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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 고요함을 만나다

서울 강북구 도선사 성지순례

by 복작가

어느새 푸르름이 짙어진 초여름. 날씨는 점점 더워지고, 사람들 옷차림도 반팔로 바뀌어 있었다. 나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5월의 마지막 날, 서울 강북구 삼각산에 위치한 도선사를 찾았다. 33곳을 순례하는 성지순례의 두 번째 여정이었다.

점심 무렵에 도착한 나는 도선사에 들어가기 전, 가장 마지막에 위치한 식당에 들렀다. 운 좋게 계곡 바로 옆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졸졸 흐르는 물소리, 반짝이는 햇살, 그리고 나뭇잎 사이를 지나가는 바람. 잠시 그 흐름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무릉도원이 따로 없구나’ 싶을 만큼 마음 한켠이 편안해졌다.


식사를 마치고 일어서려는 찰나, 계곡 바위 위에 가만히 서 있는 새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화려한 깃털을 자랑하던 그 새는 단단히 한 발로 균형을 잡고 서 있었는데, 마치 오랜 시간 이 자리를 지켜온 수호자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의 발걸음에도 동요하지 않는 그 당당한 모습과 평온한 눈빛은, 어쩐지 오늘의 나의 순례 여정과 닮아 있었다.

도선사는 서울 도심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지만, 경내로 들어서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인수봉과 백운봉, 도봉산 능선이 병풍처럼 사찰을 감싸고 있었고, 형형색색의 연등은 여전히 바람에 흔들리며 나를 맞이했다. 나는 천천히 연등 아래를 걸으며 ‘도를 설한다’는 도선사의 이름을 되새겨 보았다. 이 사찰은 통일신라 경문왕 2년,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한다. 그 뒤로 오랜 세월 동안 서울 시민들의 기도처이자 마음의 쉼터로 자리해 왔다. 이처럼 오래된 공간에서 느껴지는 시간의 깊이와 영적인 기운은, 내 마음을 더욱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순례 인증을 받기 위해 인장첩을 내밀자, ‘도선사’라는 글씨가 붉은 인장 속에 정갈하게 새겨졌다. 아직 두 번째 인장이지만, 그 도장 하나하나가 모일수록 내 마음에도 조금씩 정진의 무늬가 새겨지는 듯했다. 단순한 장소에 머물다 가는 여정이 아니라,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성찰의 길임을 다시금 느꼈다.


도선사 경내를 나오자마자, 서울 도심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가 나타났다. 짙은 녹음 사이로 아파트 숲과 한강의 물결이 겹쳐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문득 생각이 떠올랐다. ‘도심 속의 고요함’이라는 말이 있다면, 아마 바로 이곳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단 한 걸음만 벗어나면 숨 쉴 공간은 이렇게 가까이에 존재하고 있었다.

오늘 도선사에서 마주한 고요함과, 바위 위에서 꿋꿋이 서 있던 새의 단단한 자태, 그리고 도시를 내려다보며 느낀 평온함은 오래도록 내 안에 머물 것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나의 성지순례. 다음 여정에서는 또 어떤 인연과 마음의 울림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 길을 기대하며 오늘 하루를 조용히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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