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액땜을 믿습니까?!

나의 나트랑 여행기 1

by 박기복
액땜: 앞으로 닥쳐올 액(모질고 사나운 운수)을 다른 가벼운 곤란으로 미리 겪음으로써 무사히 넘김.


나트랑의 캄란 공항에 도착한 것은 현지 시간으로 새벽 두 시(한국 시간으로는 무려 네 시)가 다 되어갈 무렵이었다. 나는 핸드폰만 들여다보느라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감흥조차 누리지 못했는데, 이유는 이심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렴한 가격으로, 유심칩을 넣었다 뺐다 수고할 필요 없이, 내 전화번호 그대로 수신까지 하면서 데이터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이심의 대단한 장점들이었다. 이미 두 차례의 여행에서 만족하며 써봤던 터라 당연히 잘 되겠거니 했는데, 비행기가 착륙하고 나서부터 한참을 붙잡고 있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껐다 켜보고, 한 번만 더 껐다 켜보고, 마지막으로 한 번만 다 껐다 켜보자 해놓고도 나는 다시 또 종료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이심을 구입하는 데 쓴 돈은 고작 5,900원이었고 공항에서 비싸게나마 유심을 팔고 있었으니 별일이 아닌데도 어쩐지 포기가 되지 않았다. ‘이럴 리가 없다 ‘는 현실 부정에서 시작해서, 조작과 실패가 반복될수록 ’왜 나에게 이런 일이‘라는 원망과 분노의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곁에 선 남편은 아까부터 말이 없었다. 혼자서 묵묵히 짐을 찾고 셀룰러 데이터 설정과 씨름하고 있는 나의 길잡이 노릇을 할 뿐이었다. 그러게 왜 이심을 했냐라던가 제대로 알고 조작하는 거냐 따위의 말을 했다면 그 즉시 내가 뿜어내는 레이저 광선을 맞고 두고두고 괴롭힘을 당했을 텐데 역시 어리석은 남자는 아니었다. 남편은 내내 신중한 모양새를 취하고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듯 모든 결정을 나에게 맡겼다.


데이터를 해결하지 않고 공항을 떠날 수는 없었다. 한국에서 몇 천 원이면 구입할 수 있는 유심을 10달러나 주고 구입했다. 팁으로 1달러 지폐가 유용하다는 글을 읽고 부러 환전해 온 스무 장의 1달러 지폐들 중 절반을 이런 데 쓸 줄이야. 혹시 이심 문제가 해결될지 모른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남편의 폰에 새 유심을 끼우기로 했다. 친절하게 웃으며 유심을 갈아 끼워주는 판매인들의 미소가 야속했다. 호갱님에게 보내는 진심 어린 감사 인사.


어쨌거나 남은 시급한 사무가 있었다. 3박 5일로 온 여행에 이미 2일 차 시작이었다. 일정을 위해서라도 어서 숙소에 도착해서 꿀잠을 자야 했다. 캄란 공항은 나트랑 시내에서 꽤 멀어서 택시를 타고도 한참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호텔까지 픽업해 줄 차량을 이미 한국에서 예약해 두었다. 항공 연착 소식은 이미 아실까 몰라. 나를 기다리고 계실 그분, 일면식도 없지만 네모 반듯한 종이에 내 이름을 적어놓고 나를 기다리고 계실 그분을 만나야 했다.


입국장에서부터 택시 승차장까지 많은 현지인들이 상대방의 이름을 영어나 한글로 적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이심이 불러일으킨 감정의 동요를 억누르면서 혹시나 못 보고 지나칠세라 낯선 이름들 사이를 또박또박 지나갔다. 끝이라고 생각되는 지점까지 가서도 내 이름을 발견하지 못했을 때, 그러니까 이심에 이어 차량 기사와의 만남까지 어긋나자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겁의 본질은 호텔까지 제대로 못 갈까 봐서가 아니라 이 여행이 어쩐지 시작부터 불길한데 하는 쎄한 느낌이었다.


