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궁과 월지, 그리고 월정교 야간기행
오랜만에 경주를 찾았다. 처음 이곳에 온 건 중학교 수학여행 때였고, 두 번째는 결혼 전, 울산에 살던 아내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결혼 후에는 처가를 방문할 때마다 아이들과 함께 몇 번 들렀지만, 불국사, 첨성대, 대릉원 같은 유명한 유적들을 잠깐씩 둘러보는 게 전부였다. 이번엔 조금 다르다. 비록 단체 관람이긴 하지만, 오롯이 나 혼자 경주의 밤을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경주의 밤은 낮보다 더 깊고, 찬란하다. 천 년의 시간을 간직한 도시답게, 신라의 숨결이 밤하늘 아래 고스란히 배어 있다. 경주와 로마만이 천 년의 수도였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어둠이 내려앉은 연못과 고풍스러운 건축물들이 빛에 머금어 연출하는 풍경은 시간 여행의 무대처럼 느껴진다.
동궁과 월지 – 물 위에 피어난 신라의 궁궐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동궁과 월지다. 신라 시대 왕세자의 거처였던 이 별궁은 예전엔 ‘안압지’로 더 잘 알려져 있었다. 연못과 정자가 어우러진 이곳은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나 외국 사신을 접대할 때 사용하던 장소였다. 삼국사기에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 시절, 674년에 만들어졌다고 기록돼 있다. 그러나 아무리 화려했던 궁궐도 끝은 있는 법.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은 고려의 왕건을 이곳에 초대해 7일 동안 연회를 열었지만, 결국 신라는 고려에 귀속되고 만다.
밤이 되면 동궁과 월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조명 아래 고요한 연못 위로 비친 정자와 소나무, 잔잔한 물결은 그야말로 황홀하다. 붉은 기둥과 푸른 단청이 은은한 조명을 받아 수면 위에 펼쳐지면, 마치 하늘과 땅에 각각 궁궐이 하나씩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현실과 반영, 현재와 과거가 한데 어우러지는 이 풍경은 경주가 아니면 만날 수 없는 특별한 감동이다.
연못가 벤치에 잠시 앉아 있자니, 빛이 물결 따라 흔들리며 마음속 번잡함마저 말끔히 씻겨 내려간다. 고요한 밤, 그 찰나의 아름다움 속에서 나는 어느새 천 년 전 신라의 정원을 거니는 귀족이 된 듯한 기분에 잠긴다.
월정교 – 시간을 건너는 다리
다음은 동궁과 월지에서 가까운 ‘월정교’다. 이곳은 통일신라 시대의 남천을 건너던 다리로, 당시 신라 왕궁의 남쪽 출입문 역할을 하던 중요한 구조물이다. 원효대사가 물에 빠져 요석공주의 집에 머물며 설총을 낳았다는 전설도 이곳에 얽혀 있다. 하지만, 신라가 망하면서 그동안 흉물스럽게 방치되었다 2018년이 되어서야 복원되었다고 한다.
낮에도 아름답지만, 월정교는 진짜 매력을 밤에 드러낸다. 전통 궁궐 조명이 다리를 밝히고, 그 빛이 물에 비쳐 마치 또 하나의 다리가 물 위에 생긴 듯하다. 나무 기둥의 결까지 드러나는 섬세한 조명, 다리 위를 오가는 사람들의 실루엣, 그리고 그 모두가 반영된 물결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다.
월정교에 들어설 때와 나올 때, 각기 다른 글씨체의 현판을 발견하는 것도 흥미롭다. 하나는 신라의 대학자 최치원의 글씨체로 정제되어 있고, 다른 하나는 신품 4현 중 한 명인 김생의 자유로운 필체다. 나는 김생의 자유분방한 글씨체가 더 좋았다.
다리 중간쯤에 서서 남천의 물결과 조명 아래 반영을 바라보며 문득 생각했다. 천 년 전 신라인들도 이 다리 위에서 같은 밤을 보았을까. 왕의 행차를 기다리던 백성들, 시 한 수 읊으며 밤을 즐기던 선비들의 모습이 겹쳐지며, 월정교는 단순한 다리를 넘어 시간을 잇는 통로처럼 느껴졌다.
경주의 야경은 단순히 ‘불빛 구경’으로 끝나지 않는다. 천 년의 시간과 자연, 그리고 조용한 밤공기가 어우러져 여행자의 마음 깊숙이 스며든다. 동궁과 월지의 황홀한 반영, 월정교의 고즈넉한 정취는 화려한 서울의 야경과는 차원이 다르다. 오늘밤, 나는 분명히 신라의 어느 밤길을 걷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