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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훤한 숲 May 19. 2022

쌍둥이 맘의 슬기로운 육아생활

모유 이야기

원래 이 시리즈는 임산, 출산, 육아 세편으로 나눠서 대략 느낀 것을 쓰려고 했는데, 출산 편이 의도치 않게 글이 길어지고, 또 내 감정 기복으로 인해 의도가 잘 전달되지 않은 것 같아서 모유수유를 하면서 느꼈던 점을 적어보려고 한다.


나는 임신 때부터 모유에 관심이 많았다. 노산에 쌍둥이여서 아이를 낳은 후 아이들을 어떻게 양육할 것인가가 항상 고민이었다. 내 지인 중에 아들 쌍둥이를 낳아 기르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의 경험담을 들으니 뭐라도 해야겠구나 싶었다. 일단 둘이기 때문에 어느 하나가 아프면 혼자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갈 수가 없다. 엠블란스를 부르거나 남편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무조건 아이는 아프면 안 된다. 그래서 찾은 답이 모유수유와 수면교육이었다. 그리고 내가 다니던 산부인과가 모유수유 권장 기관이라서 그런지 조리원에 있을 때부터 직수의 좋은 점을 여러번 들었다. 하지만 나는 임신 때부터 완모를 하고 싶었지만, 쌍둥이임을 감안해서 6개월로 잡았다가 나중에는 점점 줄어들어서 어떻게든 100일은 버텨보는 걸로 목표를 세웠다. 다들 힘들 거라고 했기에, 가능하면 직수로 먹이고 싶었지만 그것도 상황이 허락돼야 먹이는 거라 크게 기대하진 않았다.


"한국에서 모유수유를 하려면 전사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자주 보는 유튜브 채널에 이런 제목의 영상이 올라왔다. 그랬다. 나는 모유수유를 하기 위해 전사가 되어야 했다. 처음 쌍둥이를 출산하고 모유수유 유축기를 받았을 때 아는 지인의 충고가 떠올랐다. 힘들게 새벽에 일어나지 말고 그냥 좀 쉬다오라는 얘기였다. 그래서 나는 모유수유에 대한 큰 기대감이 없었기 때문에 정말 쉬었다. 그런데 웬걸 젖양이 좀처럼 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 시간에 잠을 자는 것도 아니었다. 가슴이 아프기 때문에 잠 못 자긴 마찬가지였다. 유축을 열심히 하게 된 계기는 아이에게 처음 젖을 먹이러 갔을 때 나는 마치 대역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아이가 젖을 빨려고 하는데 도무지 나오지 않아 결국 울음을 터뜨렸는데, 나만 믿고 이 세상에 온 아이한테 어찌나 미안하던지... 모성애나 뭐 그런 건 아니었는데 아이가 너무 서럽게 울었다. 나중에 보니 우리 첫째는 원래 강성 울음의 소유자였다. 항상 그렇게 운다. 우리 시어머니는 처음에 그렇게 우는 첫째에게 놀라 우셨다는.....(시어머님, 여린 감성의 소유자)


조리원에서 계속 직수를 시도했지만 아이들이 미숙아라  되지 않았다. 조리원에서는 그저 시간 맞춰서 유축을 해서 먹이는 것이 최선이었다. 거기 계시는 간호사님들이 힘들겠지만 집에서도 계속 시도해보라고 하셔서 집에서도 시도를 했었다. 원래 산후도우미를 신청할 때도 모유수유를 도와줄  있는 분을 요청했었다. 그러나 그런 전문 인력이 많지는 않기에 나에게 배당되신 분들은 좋으신 분들이었지만 모유수유에 대해  모르시는 분들이었다. 쌍둥이라  분이  달간 .


산후 관리사님들과 시어머니가 계셨을 때 직수 시도를 했는데 아이들이 잘 빨지 못하고 울자 산후 관리사님 두 분과 시어머니는 아이들 성격 나빠지겠다며 직수를 말리셨다. 시어머님은 내가 시도를 하려고 할 때마다 계속 물젖이라 영양가가 없다며 그냥 유축만 해서 먹이라고 여러 차례 매번 본인의 경험담을 말씀하시면서 만류하셨다. 맨 처음에 며느리 몸 생각해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정말 모유가 영양가가 없다고 생각하시는 듯했다.(40년전 육아상식) 내가 나중에 직수를 성공하고 애들 젖을 먹이고 나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애들 배고프겠다면 다시 분유를 먹이셨다. 산후 관리사님과 내가 본 서적, 참고 영상 등에서는 분명 그런 거와 상관없이 수유 텀을 맞추라고 했는데 굳이 또 자기 고집대로 하시니(본인이 분유를 먹이고 싶으셨던 거 같다) 나는 나대로 엄마인 내 의견을 무시하는 것 같고, 내가 힘들게 먹인 모유를 인정하지 않으시는구나라고 느껴졌다. 여기엔 모유와 얽힌 얘기가 대표적이라서 쓰지만, 내가 어머님에게 반감을 갖게 된 다른 사건이 꽤 많지만 험담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에 쓰지 않겠다.


