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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훤한 숲 Oct 18. 2022

딸 쌍둥이 엄마의 슬기로운 육아생활

어린이집 편

글을 못 올린 지 벌써 140일이 지났다. 그동안 여러 차례 글을 올리려고 시도를 했으나, 아이들이 점점 더 커가니 내가 그동안 쌓아왔던 체력도 고갈되어버려 피곤에 찌든 나머지 휴대폰으로 문장 한 줄 쓰기가 어려웠다. 물론 전에 쓴 글에 달린 악플이 신경 쓰이기도 했고... 원래 쓰려던 내용은 수면교육에 관한 거였는데 우리 애들도 현재 진행 중이라…


17개월이 된 딸둥이들은 이제 어린이집에 간다.

원래는 두 돌 지나고 보내려고 했으나, 계속 애들이랑 붙어있다가 두 돌을 버티기도 전에 애들 학대해서 영창 갈 것 같아서 보냈다.


하루 종일 두 녀석이랑 좁은 집안에서 붙어있으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한 달에 2주 정도를 친정어머니가 오시는데 거의 저녁엔 녹다운돼서 기어들어갈 정도… 애들도 더운 여름날 밖에도 못 나가고 집에만 있으려니 짜증이 나는지 계속 안아달라고 얼마나 징징거리는지... 15개월까지 잘 버티던 나의 멘털은 16개월이 되자 완전 무너져버렸다. 친정어머니가 집에 가시고 며칠 후 남편 휴가가 시작되었는데 (거의 10일) 휴가를 마치고 친정어머니가 오셨다. 하지만, 비록 친정어머니가 계신 2주를 포함해서 3주 동안 하루도 쉬지 못한 나는 어느샌가 짜증도 잦아지고, 애들이 저지레를 하면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르는 일들이 종종 있었다. 그래도 전문가들의 동영상을 보면서 어떻게든 버텨 보자 했다.


그러나 운명은 나의 편(응?)이었는지 우연히 다음 학기 입학 상담을 하러 갔는데 원장님께서 자리가 있다고 하셔서 2일 동안 심사숙고한 끝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한 달 정도의 어린이집 등원 후기를 얘기하자면, 결과적으론 만족스러운 편이다.


그간 아이들에게 집에 공간이 안돼서 차마 시도하지 못했던 것들을 어린이집에서는 해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교실 안에 세면대가 있어 밥 먹기 전에 손을 씻도록 한다던가, 교구장에 가지런히 장난감이 있어 스스로 정리정돈을 할 수 있도록 하게 한다던가 하는 사소한 것들에서부터 때 되면 가는 가을소풍, 연극 참관, 동물원 체험 등등. 주변에 갈만한 놀이터도 마땅치 않고, 이젠 유모차 말고 걷고 싶어 하는 쌍둥이들을 데리고 더운 땡볕에 산책하기도 힘들었는데, 그나마 어린이집에 등원을 하면서 바깥공기라도 쐴 수 있게 됐다. 17개월밖에 되지 않은 아기들이라 어디 데려갈 때도 마땅찮고, 심지어 나는 차도 없으니 문화센터 같은 데는 엄두도 못 냈는데 어린이집에서 데려가 주신다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내가 없는 어린이집에서 어떤 표정으로 있는지, 친구들이랑 선생님이랑 잘 지내는지 궁금하긴 하지만, 어린이집을 보내고 나서 내 생활이 엄청 드라마틱하게 바뀌지는 않았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어린이집 안 보내던 그 시간이 기억이 안 난다는 점. 다리가 불편하신 연로한 친정엄마도 그전엔 어떻게 지냈는지 기억이 안 나신다고 하셨다.


아쉬운 점은 그동안 계속 무염식으로 먹였는데, 어린이집에 가면 모든 것이 오픈된다는 점... 내 계획 따윈 모두 나무아미타불... 어린이집에서 주는 밥이 맛있으니 집에서는 밥을 잘 안 먹으려고 한다. 맛이 없어서일 수도 있고, 어린이집에서 많이 먹고 와서 일 수도 있다.


