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길티 플레져, <나는 SOLO>

욕하면서 본다?

by 박기복

어느 날 아침 나는 스마트폰에서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어플 두 개를 삭제했다. 한동안 영상을 과하게 시청했고 다음 수요일에 글을 쓰려고 했지만 써지지 않았다. 소재가 고갈되었다는 게 이런 걸까. 채운 것이 없어서 꺼낼 것이 없었다. 그래서 몇 주간 글을 쓸 수 없었다. 알맹이가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현란한 리듬에 길들여져 차분한 음악을 들을 수 없게 된 사람 같기도 했다. 그렇다. 나는 지금 그간 글을 쓰지 못한 것은 다 과도한 영상 시청 탓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내면의 공허함이 탄로 나자 애꿎은 어플 두 개를 삭제하는 방식으로 마음을 달랬다.


길티 플레져(guilty pleasure)라는 단어가 있다. '죄의식을 동반하지만, 했을 때 즐거운 일'이라는 말이다. 요즘 리얼 연애 예능프로그램을 보는 일이 나의 길티 플레져이다. 영상 시청이 과했던 연유이기도 하다. 특히 <나는 솔로>라는 프로그램을 한 회도 거르지 않고 보았다. 때로는 본방을, 때로는 재방을 보았지만 재방이라 봤자 본방 다음날을 넘기지 않았으니 충실한 시청자라 할 수 있다. 매 기수마다 결혼 상대자를 찾는 남녀가 모인다. 기수에 따라 인원수는 다르다. 남녀 각각 4명에서 6명 정도. 남녀 동일한 수이기도 하고 가끔은 남성 출연자의 수가 한둘 많을 때도 있다. 출연자들은 일명 '솔로 나라'에서 본인의 이름 대신 제작진이 미리 준비해둔 이름으로 불린다. 남성은 영수, 영호, 영철, 광수 등으로, 여성은 영숙, 정숙, 영자, 순자, 옥순 등으로.


일상을 벗어나 한 공간에 놓인 남녀들은 제한된 선택지 안에서 짝을 찾아야 한다. 기간은 4박 5일. 출연자들이 종종 고백하듯 제한된 시간과 공간 안에서 감정은 날로 증폭되어 본인도 몰랐던 모습을 드러낸다. 한 명의 이성을 두고 경쟁을 벌여야 하고 이 사람이 좋았다가 저 사람이 좋아지기도 하고 둘이 동시에 마음에 들어오기도 한다. 첫 등장부터 최종 선택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관찰하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시청자들이 누릴 수 있는 재미이다. 첫인상만으로 상대를 선택하고, 둘째 날 이루어지는 자기소개에서는 예상을 적중하거나, 빗나간 각 출연자들의 나이와 직업이 밝혀진다. 시간이 경과하며 사랑의 화살표는 요리조리 방향을 틀고 그 속에서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활짝 웃는다. 시청자로서 이 모든 것을 구경하는 재미는 아주 크다. 이렇게 말하며 나는 잠시 또 부끄러움을 느꼈으니 나의 플레져는 '길티'하기 때문이다.


시작은 순수했다. 남들은 어떨까. 남들은 어떤 사람에게 매력을 느낄까. 남들은 호감 있는 상대 앞에서 어떻게 말하고 행동할까. 설렘을 느끼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드라마틱한 과정을 말 그대로 드라마처럼 감상하기 위해서 봤던 것 같다. 시작은 그랬다. 그런데 A가 B를 마음에 들어 하고 B 역시 순순히 A를 좋아하는 전개는 아름답지만 나를 비롯한 시청자의 이목을 끌지 못한다. 사랑의 작대기가 자꾸만 방향을 틀고 날것의 감정들이 드러나며 누군가는 헛발질을 하고 상식 밖의 행동을 한다. 감정을 숨기는 데 실패한 몇몇은 빌런으로 등극하고 그 덕에 이 프로그램은 재미와 화제성을 높이며 현재 9기에 이르기까지 순항중이다.


청춘남녀에게 만남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취지이지만, 그리고 이곳에서 누군가는 평생을 함께할 소중한 짝을 얻기도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동안 응원의 목소리보다는 조롱하고, 비하하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훨씬 더 크게 들린다. 관심이 높은 만큼 악플도 굉장하다. 특히 저마다의 이유로 주목을 끌어버린 몇몇 출연자들은 집중적인 악플 세례를 받는데 그 정도가 선을 넘었다 싶을 정도이다.


과연 마음의 바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상대에게 상처를 줬다고 해서, 직업을 알고 태도가 돌변했다고 해서, 좋다고 했다가 쌀쌀맞았다가 변덕을 부렸다고 해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여지를 주며 속칭 어장관리를 했다고 해서 그렇게나 심하게 비난받아야 할까. 부정과 불법을 저지르고 권력을 오남용한 사람에게 기울이는 관심보다 더 큰 관심과 비난을 받아야 할까.


