알았다는 것과 비행 중 일등석 사람들이 얼마나 안락하게 시간을 보내는지를 못 봤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이곳 리조트에서는 빤히 보였다. 다리가 불편한 사람이 아니라 보라색 수건을 가진 사람이 차를 탔다. 쓴 돈에 따라 대놓고 다른 대접을 하는 자본주의의 게임의 법칙을 노골적으로 직면해서 당혹스러웠다. 게다가 이 공간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서비스의 수준이 수건의 형태로 내 몸뚱이에 달라붙어 가시적으로 드러났다. 내가 꽂힌 대목은 가격에 따라 다른 서비스를 받는다는 사실보다 눈에 보이게 사람을 가르는 방식이었다. 입장이나 탑승의 ‘자격’과 ‘권리’가 겉모습만으로 확연히 구분되었고 숨길 수 없었다.
누군가는 리조트에서 서비스 제공의 편의를 위해 시행하는 방식일 뿐이라고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장면을 두고, 생각이 많아졌다. 어느 회사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직원의 사원증 목걸이 색을 달리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게 생각나기도 했다. 본인이 굳이 말하고 싶지 않은 것, 감추고 싶은 것을 본인의 의지대로 감출 수 있는가는 인간이 존엄성을 지키는 방식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숨기고 싶은 마음에 대해 나도 조금 알고 있다. 가세가 기울어 살던 집에서 이사를 할 수밖에 없었던 중학생 때 나는 내가 세를 들어 작은 집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만약 그때 내 처지를 몸뚱이에 드러내고 다녀야 했다면 나의 십 대 후반은 아주 혹독했으리라. 나는 다행히도 겉으로는 아닌 척할 수 있는 만큼으로 가난했다. 아마도 그 시절 내가 진짜로 지키고 싶었던 건 비밀이 아니라 자존심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했다.
나트랑 여행기를 쓰기 시작했을 때는 돈의 달콤한 맛에 대해서 쓸 생각이었다. 싼 물가, 좋은 대접, 부자 놀이.. 얼마나 즐거운가! 근데 어쩐지 잘 써지지 않았다. 쓰다 말다 해가면서도 이 글을 접지 않은 이유는 보라색 수건 때문이었다. 그게 나에게 왜 그리 인상적이었는지 몰랐다가 글을 쓰면서 안 거다. 특정인을 아주 좋아하거나 싫어할 때, 그건 상대방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내면의 문제라던데, 뭔가에 대해 굳이 글이 쓰고 싶어지는 경우도 마찬가지 이유인 것 같다.
안타깝지만 세상은 점점 더 대놓고 수건 색깔을 세분화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그게 자본주의 사회의 질서니까. VIP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 세심히 신경 쓰는 만큼, 지갑이 얇은 사람들의 기분 같은 건 점점 더 개의치 않을 것이다. 나도 보라색 수건을 걸치는 사람이 되고 싶지만 기껏해야 "파란 수건을 받았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아, 감사해"라고 말하(려고 애쓰)며 살겠지. 돈의 맛은 카카오 함량이 높은 초콜릿을 닮았다. 단내가 풍기지만 실상은 쓰다. (2024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