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우리 부부는 생일에만 공식적으로 선물을 주고받는다. 어차피 피차 용돈 받아 쓰는 처지라 선물이래 봐야 대단한 건 아니고 설사 대단한 선물을 받더라도 되갚아야 하니 마냥 좋아할 수만도 없다. 보통은 서로의 생일에 현금을 선물하곤 한다. 음력 4월이라 매해 달라지는 남편 생일에 봉투를 건네며, “생일 축하해. 이 돈 잠깐 맡아줘.” 하는 식.
예외도 있었다. 몇 년 전 남편의 생일을 앞두고 선물 뭐 사줄까 물었더니 딱히 필요한 게 없다고 답할 거란 예상을 깨고 마침 생각해 놓은 게 있다는 게 아닌가. 그것은 바로 다이슨 헤어드라이어.
평소 머리를 감고 수건으로 털어 말리는 사람이 갑자기 드라이어라니. 의아해서 되물었다.
“정말 드라이어 받고 싶어?”
“어. 다이슨 사줘. 자기 곱슬머리라서 그거 있으면 더 관리하기 편한 거 아냐? 그거 좋다며.”
그러니까 지금 자기 생일 선물 받을 기회를 나를 위해 쓰겠다는 거야? 감동한 나의 눈은 아마 하트 모양으로 빛났을 것이다. 드라이어가 이미 두 개나 있는 데다 비싸기도 해서 살까 말까 고민하던 것을 알고, 생일 선물을 핑계 삼아 그냥 사게끔 부추겨준 셈이다. 생활비로 사도 되는 것을 내 쌈짓돈을 써서 사게 되긴 했지만 그래도 그 마음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한동안 머리를 말릴 때마다 남편에게 감사 인사를 했고 그건 진심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가을이 오고, 나는 그해 생일 선물로 무려 골프채를 받게 되었으니…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의 결과였다. 남편은 시계를 팔아 아내의 머리빗을 사고, 아내는 탐스러운 머리카락을 팔아 남편의 시곗줄을 샀다는 오래된 이야기에 비하면 감동은 적으나 참으로 실용적인 엔딩이기는 하다. 공정 거래가 살아있는 우리집 만세. 어쨌거나 그해 생활비는 굳었다. (2024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