연애 예능은 일반인이 출연하지만 다른 일반인 출연 방송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대개 방송에 출연하는 일반인들은 자신의 독특한 일상을 공개하거나(인간극장), 각자의 사연이나 고민을 들고 나온다.(무엇이든 물어보살, 골목식당) 키우는 반려동물의 상태를 점검받거나(개는 훌륭하다, 동물농장) 자신의 재능을 뽐낸다.(각종 오디션 프로그램) 남들이 보기엔 특별할지언정 당사자 본연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연애 예능은 어떨까. 남녀가 만나 사랑에 빠지는, 특별하지만 자연스러운 과정에 카메라만 들이댄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일상에서는 상대를 탐색하고 자신의 마음을 살필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다. 이 사람을 좋아했다가 저 사람을 좋아했다 한들 비난받지 않는다. 누굴 좋아하는지는 순전히 내 마음이고 무엇보다 공개되지 않은 나만의 것이다. 내가 마음에 둔 사람이 내 눈앞에서 다른 상대와 데이트하러 나가는 꼴을 볼 일도 많지 않다. 하지만 출근도 퇴근도 하지 않는 닫힌 공간인 솔로 나라에서는 오직 짝 찾기에만 몰두해야 한다. 매일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 누군가를 공개적으로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 선택을 받거나 게임에서 이겨 데이트권을 딴 사람만이 이성과 만남을 가질 수 있고 선택을 받지 못한 사람은 혼자 숙소에서 고독 정식(자장면)을 먹어야 한다는 규칙들은 전혀 일상적이지 않다. 제한된 시간 안에 마음을 드러내고, 얻고, 선택을 하고, 받아야 한다. 매일 정신없이 미션이 주어지고 자신의 마음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카메라에 대고 또박또박 인터뷰하며 짝을 찾는 일에만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말하자면, 감정이 요동치고 인물 간 갈등이 증폭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는 것인데 물론 철저히 의도된 바다. 외부에서 제한된 조건을 설정하고 그 환경 속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살피는 것, 이것이 '실험'과 다른 점이 무엇일까. 인간의 감정을 대상으로 한 그 실험 속에서 출연자들은 아마도 밖에서라면 절대 보이지 않을 민낯을 드러낸다. 욕망과 질투, 조급함, 소심함, 우월감, 열등감이 화면에 또렷이 드러난다. 어떤 사람들은 쉽게 조롱의 대상이 되고 순전히 본인의 감정에 따르면 그만인 선택들에 이러쿵저러쿵 말이 보태진다. 짝을 찾을 기회라는 명목으로, 오롯이 개인의 것으로 존중받아야 할 영역을 관찰대상으로 만들어 도마 위에 올려놓았으니 악플 세례는 예정된 수순이다. 출연자들이 프로그램의 설정에 이미 동의했다 하더라도 곰곰이 생각해볼수록 너무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애 예능 프로그램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결별한 커플들을 모아 놓고 그 안에서 짝을 찾을 기회를 주는 <환승 연애>, 결별을 고민하는 위기의 커플들을 모아 놓고 관계를 이어갈지 새로운 관계를 맺을지를 모색하게 하는 <체인지 데이즈>, 이혼한 이들이 모여 상대를 찾는데 동거라는 과정도 거쳐야 하는 <돌싱글즈> 등등. 연애 예능은 날로 진화하는데 그 방향은 '자극적인 설정'이다. 자극성은 화제를 모으고 프로그램의 인기에 올라 탄 출연자들은 셀럽이 되고 유튜버로 성공가도를 달리고 물건을 팔아 경제적 이익을 얻는다. 어찌 보면 잘 짜인 한판 놀음 같기도 하다. 그 속에서 나는 일면식도 없는 출연자들에게 몰입하여 감정을 쏟는다. 화면 속 출연자가 드러내는 바닥을 손가락질하며 정작 내 바닥을 드러내 보인다.


흔히들 막장드라마를 가리켜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라고 한다. 내가 연애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태도가 막장드라마를 보는 딱 그 마음에서 한치도 어긋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몇몇 출연자를 미워하거나 한심해하거나 함부로 동정하고 있었다. '욕하면서 본다'는 행태는 욕하는 본인에게 가장 유해하다. 의도되고 편집된 화면이 전부인양 관찰의 대상을 향해 맹렬히 쏟아내는 거친 감정들은 욕먹는 대상에게 닿지 않고 나에게 닿는다. 내 경우가 진실로 그랬다. 지난 몇 주간 글을 쓸 수 없었던 것이 단지 영상 시청을 많이 한 탓이었을까. 영상을 시청하며 닳아진 마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결국 좋은 글을 쓸 수 없게 될까봐 두려워진 만큼 죄책감도 커졌다. 길티가 플레져를 압도해버렸으니 이제 그만 연애 예능과의 작별을 고해야 할 때다. (2022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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