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9회 광복절에 즈음하여
혹시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를 아시는지. 1991~1992년에 MBC 창사 30주년 기념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방송된 이 드라마는 당시 대단한 관심을 불러 모았다. 일제 강점기부터 시작해서 6.25 전쟁 시기까지 격동의 근현대사를 무려 36부에 걸쳐 담아낸 수작이었다. 화제성도, 시청률도 아주 높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방송이 시작될 당시 중학교 1학년이었던 나는, 잘 알지 못하던 내용들로 가득한 만듦새 좋은 이야기에 완전히 사로잡혀서 매회 티브이 앞에 붙어 있었다. 시청을 놓치면 다음날 친구들하고 이야기가 되지 않았다. 얼마나 빠져들었던지 친한 친구와 함께 주제곡에 맞춰 노랫말을 지었던 하굣길의 기억에 손끝이 간질하다.
주인공은 셋이었는데 채시라, 박상원, 최재성이 맡아서 연기했다. 그 셋은 당대 최고의 스타가 되었다. 특히 채시라가 연기했던 ‘여옥’은 영문도 모른 채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갖은 고초를 겪는다. 학도병으로 끌려온 한국인 청년‘대치(최재성)’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철조망을 사이에 둔 둘의 키스신은 간첩이 아니고서야 다 알만할 장면으로 두고두고 회자되었다.
여튼, 드라마 이야기를 길게 하려던 것은 아니고 당시 열광하며 봤던 그 드라마에서 철조망을 사이에 둔 키스신보다 중학생 박기복을 흔들어놨던 장면이 있다. 주인공 셋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는데 그때 그들을 지독히 괴롭히던 형사가 있었다. 꽃할배 중 한 분인 박근형 배우가 맡았던 배역의 이름은 스즈키. (이름마저 기억할 정도의 강렬함이라니.)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 말하자면 악랄한 친일파였다.
파란만장한 이야기 끝에 1945년 해방이 이루어졌을 때 시청자였던 열네 살 나는 스즈키의 비참한 몰락을 기대했었다. 민족을 배반하고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저 인간 말종 형사의 최후가 얼마나 끔찍할 것인지. 그리하여 내 기분은 얼마나 통쾌할 것인지!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의 스즈키는 해방된 조국에서도 형사로서 공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때의 충격이란. 부조리라는 것을 피부로 느꼈던 순간이 있다면 아마도 그때였다.
옛날의 스즈키는 다시 예전의 한국 이름을 주워 들고는 반공을 외치며 빨갱이를 때려잡는 애국자로 변신해 있었다. 해방이 된 조국에서 그는 지금까지의 잘못을 심판받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빨갱이를 처단하는 영웅 행세까지 하며 승승장구했다. 훗날 기어이 우리를 분단국가로 만들었던 이데올로기의 갈등이 38선 이남 친일파들에겐 해방구였던 셈이다. 해방 직후 남한을 통치한 미군은, 말귀 알아듣는 공무원을 수급하려 애쓸 뿐, 반민족행위자를 처벌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으니까.
영화 <암살>, <밀정>에서 각각 조승우, 이병헌이 연기했던 동일한 역사인물인 김원봉은 독립운동사에 그 업적이 혁혁하다. 일제가 내건 가장 비싼 현상금의 주인공이었다 하니 활약상이 짐작 가능하다. 해방의 기쁨도 잠시, 좌익 활동혐의로 붙잡힌 그가 친일파 출신 형사에게 뺨을 맞고 고문을 당해 3일을 통곡하고 결국 월북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누구라도 상상할 수 있는 크기의 모욕이다. 목숨을 걸고 일제에 맞서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이, 일제가 물러간 뒤에도 여전히 기세등등한 친일파들에게 느꼈을 모욕감에 덩달아 내 뺨까지 얼얼해지는 기분이다.
목숨을 건다는 것에 관해서 떠올려볼 때가 있다. 나는 무엇에 목숨을 걸 수 있을까. 당장 떠오르는 건 가족이지만 모를 일이다. 정말 그래야 할 순간이 왔을 때 그럴 수 있을까. 그러니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목숨 같은 가족을 돌볼 틈이 없었던 독립운동가들의 마음을 감히 가늠하기도 어렵다. 다만 그런 생각은 든다. 현재 자기에게 가장 귀한 것을 기꺼이 내던질 수 있었던 건 그들이 미래를 생각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일 거라고. 그러니까 조국의 앞날, 민족의 미래, 이 땅을 살아갈 후손에 대해서.
나 같은 소시민에게는 생계나 생활에 한참 밀려 후순위에 있는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생각하지 못했다면, 자신들이 사라지고 난 나중을 살게 될 후손들을 염려하지 않았다면, 그토록 고귀하고 대단한 희생은 어렵지 않았을까. '역사'라는 큰 그림 속에서 지금 내 처신을 신중히 하는 마음, '역사의식'은 그래서 중요한 문제다. 덜 이롭고, 더 고귀한 선택을 하게 만들어주기도 하니까.
1919년의 3ㆍ1 운동으로 (같은 해에)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한 대한민국 헌법 전문을 부정하고 호도하는 사람, 그렇게 함으로써 독립운동의 가치를 훼손하고 친일파들의 입지를 넓혀주려는 사람들이 큰소리치는 걸 광복절인 바로 어제 뉴스에서 봤다. 대한민국의 건국 시점을 1948년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은 일제의 국권침탈을 가리고 독립운동의 의미를 퇴색시킨다.
당연히 박수받던 숭고한 애국심들이, 역사의식은 없고 얕은 계산만 있는 이들에 의해 위태로운 꼴을 당하는 모습을 보려니 쓰리고도 안타깝다. 이 광경이 우리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더듬어보면 섬뜩하다.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우리들은 어떤 미래를 마음에 품고 행동하게 될까. 백여 년 전 나라를 위해 자신을 던진 분들이 마음속에 그렸던 것이 '이토록 황당한 미래'는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20240816)
*소설가 김연수는 <이토록 평범한 미래>에서 미래를 기억(?)하며 현재를 살아가는 것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 글의 제목은 그 소설에서 착안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