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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훤한 숲 Mar 06. 2023

40대 딸 쌍둥이 맘의 슬기로운 결혼 생활

-고부관계

지난번 시어머님과의  관련된 글을 쓰다가 호되게 욕을 먹어, 웬만하면 그와 관련된 글은 쓰려고 하지 않으려고 했다. 관계가 좋아졌다기 보담은 내가 더 이해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기도 했고, 어머님도 내 눈치를 보기 시작한 점도 있다. 웬만하면 어머님이 하시는 말씀을 그냥 그려려니 하는 마음으로 넘기고, 이해하려 노력했더니 불만이 많이 없어졌다.


솔직히 자주 안 뵈니, 그런 이해가 가능해졌다.


하지만, 그건 그저 언발에 오줌누기에 불과한 방책일 뿐, 결국 어머님의 성격은 고칠 수 없고, 내 인내심도 한계가 왔다.


관계가 좋아졌다고 생각했는데 마치 잔잔한 호수에 작은 조약돌을 던져 파문을 만들듯 정말 사소한 한 마디에 나는 또 분노했다.


내가 어머님에 대해 갖는 근본적인 불만은 어머님이 너무 직설적이기 때문이다. 본인의 감정에 솔직한 것은 좋으나 그 표현 방식이 너무 과하다.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을 한 예로 들겠다. 나는 작년 연말에 코로나에 확진되었다. 우리 쌍둥이들도 같이 확진되어 우리는 어머님 집에서 머물게 되었다. 마침 아이를 봐주러 올라오신 친정어머니도 함께였다. 당시 시어머니는 혼자 아이들을 보고 내 끼니까지 챙기기 부담스러우셨는지 친정어머님께 계속 같이 계시자고 어필을 하셨다. 친정어머니는 사돈 혼자(시부모님은 이혼하셨다) 집안일에 아이까지 돌봐야 되는 게 안쓰러우셨는지 결국 허락하시고 같이 지내게 되었다.


하지만 일주일 간의 동거는 그야말로 '지옥'(많이 불편했다)이었다. 친정어머니는 사돈댁에 처음 방문했는데 빈손으로 가기 모 하다며 쿠팡에서 휴지(정확히는 최고급 티슈)와 비데를 주문하였다. 하지만 선물 받은 시어머님은 정말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자기는 이런 거 쓰지도 않는데 배달시켰다며 그대로 본인의 기분을 표현하셨다. 당황한 친정어머니는 내게 원래 남의 집에 방문하면 휴지 사들고 가는 게 아니냐며 물어보셨다. 사들고 간 휴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사돈 면전에 대고 그렇게 표현하는 건 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같이 지내는 동안 앉아서 밥을 받아먹기가 미안했던 친정어머니가 설거지라도 해놓으면 어머님이 마음에 안 든다고 설거지를 다시 하시고, 친정어머니의 행동이 마음에 안 들라치면 그야말로 불호령이  떨어졌다.


중간에 낀 나는 참 난처하기 짝이 없었다. 두 분 다 입장을 이해하긴 하지만, 팔이 안으로 굽는 건 어쩔 수 없는지 어머님의 표현 방식이 나는 참 싫었다. 아무리 그래도 사돈인데 저렇게 까지 뭐 하고 할 일인가 싶었다. 친정어머니는 그야말로 팔자에도 없는 시집살이를 하셨다. 친정어머니와 나는 어머님이 힘드셔서 그런가 보다고 그때는 이해하고 넘어갔다. 격리가 끝난 후 남편은 나한테 장모님은 그냥 가시지 뭐 하러 휴지는 샀냐고 타박했다. 자기 엄마는 엄청 까칠해서 돈 아니면 물건 받는 거 싫어한단다. 그래서 내가 그럼 휴지 사라고 휴지값주냐며 반박했더니 그대로 깨갱.


내가 산후조리할 때도 두 분 고생하셨다고 공진단 맞춰서 선물 줬더니 그거 한 알에 얼마 하냐며 물어시더니 홈쇼핑에는 얼마 한다며 혼자 구시렁구시렁....(가격비교는 제발 혼자하시길)


사람이 선물한 게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선물을 준 당사자 앞에서 가격을 묻고 또 그게 어쨌다니 저쨌다니 하시는 게 나는 무례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얘긴 혼자 생각하거나 딴 사람한테 말하시거나 하셨으면 좋겠는데, 앞담화를 하시니…그다음부터 나는 어머님께 공진단은 절대 드리지 않는다. 얼마 전에 어머님이 체하셨을 때 남편은 공진단 드리라고 했지만 난 거절했다. (소화제만 드림) 워낙에 호불호가 정확하셔서 괜히 드렸다가 내 기분만 상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작은 말 한마디였는데 생각할수록 기분이 나빴다. 남편과 어머님집에 가 있는데 어머님이 배를 깎아오셔서 남편에게 먼저 건네셨다. 나는 사실 신경도 안 쓰고 있었는데, 남편이 농담 삼아 "엄마는 며느리 먼저 줘야지, 나 먼저 주면 어떡해?" 하며 웃으며  말했다. 농담을 못 알아들으시는 어머님은 또 퉁명한 표정과 목소리로 "그럼, 아들이 1순위지, 며느리가 1순위냐?" 하며 기분 나쁘다는 듯이 내게 "안 그러냐?"며 반문하셨다. 또 그걸로 둘이 언쟁을 벌이려고 해서 내가 됐다고 상황을 종료시켰다.