어린이집을 보내고 나니 그동안 전문가들의 얘기에 휘둘렸던 내가 참 한심하게 느껴졌다. 물론 어린이집에 무조건 보내는 건 안 되지만, 그렇다고 뭐가 좋다더라 하며 맹목적으로 얘기를 듣는 것도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다. 내 생각엔 주양육자의 신체적 정신적 상태가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 애들한테 하루 종일 TV나 틀어주고 핸드폰만 쥐어주고 있다면 그냥 보내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주변에 4살까지 애를 가정 보육한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는 육아가 안 힘들었다고 한다. 애가 밖에 나가는 걸 좋아하지도 않고 집에 있는 걸 좋아하니 딱히 어린이집을 보낼 필요성을 못 느꼈단다. 그렇지... 이런 성향의 아이라면 안 보내는 게 맞지...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가 안 힘들다잖아~


'애 바이 애'라는 육아에 쓰이는 은어가 있다. 우리 집에서 먹혔던 방법이 남의 집 애한테는 먹히지 않는다는 말이다. 우리는 아니, 나는 항상 일반적인 이야기를 듣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결혼 전부터 수없이 들었던 '두 돌까지는 엄마가 봐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나는 어떻게든 버텨보겠다고 했으나, 그 전제 조건은 엄마가 육아로 고통스럽지 않아야 된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됐다. 그것이 이상적이라는 이야기지 현실적으로 꼭 들어맞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물론 발달이 늦거나 예민한 아이라면 어린이집을 일찍 보낼 필요는 없다. 그리고 남들 보낸다고 따라 보낼 필요도 없다. 하지만, 밖에 나가서 탐구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억지로 집에 묶어놓을 필요가 있을까? 요즘 우리 집 아이들은 유모차에 올라가거나 현관 펜스에 붙어있거나 하는 등 아침 8시 30분부터 어린이집에 가고 싶어서 난리다. 처음 적응기 때는 안 떨어지려고 울기도 했으나, 지금은 내가 서운할 정도로 그냥 손을 들어 '빠빠이' 한다. 그럴 때면 항상 나는 내가 그동안 고민하고 공부했던 것이 다 무엇을 위한 것이었나 싶다. 허탈감이 밀려온다. 이렇게 잘 지낼 것을 엄마인 나는 왜 잘 못 지낼 거라 생각했을까? 물론 내가 아이들한테 잘 맞는 어린이집을 찾아서 일수도 있고, 아이들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좋은 분들 이어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아이가 적응을 잘하는지 잘 못하는지는 엄마인 내가 평소에 잘 관찰했으면 알 수 있는 거였는데... 엄마가 육아를 하면서 너무 힘에 부친다면 어린이집은 당연히 보내야 된다고 생각한다. 육아에 있어 엄마의 우울증만큼 독이 되는 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았을 땐 차라리 감방 가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적도 종종 있다.


사람들은 기저귀도 안 뗀 아이를 어린이 집에 보내는 부모들에 대해 너무 혹독한 거 같다. 아이들을 위한 정책은 별로 없지만, 아이를 위해 밤낮 애쓰는 부모를 위한 정책은 더더욱 없다. 전문가들도 순전히 아이 입장에서 얘기를 한다. 물론 아이 위주로 돌아가는 것도 맞고, 그분들이 아이의 입장을 대변해서 말하는 것도 당연히 맞다. 하지만, 항상 듣다 보면 혼나는 기분이 드는 건 나만 그런가? 하루 종일 애들이랑 붙어서 힘겨워하며 애들한테 나도 모르게 화를 내고 있는데 두 돌까지 계속 끌어안고 가는 게 맞는 걸까? 전문가들이 말하는 것처럼 하려면, 나는 아이만 봐야 한다. 그리고 다둥이 안 되고, 딱 한 명만 봐야 한다. 하지만, 아이를 보는 거 말고 아이를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그분들은 정말 모르는 걸까? 그리고 형제가 많다면, 또 어떻게 해야 되는 걸까? 많은 엄마들이 왜 육아에 힘들어서 기저귀도 안 뗀 아기를 보내는지 그 원인을 찾아서 해결해줘야 되는 게 먼저가 아닐까? 애 키우기가 이렇게 힘든데 왜 저출산이다 뭐다 전 사회가 나서서 애 안 낳는다고 젊은 사람들을 싸잡아 욕하는지... 막상 낳으면 또 얼마나 부모 욕을 하는 건지... 물론 개념 없이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그건 열외로 치자.


