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개굴개굴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시청 후기

by 박기복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넷플릭스 시리즈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를 봤다. 지난 일요일 밤늦게 보기 시작해서 멈추지 못하고 밤새워 8편을 다 보았다. 후유증으로 어제오늘 고생했지만 후회는 없다. 포털사이트에서 제목을 치고 들어가면 볼 수 있는 오픈톡방에서는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분위기지만, 나는 무척 재미있게 봤고 넷플릭스 순위도 며칠째 1위다.


장르는 스릴러다. 시청자가 짊어져야 하는 것은 불안감과 궁금증. 등장인물에 대한 정보는 빈약하고 내레이션처럼 나오는 두 남자의 대화는 미스터리 하다. 두 개의 사건이 교차편집되어 전개되는데 둘 사이에는 무려 20여 년의 시간차가 존재한다. 초임 순경(하윤경)과 파출소장(이정은)은 동일 인물로서 두 사건 모두와 관계를 맺는다.


‘진상 투숙객으로 인해 고초를 겪는 숙박업 종사자’라는 면에서 주인공인 고상준(윤계상)과 전영하(김윤석)는 공통점이 있다. 연쇄살인범이 투숙하게 되면서 살인현장이 되고 마는 레이크뷰 모텔의 사장 고상준은 아주 성실하고 친절하다.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 하필 그의 모텔에서 벌어지지 않았더라면, 적어도 모텔 사진이 대문짝만 하게 신문에 실리지만 않았더라도 그는 성공한 숙박업자가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대출받아 시작해서 정성으로 가꾼 모텔이 한순간에 ‘살인모텔’이 됨으로써 상준의 가족은 생계가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 주위의 쑥덕거림과 조롱까지 감당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게다가 상준을 더욱 괴롭히는 것은 모텔 근처에 정차된 차에 굳이 달려가 호객행위를 함으로써 그 연쇄살인범을 스스로 모텔로 끌어들인 셈이 되었다는 자책. 재앙은 구르는 눈덩이처럼 점점 커지더니 상준의 가정을 박살내고 만다.


영하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아내를 위해 회사 임원 자리를 때려치우고 서울 생활을 접고 숲 속에 펜션을 차렸다. 아내는 세상을 떠났지만, 수영장까지 딸린 펜션은 예약 사이트가 없음에도 꾸준히 손님이 들 만큼 곱게 잘 관리되어 있다. 영하의 추억과 정성이 깃들어 있는 소중한 공간은 살인을 주저하지 않는 한 여자의 투숙으로 인해 조만간 쑥대밭이 될 운명이다.


이 드라마의 영어 제목은 ‘the frog’(개구리)다. 첫 화의 제목인 “우리 같은 사람들을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누군가가 장난으로 던진 돌에 맞아 죽는 개구리 말이다. 아무 잘못도 없이, 심지어 가해자의 살해 의도도 없었는데 죽어버리고 마는 가여운 개구리. 그러니까 드라마의 주인공인 고상준과 전영하 같은.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커다란 나무가 쓰러졌다. 쿵 소리가 났겠는가, 안 났겠는가.


매 회 도입 부분에서 다양한 인물의 목소리를 빌려 위와 같은 내레이션이 등장한다. 악역을 맡은 고민시의 활약이 얼마나 대단하던지, 중간중간 답답증이 나는 전개에도 불구하고 이 질문에 답을 얻을 수 있을까 하고 끝까지 드라마를 봤다.


소리는 실체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귀라고 하는 인간의 감각기관이 공기의 움직임을 소리로 인식하는 것뿐이라고. 게다가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소리의 범위는 무척 한정적이다. 초음파가 그 증거다. 소리뿐만 아니라 빛도 마찬가지라, 우리가 보는 이 세상도 눈이 인지할 수 있는 가시광선 안에서만 존재하고 있으니 풍경은 바깥세상이 아니라 인간의 뇌 안에만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커다란 나무가 쓰러지는 사건에 쿵 소리가 있는 건가, 없는 건가? 들을 사람이 없으니 소리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걸까? 흥미를 붙들고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했다.


글을 쓰기 시작할 무렵에는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쿵 소리에 빗댄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상준네 모텔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은 쿵 소리를 내며 세상에 알려졌고, 영하는 자신의 이익 때문에 펜션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외면하고 덮었다. 아무 소리도 없었던 것처럼. 그리하여 형벌처럼 받은 것은 사무친 후회와 공포.


이 글을 쓰는 동안 가여운 개구리에 대해 생각한 덕분인지 문득 이런 생각도 든다. 매회 반복되는 질문으로 시청자들이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 쓰러진 커다란 나무와 쿵 소리만 생각하는 사이, 커다란 나무에 깔린 운 나쁜 개구리가 ‘꽥’하고 죽는 소리는 없는 일이 된다고.


이 드라마가 시청자를 사로잡았다면, 그건 불행의 본질이 랜덤 하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누군들 개구리의 처지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사는 게 어려운 이유는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무심코 걷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똥을 밟기도 한다. 별일 없이 순탄하게 산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브런치에 올라온 수많은 글들만 봐도 알 수 있다. 난데없이 날아올 수 있는 돌멩이. 그게 개구리의 공포이자 ‘생’의 공포다.(2024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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