나도 내 부모한테 1순위이듯 어머님한테 아들이 1순위라는 것쯤은 충분히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굳이 그런 얘기를 내 앞에서 할 필요가 있나 싶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나는 그냥 어머님한테는 "쩌리"에 불과한 존재밖에 안 되는 거다. 아무리 내 며느리 내 며느리해도 결국 남이고, 자신의 아들이 같이 살고 있는 사람, 손녀들의 엄마여서 일뿐 다른 이유는 없다. 본인도 없는 감정 쥐어짜 내서 어쨌든 우호적으로 지내려고 하니 있는 말 없는 말 하시지만, 난 안다. 아니 며느리들은 모두 알 것이다. 4명 중 남편이 1순위, 손녀들이 2순위, 꼴찌는 나구만. 뭐....따지려고 들면 그렇다는 거지. 크게 생각하지 말자. 정신 건강이 해롭다.


참 이상한 일이다. 여자 쪽에서는 사위한테 대놓고 "내 딸이 일 순위이니, 무조건 내 딸부터 챙길 거다"라고 말하지 않는데 왜 시어머니들(?)은 아니, 아니, 내 경우로 한정하겠다. 왜 그렇게 며느리한테 대놓고 얘기하시는지 모르겠다.


나는 오늘 남편에게 말했다. 어머님은 참 못됐다고.


어쨌든 슬기로운 고부관계가 제목이니 결론은 주제에 맞게 써야겠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잘 지내는 방법은 한 가지이다. 시어머님이 하시는 말씀에 큰 의미를 두지 말자는 거다. 이기적이고 못된 말해도 그냥 그러려니하고 원래 그러신 분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야한다. 이것저것 따지면 내 머리만 아프고 기분만 나쁘다. 기분 나쁜 얘기 글로 썼다가 또 기분 나빠지기도 한다. 사실 넘길 수 있으면 화가 안 나겠지. 그게 안 되니 불만이 쌓이지.

자주 안 보는게 서로에게 좋겠지만, 아예 안 볼 순 없는 일이니…아예 안 보고 살 정도로 어머님이 최악은 아니다.


그래도 우리 시어머님은 아들과 같이 사는 여자라고 식혜도 자주 보내주시고,  며느리 없이도 아들 손녀들과 시간도 잘 보내신다. 이거면 됐지 뭘 그리 바라겠나?


가끔 신혼 때 어머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너는 참 좋겠다. 내 아들 같은 남자랑 결혼해서..." 그런데 내가 딸도 낳았네(어머님은 사나운 아들만 둘이다). 내가 참 부럽겠구나 싶다.


일반적으로 내가 생각하기에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불편한 건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질투가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남자를 빼앗긴 것 같은 느낌. 손녀손자를 낳아줘서 고맙지만, 부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한 복잡한 존재. 그건 며느리도 시어머니도 마찬가지인 감정. 누구나 자식이 결혼하면 느끼게 되는 그런 자연스러운 감정일 것이다. 우리집도 비슷하겠지? 단지 말로 표현하지 않을 뿐…


또, 며느리 입장에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점이 있는데 바로 시어머니도 노인이라는 점이다. 나도 한동안 시어머님의 대한 불만이 엄청났는데 어느 순간 시어머니도 우리 엄마처럼 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이해심이 좀 많이 생겼다. 우리 엄마한테 과하게 화를 내신 것도 어쩌면 노인의 특징일 수 있다. 어머님의 무례한 행동을 생각하면 화가 나는데 또 나이가 드셨으니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든다. 오해할 수도 있는 얘기인 것 같아서 설명을 덧붙이자면 나이가 들면 기운이 없으니 짜증이 더 날 것이고, 본인의 감정을 더 숨기지 못해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늙음이 이런 거라면 참 슬픈 일이다. 시어머니가 금전 같은 큰 문제가 아닌 사소한 말실수나 행동 실수는 그냥 내 정신 건강을 위해 큰 의미를 두지 말자고 다짐했다. 나도 언젠가 그 나이가 되면 더 할지도 모른다.


원만한 결혼 생활을 위해서는 누군가가 보기에 정신승리라고 생각되는 이런 마인드가 필수다. 내 나이가 적지 않아 어쩌면 어머님의 말과 행동에 더 큰 의미를 부여했을 수도 있다. 매번 이렇게 다짐하며 내 그릇이 점점 더 커져가는구나(도대체 얼마나 작았길래)라고 나는 오늘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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