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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훤한 숲 Feb 19. 2023

슬기로운 40대 쌍둥이 육아 생활

40대에 결혼한 이야기

요즘 20,30대가 결혼을 얼마나 두려워하고 거부감이 심한 지에 대한 기사를 보면 이미 40대에 결혼, 출산, 육아를 경험한 나조차도 우려스러울 정도다. 신문기사이니깐 과장해서 글을 쓴 것도 있으니 대강 걸러서 봐야 한다. 


내 20,30대를 되돌아보면 그들의 그런 기분을 전혀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나 조차도 젊었을 땐 아니, 좀 더 어렸을 때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서 남자도 거부하고 결혼도 거부했었으니깐....


그런 나도 2,30대를 거쳐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고, 쌍둥이를 출산해서 육아를 해보니 지금 20,30대의 절박함과 팍팍함을 이해하면서도 동시에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괴로운 것만은 아니구나를 느낀다.


지금 현실 생활에 괴로워하는 이에게 섣불리 결혼이 좋아요, 애는 낳아야죠라고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40대가 되고 보니 그게 그렇게까지 괴로운 일은 아니다는 말을 하고 싶다.


내가 낳은 자식을 위해 죽을 각오도 되어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만큼 모성애가 강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21개월 동안 아이를 키워보니 힘든 순간도 많지만, 그만큼 아니, 그걸 다 상쇄할 만큼 행복한 순간도 많다.


나는 어릴 적부터 엄마 손을 많이 탄 사람은 아니다. 물론 우리 부모님이 자식 먹여 살리기 위해 평생 고생하신 건 맞지만, 그렇게 사는 게 맞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어릴 적 결핍을 통해 나는 아이를 키우는데 돈 말고도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걸 알기에, 지금 내가 일하지 못하고 육아에 매달린다고 해서 쓸데없는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가 성인이 되기까지 20년이고 그중 아이에게 내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간은 초반 7년, 그다음은 점점 독립을 준비할 시간 7년, 나머지 6년은 성인으로써 사회에 나아갈 시간을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라치면, 내가 진짜 육아에 올인해야 할 시간은 7년 중 이미 2년이 지나갔다. 그렇게 이제 몇 년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좀 아쉽기도 하다. (아쉬움과 육아의 난이도는 별개)


이제 40대에 접어들었을  때 치열하게 무언가를 준비했고,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열심히 살았지만 집이 있는 것도 차가 있는 것도 안정된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직업이 프리랜서다 보니). 오히려 학교를 오래 다니다 보니 학자금 대출만 남아있는 상태였다. 결혼을 한 것도 사실 결혼을 해도 결혼을 안 해도 딱히 크게 달라질 게 없어 보였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잃을 게 더 없을 것 같아서 결혼했다. 가진 게 있어야 잃을 게 있지. 한번 사는 인생인데 무서워서 못할 게 뭐가 있나 싶어 결혼도 했고 애도 낳았다.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었고 월급도 그리 많은  편도 아니었다. 남동생과 어머니랑 같이 살고 있었는데 남편의 얼마 안 되는 월급으로 셋이 먹고살고 있었는데 남편은 사는 게 크게 재미가 없다고 했다.(남동생은 이제 독립해서 결혼도 함) 남편도 어릴 때 부모님이 이혼하셔서 고생도 많이 하고 자랐다. 그래서 그런지 나랑 사귀면서 결혼을 부쩍 하고 싶어 했다. 그동안 만난 여자들은 남편의 집안 환경을 보면 다 부담스러워해서 결혼은커녕 연애로 잘 이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난 그 덕에 남편을 만난 거라 생각했지만...


