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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 숲길 너머의 고요

세번째 관음성지 순례, 내소사

by 복작가

오늘은 33관음성지 순례 중 세 번째로, 전북특별자치도 부안에 자리한 내소사를 찾았다. 능가산 자락에 앉은 이 고풍스런 절은 처음부터 깊은 인상을 주었다.

주차장에서 내소사까지 이어진 전나무 숲길.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나무들 사이로 햇살이 부드럽게 스며들고, 바람은 고요히 지나간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마치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 전나무 숲은 오대산 월정사, 광릉 수목원과 함께 한국 3대 전나무 숲으로 손꼽힌다고 한다.

숲길을 지나 일주문을 통과하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수령 천 년이 넘는 보호수 한 그루다. 어른 몇 명이 두 팔을 벌려야 간신히 안을 수 있을 정도로 웅장한 자태를 지닌 나무는, 수없이 많은 세월을 이 자리에서 묵묵히 견뎌왔으리라. 그 앞에 서면 누구라도 조용히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숙이게 된다.

그 뒤로 드러나는 내소사는 신라 무왕(재위 600~641) 때 창건된, 천오백 년 이상의 역사를 간직한 사찰이다. 그 전각들 중에서도 ‘대웅보전’은 유독 깊은 인상을 준다. 조선 중기인 1633년에 다시 세워진 이 건물은 못 하나 사용하지 않고 지어진 조선 목조건축의 백미로 꼽힌다. 정교하게 짜인 창살과 아름다운 문양은 장인에 의해 하나하나 조각된 예술작품처럼 보이기도 한다. 수백 년 세월이 흘러가는 동안 바람과 비를 견디면서도 원형을 지켜왔다는게 경이롭다.

이곳에는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조선 후기, 한 스님이 이 절에서 간절히 기도하던 중 관세음보살의 현신을 보았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인근 마을 사람들은 하나둘 이 절을 찾기 시작했고, ‘내소사에 오면 마음이 맑아지고 일이 잘 풀린다’는 말이 퍼져나갔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자신의 소망을 담아 기도하며 경내를 천천히 거닐고 있다.


내소사에서의 시간은 유난히도 천천히 흐른다. 오래된 것에서 오는 안정감과 자연이 주는 생기가 어우러져, 마음이 고요히 정리되는 것 같다. 오래 머물지 않아도 깊은 여운이 남는다. 그래서일까. 발길을 돌려 다시 전나무 숲길을 걸어나올때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


오늘도 관음성지 순례의 한 장을 마무리했다. 수백 년의 세월을 고요히 품은 내소사에서,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도 억 겹 세월의 일부에 불과하지만, 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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