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속초 여행기 1

by 박기복

좋은 것을 발견하면 계속 반복하는 사람과, 새로운 좋은 것을 찾아 나서는 사람. 그중 나는 전자다. 무엇이든, 어디든 좋아하게 되면 질릴 때까지 반복하는 편이다. 특히 음식과 여행지가 그렇다. 그리하여 재량휴업일 덕에 얻은 나흘의 휴가 중 무려 이틀을 속초 여행에 바쳤다. 작년 5월에 1박 2일로 다녀온 속초가 좋았고, 7월 휴가 때는 3박 4일로 다녀와 놓고도 여전히 좋아서, 이번에도 덥석 숙소를 예약해버린 거다.


매사 대장 노릇을 하고 싶어 하는 남편은 유독 여행 갈 때만은 마지못해 따라나서는 사람처럼 구는데, 여행을 계획하는 부담과 여행 후기에 따른 책임에서 자유롭고 싶어 하기 때문이라고, 나는 짐작하고 있다. 운전기사와 짐꾼으로만 자신의 역할을 한정하고 있지만 매 선택에 대해 좋고 싫음을 숨기지 않는 방식으로 최종 선택에 영향을 미치기에, 어찌 보면 피라미드의 뾰족한 꼭대기에 앉아있는 셈이다. 다소 얄밉지만 저지르는 건 내 몫이자 자유다.


금요일 8시 40분에 집을 나서 3시간 만에 속초에 도착했다. 휴일 교통 정체를 각오하고 있었던 것에 비하면 양호한 결과였다. 청초호 주변의 호텔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걸어서 향한 첫 목적지는 '88 생선구이'(복고 감성을 촉발하는 88이라는 숫자는 생선의 싱싱함과도 어울리는 기막힌 작명). 열기와 연기로 매캐한 좁은 골목에는 이미 오십여 명의 사람이 줄을 서 있었다. 서둘러 왔건만 걷는 사람 위에는 뛰는 사람이, 그 위에는 나는 사람이 있는 법. 언제부턴가 대한민국에서 줄 안 서고 들어가는 맛집은 없어진 듯하다. 연기와 재에 손을 휘저어가며 1시간을 기다리고서야 입장할 수 있었다.


신혼 초 집에서 생선을 구웠다가 냄새가 안 빠져 난감했던 경험 후로는 생선구이는 무조건 나가서 사 먹었다. 그간 다녀본 생선구이집은 생선을 밖에서 구워 테이블로 가져다주던데 여기서는 마치 소고기나 돼지고기처럼 각 테이블에 설치되어 있는 화로에서 굽는다. 잘 손질된 여러 종류의 생선이 쟁반에 담겨 나오고 식당 직원이 직접 구워준다. 먹기 좋게 익으면 앞접시에 놓아주기까지 하니 전문가의 손길로 구워진 생선을 맘 편히 먹을 수가 있다. 딸려 나오는 여러 밑반찬들도 맛이 깔끔하고 정갈하다. 과연 두 개의 건물에 점포가 나란히 있을만한 맛집이 맞다.



뱃속을 채운 다음 코스는 서점 투어다. 팟캐스트를 통해 우연히 알게 된 '동아서점'은 3대째 이어오는 속초의 오래된 서점인데 대형 서점이 갖지 못하는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가지면서도 동네 책방이라고 하기엔 꽤 규모가 번듯해 볼거리가 많다. 동아서점 자체를 브랜드화해서 여기서만 살 수 있는 굿즈를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작년 5월 나를 속초로 이끈 것은 어쩌면 동아서점에 대한 호기심이었을 것이다. 매번 여행 첫날 들러 두세 권의 책을 사서 여행 중 짬짬이 읽는다. 그러면 어쩐지 속초를 제대로 누리고 있는 듯한 근거 없는 기분에 빠져든다. 동아서점 가는 길목에는 문우당 서림이라는 서점도 있는데 동아서점과는 다른 분위기와 큐레이션이라 비교해서 구경하는 맛이 있다.


사진은 문우당서림. 먼저 간 동아서점에선 사진찍는걸 잊었다.


서점 구경을 마치고 청초호 방향으로 길을 따라 걸었다. 멀지 않은 거리에 여행 때마다 빼먹지 않고 오는 곳인 (좋은 것을 발견하면 반복하는 사람!) '칠성 조선소'가 있다. 과거 조선소였던 곳을 개조해서 카페로 만들었는데 컨셉도 독특하지만 2층 넓은 창으로 내려다보이는 청초호와 잘 뽑아낸 커피맛, 심지어 쿠키맛도 일품이다. 역시나 사람들로 바글거리는 곳인데 공간이 넓어서 자리를 잡기가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다. 관광지의 카페는 죽치고 앉아있는 사람들이 적은 덕분인지 회전율이 좋다.


조선소의 흔적이 아직 남아있다. 카페는 맞은편에.


나의 첫 속초는 '가을동화'였다. 애정하며 보았던 드라마의 배경이 속초였던 거다. 두 번째는 1박 2일이라는 예능프로그램에서 비롯되었다. 강호동 일행처럼 아바이마을에 가서 오징어순대를 먹겠다는 일념으로, 초보운전자 신분이던 시절 겁도 없이 남동생을 조수석에 태워 즉흥 나들이를 떠났더랬다. 지상파의 위력이 지금보다 훨씬 클 때라 나처럼 티브이를 보고 몰려든 인파로 인해 오징어순대는 제대로 먹을 수도 없었지만 처음으로 해보는 장거리 운전에, 죽이 잘 맞는 동생과 끝없이 수다를 떨며 오갔던 몇 시간은 강렬하고도 기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주제 없이 횡설수설이나마 매주 한 편의 글은 꼭 쓴다는 마음으로 마감을 의식하며 산다. 이번 주에는 후다닥 짧게 속초 여행기를 써 내려갈 생각이었는데, 내가 이렇게 속초와 역사가 깊으니 주절주절 말이 많아질 수밖에. 여러 줄을 썼음에도 아직 여행 1일 차 오후 3시다. 하여, 나의 속초여행기는 2화에 계속된다. coming soon! (2022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