결혼을 하니 가장 좋은 점은 내편이 생기고 내 가정이 생겨서 좋다는 점이다. 결혼을 하면 혼수다 뭐다 돈도 많이 드는데 우리는 우리 형편에 맞게 결혼식과 신혼여행을 갔다 왔다. 사실 내가 모은 돈은 아버지 사업에 다 묶여있어서 오롯이 남편이 모아놓은 돈으로 결혼식을 올려야 했기 때문에 최소한의 것만 했다. 나도 결혼식에 대한 로망이 없어서, 그냥 남편이 하고 싶은 대로 했다. 다 남편 돈... 그래서 결혼식 및 신혼여행 비용에 대략 800만 원 정도 들었다. 웨딩 촬영은 그냥 우리끼리 돌아다니면서 셀프로 진행했고, 신혼여행은 독일과 오스트리아로 갔다. 신혼집은 내가 살던 집에 남편이 들어왔다. 남편의 직장이 무지 멀었지만, 일단 같이 살다가 상황 봐서 시어머니와 함께 살자가 됐는데, 남편과 시어머니가 싸우는 바람에 결국 합가는 없었던 일이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하늘이 나를 도운 것 같다. 남편은 우리가 결혼한 지 두 달 만에 우리 집과 가까운 더 큰 회사로 이직을 하게 되어 지금은 그전보다는 편하게 출퇴근을 하고 있다.


물론 서로 생판 남으로 살던 사람과 한 집에 같이 사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쌍둥이를 출산하면서 육아에 지친 나와 남편은 서로에게 날 선 말을 쏟아내기도 했다(특히, 나). 쌍둥이가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어린이집에 보낼 수 없었을 때)는 나는 지치고 힘들어서 신경에 예민해져 있어 하루에도 몇 번씩 집 나가고 싶다, 이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나도 그렇지만 남편이 특히나 가정에 대한 애착이 크기 때문에 싸우다 그런 말이 나오면 정말 단호한 태도를 취했다. 본인이 어릴 때 겪었던 아픔이 있으니 그런 말엔 더 민감한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시간을 겪었기 때문에 내 가족은 남편과 아이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남편과 아이들이 생겼지만 원래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나는 그저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었지만, 남편이 꽉 잡아줘서 내가 가정에 발을 붙인 것 같다. 시어머니와의 갈등에도 남편은 처신을 잘했다. 나보다 자신의 엄마를 잘 알기에 내 이야기에 공감을 해주기도 했고 그냥 내  속풀이를 들어주기도 했다. 또, 중간에서 어머니 기분 상하지 않게 중재를 하여 상황을 더 악화시키지 않았다. 남편의 공감과 지지가 없었다면 결혼이라는 제도에서 나는 아마 애초에 뛰쳐나갔을지도 모른다. 


세상에 내편이 있다는 건 얼마나 든든한 일인지 결혼을 하고 깨달았다. 내가 부모님께 느끼는 감정은 한 번도 표현한 적은 없지만 나는 가족애가 강한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부모님에게 부담을 느끼는 경우가 더 많았다.(부모님은 자식에게 집착하는 케이스). 지금은 남편이 있고 내 가정이 있어서 그렇게까지는 아니지만, 나에게 결혼은 정서적으로 완전한 방어벽과도 같다.


내 20,30대를 되돌아보아도, 주변을 둘러보아도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부모에게 완전히 독립한 경우는 거의 없다. 내 주변에는 내 남편정도만 완전히 독립한 케이스. 한국 사회가 이상한 건지, 결혼 전에도 결혼 후에도 부모의 도움이 없으면 살아나갈 수가 없다. 혼자 돈 벌어 집사기도 힘들고 맞벌이를 한다 해도 양가 부모님의 도움이 없으면 육아를 해나갈 수가 없다. 하지만, 내 경험으론 부부가 함께 헤쳐나가겠다는 동지애가 있으면 극복할 수 있다. 다만, 좀 고되긴 하다. 이런 건 감안하자. 


젊음이 아름답지만, 한평생 젊다면 누가 젊음이 아름답다고 말하겠는가? 40이 되면 내 삶이 더 윤택할 거라 더 빛날 거라 생각하겠지만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오늘이 불행하다고 내일도 불행하다는 법은 없다. 나는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어서 인생에서 결혼이라는 모험을 하기로 결심했고 육아라는 산을 넘고 있다. 내일이 불행할 거라 지레 겁먹지 말고, 형편이 안되면 형편에 맞게 살면 된다. 내 인생 살면 결혼을 하든, 애를 낳든 말든 남의 이목 상관없다. 중요한 건 본인의 의지다. 모든 사람들이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돈 없어서 결혼 안 한다 애를 안 낳는다가 아닌 그저 자신의 인생을 살아냈으면 좋겠다. 그게 결혼이든 미혼이든 중요하지 않다. 내가 나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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