김수연 아기발달 전문가는 4개월 되면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라고 한다. 애착은 계속 형성해나가는 것이고, 엄마가 혼자 어린이집에서 해주는 만큼 양질의 보육을 제공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나름 일리는 있는 얘기라고 생각한다. 인구가 적은 이스라엘에서는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으니깐... 이스라엘 여성들은 삼 개월이면 회사에 복귀한다고 한다. 그런데 워킹맘들이 애 때문에 지각을 하거나 결근을 하더라도 사회분위기는 그 여성에게 눈치를 주지 않는다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임신을 알리는 순간부터 여자들은 인사고과부터 깎인다. 내 주변엔 임신했다고 일을 적게 하는 게 아닌데 왜 그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친구들도 많다. 그런데 그분 동영상에 달린 댓글을 보면서 나는 더 경악했다. 두 돌까지 엄마가 봐야지 무슨 소리냐부터 시작해서 여자들이 자기 편하려고 애를 어린이집에 보낸다 등등, 물론 개중에 그런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욕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 본인들은 얼마나 자식을 잘 키웠는지 모르겠지만, 무턱대고 남을 욕하는 걸 보니 안 봐도 어떻게 키웠는지 알 거 같은데...


돈이 많으나 적으나 애 키우기는 힘들고 고된 일이다. 하지만 그만큼 가치가 있는 일이기도 하다. 이렇게 아이비 친화적인 사회에서 내가 그래도 아이를 낳겠다고 한건 힘들지만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서다. 그런 내가 내가 어린이집을 보냈다고 해서 내가 부모 자격이 없는 것도 아닌데 왜 죄책감에 사로잡혔던지... 전업주부라도 집에서 할 일이 있다. 아이를 위해 밥도 해야 되고,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해야 한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엄마도 아파서 병원에 가야 할 때가 있고, 은행이나 다른 볼일이 있을 수 있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를 행복하다. 물론 어린이집에 애들을 보냈다고 해서 내가 지금 매우 행복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저 잠시 휴식을 취할 여력이 생길 뿐...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서 신나게 놀고 있을 때, 나는 나를 위해서 또는 가족을 위해서 짬짬이 일을 하거나, 집안 청소나 저녁을 준비한다. 어린이집에 보냈다고 해서 내가 늘어지게 잘 수 있을 것도 아니다. 하지만, 짜증 내는 엄마를 떠나 어린이집이 제공하는 양질의 프로그램을 받고 돌아온 아이들에게 그래도 나는 단 10분이라도 쉬었기 때문에 아이들의 짜증과 울음을 받아줄 여력이 생긴다.


어린이집이 뭐라고 스스로 나는 당장 일을 나가야 되는 것도 아닌데 애를 맡기는 게 맞는지 고민한 내가 참 한심스러웠다.


이번 어린이집으로 인해 나는 무언가를 판단할 때 비판적인 태도로 하면서 내 나름대로 판단을 해야 하며 들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흔이 훨씬 넘었는데 이제야 깨닫다니... 그동안 나는 마흔이 훌쩍 넘도록 얼마나 비판 없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용해왔던가?


  아이를 낳기 전에 나를 생각해보면, 내 주관 없이 그저 내가 친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하는 말이라면 그냥 싸우기 싫어서 수용해왔다. 속으로 아닌데 하지만, 괜히 상대방 기분 상하게 하려고 하지 않으려고 그랬다. 이젠 나도 나이가 들었는지(아니, 성숙해진 걸로 하자. 예전보다 더 성숙해졌다고. 남들 눈엔 내가 여전히 철이 없어 보일 수 있으니) 이젠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생각해보게 된다. 그런 건 사실 좀 더 젊었을 때 했으면, 지금쯤 지금보다는 더 성숙한 인간이 되었을 텐데...


여하튼 우리 집 애들은 어린이집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요즘은 데리러 가면 유모차 타는 걸 거부한다. 이건 뭐 내가 그렇게 못해줘서 그런 건지 어쩐 건지 모르겠다. 어린이집 거부는 들어봤는데 집 거부는 못 들어봤는데, 어쨌든 잘 적응하고 있는 거 맞겠지...? 그냥 맞는 걸로 치련다. 더 이상의 고민은 나의 심신안정을 위해 거부하련다. 이러면서 또 자료 찾아보고 있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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