차량 예약을 대행해 준 여행사가 공항에 부스를 차려놓고 있던 터였다. 혹시 서류에도 내 이름이 없으면 어쩌나 마음을 졸였는데 다행히도 이름이 있었다. 현지 직원이 바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내게 배정된 기사에게 거는 눈치였지만 상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두어 번 걸어보고는 내게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어영부영 시간이 흐르고 다시 채근을 했을 때도 같은 상황의 반복이었다. 네모 반듯한 종이를 들고 믿음직하게 서있을 줄 알았던 기사님이 노쇼를 할 줄이야. 택시 승차장의 손님들이 하나둘씩 떠나는 동안 기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손바닥을 활짝 펴 보이며 "파이브 미니츠"만 반복하던 직원은 내 입에서 ‘환불’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적극적으로 기사를 물색했다.


그리하여 겨우 찾은 대타 기사님이 모는 차를 타고서 우리는 둘 다 말이 없었다. 기분이 안 좋은 나에게 남편은 별 일 아닌데 잊으라며 나무라듯 달래기를 시전했다. 나는 여전히 이심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는데 돈이 아깝다거나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나 같은 게 아니었다. 그 작은 변수에 무너진 나의 평안에 대해서, 나의 그 유리 같은 평화에 대해서 생각했다. 이게 뭐라고. 그저 불량품을 구입한 작은 불운을 겪은 것에 불과했다. 이심을 판매한 업체조차도 의도하지 않았을 일이며, 누구에게나 있을 만한 사소한 소란일 뿐이었다.


차 문제도 그랬다. 사람의 일이니 그럴 수 있었다. 잠깐 기분 나빴다가 툭툭 털어낼 만한 일이었다. 근데 왜 이렇게 타격감이 클까. 나는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 일이나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취약했다. 세상만사가 계획대로 되더냐라고 쉽게 말은 할 수 있었지만 막상 내 일이라면 얘기가 달랐다. 계획대로 잘 되는 것이 기본값이다 보니 실망할 일이 잦았고 쉽게 자책했다. 잘못 설정된 기준에 맞춰 사느라 괴로웠던 걸 깨달아놓고도 또 이러는구나, 낯선 나라의 밤풍경 속에서 또 깨달았다.


특히 요즘 '받아들임'에 관한 책을 여럿 읽었다. 내게 벌어지는 일들의 좋고 나쁨을 분별하지 말고 받아들이라는 글을 읽으며 나는 순종적인 신자처럼 고개를 끄덕이지만, 개념은 달달 외우면서 정작 문제는 풀지 못하는 학생처럼 실제 상황 앞에선 속수무책이다. '앎'이 몸과 마음에 익숙해져서 '삶'이 되기까지는 도대체 얼마나 시간이 필요한 걸까. 우연과 무질서, 혼란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한, 나의 평화는 외줄을 타고, 고통은 피할 수 없을 테니 선택의 여지가 없고 투정도 하나마나다.


차 안은 적막했다. 내 기분을 살펴 세심하고 다정한 위로를 건네지 못하는 남편에게 살짝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다른 장점이 많은 좋은 사람인데 이것까지 바라면 욕심이지 생각하며 먼저 말을 걸었다. 무거운 공기를 털어내고 싶어서였다. “아무 일도 아닌데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치? 액땜했다 치자. “ 남편은 이미 이런 화법이 익숙한지 평생 액땜만 하다가 끝나겠다며 웃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남편과 나는 발리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인터컨티넨탈 리조트와 한적한 마을의 풀빌라에서 반반 숙박을 했더랬다. 올해 결혼 10주년을 기념하여 발리에 갈까 하다가, 긴 비행시간이 부담되어 베트남 나트랑으로 목적지를 바꾸었다. 그나마 숙소를 통해 신혼여행과의 연결고리를 만들어보려는 것은 의미부여를 중히 여기는 나다운 시도였다.


깜깜한 도로를 달려 새벽 세 시반이 넘어서야 나트랑 시내의 인터컨티넨탈 호텔에 도착했다. 전 객실이 바다 전망이었고 우리는 15층을 배정받았다. 쾌적한 호텔방의 공기와 밤바다 풍경에 기분이 풀렸다. 짐도 제대로 풀지 않은 채 침대에 누우며 남편은 앓는 소리를 냈다. 이번 여행 괜찮을까 하는 염려가 아직 다 가시지 않은 채로 나도 일단 잠부터 청했다. (20240717)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