계속 직수 시도를 못하게 하니깐, 나는 결국 내 신념을 위해서 어머니가 안 계신 틈을 타 새로 오신 산후 관리사님(중간에 한분이 시어머니가 불편하셨는지 그만두셨다. 이건 순전히 어머님 피셜)의 도움을 받아 직수를 성공시켰다.  그리고 그렇게 눕수(누워서 하는  수유)로 6개월가량 모유 수유와 분유를 동시에 먹이는 혼합수유를 했다. 직수를 하는 순간 유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이 어찌나 좋던지. 직수보다 유축은 설거지 등이 번거롭기도 하고, 손으로 젖병을 잡고 있어야 돼서 꼼짝도 할 수 없다. 물론 요즘은 움직이면서 할 수 있는 유축기도 있지만...지인에게 받은 것이 있어서 굳이 새로 빌리거나 구매하지 않았다. 직수 성공한 산모보다 유축해서 완모한 산모가 더 대단한 것 같다. 산후관리사 분들도 내가 직수에 성공하자 설거지거리가 없어져 일을 안 하고 가는 것 같다고 하셨다.


지난번 글에 내가 어머님이 자꾸 내 모유는 간식이라고 하고 분유를 밥이라고 해서 열 받았다는 내용에 대해 이해 못 하겠다는 댓글이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어쨌든 아이들에게 모유라도 먹여서 최대한 면역력을 높여주고 싶었다. 아프면 어쩔 수 없이 병원에 가야겠지만 적어도 내가 둘을 케어할 수 없는 이 상황에서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모유를 먹이기 위해 나는 하루에 잠을 거의 잘 수 없었다. 새벽 2시, 3시에 일어나 유축을 해서 아이들에게 먹였고, 산후관리사님들이 오실 때 잠을 자야 됐는데 새벽에 2~3시간 자고 일어나 수유하고 남편 출근하는 소리, 관리사님이 오시는 소리에 깻다가 다시 잠들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다. 또, 남편과 시어머니는 저녁잠이 많아서 9시만 되면 피곤해해서, 한밤중에 애들에게 수유하는 것은 순전히 나의 몫이었기에 산후관리사님들이 와도 내 몸은 도무지 좋아지지 않았다.


여담이지만, 나중에 산후관리사님들이 내 나이를 아시고 그제야 "어쩐지 그래서 회복이 늦었구나"라고 하셨다. 나는 그 당시 호르몬 탓인지 전혀 피곤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그래서 나름 회복이 빠르구나라고 생각했는데 그분들 말씀에 의하면 보통 산후도우미 기간에는 산모들이 날아다닌다며... 그에 비해 나는 거의 침대에 붙어있었으니 이 분들은 왜 저렇게 회복이 느릴까 하신 거다. (이때 노산 인증)


반 좀비가 된 상황에서 아이들이 엄마를 알아보는 것도 아니고 새벽마다 아이들을 보기위해 인기척도 없이 안방으로 불쑥 들어오시는(내 잠을 깨우지 않기 위해서 였던 것 같지만) 시어머니가 무척이나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아이를 데리고 나가는 어머님을 보면서 가끔은 아이를 빼기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나는 이때 처음으로 쌍둥이를 낳은 것을 후회했다. 아이가 하나였으면 밥이 되든 죽이 되든 나 혼자 키우는 건데, 쌍둥이라 손이 모자라니 원치 않아도 아이들을 위해선 어쩔 수 없이 도움을 받아야 하는 내 신세가 서글펐다. 그때는 쌍둥이라 모유도 나눠먹어야 되니깐 3개월 먹여도 단태아보다 결국 얼마 못 먹는다는 생각에 더 먹이려고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모두 다 참 부질없는 생각이지만... 더 우울했던 것은 내 몸이 내 것이 아닌 누군가에게 좌지우지되는 것 같다는 점이다. 내가 모유수유를 하고 싶으면 하는 것이고, 원치 않으면 안 하는 건데, 그것을 가지고 하라마라 하는 것이 답답했다. 밤에 잠은 못 자서 기력은 없고 애는 먹여야겠고, 옆에서 계속 뭐라고 해대는데 뭐라 반박은 못하고 끌려다니는 것 같고 매일 어머니의 독단을 막아내야되서 죽을 맛이었다. 나도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해서 하는 건데, 매번 시어머니의 컨펌을 받아야 하는 게 너무 싫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우울증이 너무나 깊어졌는지 내 눈에 눈물이 흘러나왔다. 나는 원래 잘 울지 않는 무덤덤한 사람이다.

눈물이 흐르는데 순간 "이것이 정말 산후우울증이구나!" 했다. 애들은 젖을 물지도 못하고, 내 아이를 빼앗기는 것 같고, 뭔가 억울하고 억눌린 것 같고.... 그런 감정을 결국 남편에게 말했더니 남편은 시어머니께 좀 쉬다오시라며 집으로 돌려보냈다. 어머님도 힘드셨는지 뒤도 안 돌아보고 가셨다는..... 그때가 산후관리사님들이 오신지 1주일쯤 되던 날이었다. 어머님과 거의 10일 정도 같이 있었는데 나는 정말 해방이 된 것 같았다.(모유로 내가 폭주한 사건은 그 후)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님도 힘드셔서 그렇게 계속 나한테 지시하고 했던 말 또 하고 하셨던 것 같다. 본인께서는 그게 그냥 하는 얘기라고 하셨지만, 나한테는 지시 명령으로 들렸다. 1년간 어머님을 겪어보니 대충 어머님이 어떤 분이지 파악이 돼서 이제는 웬만하면 그런가 보다 하며 넘기는데 가끔 내 심기를 건드리는 말씀을 하시거나 나한테 괜히 짜증을 낼 때가 있어 나도 사람인지라 욱할 때가 있다. 화장실과 시집은 멀리멀리...


여담이지만, 우리 친정어머니도 그렇고 시어머니도 그렇고 나이가 들면 걱정이 많아지기 마련인 것 같다. 시어머니는 애들이 백일밖에 안 됐는데도 오셔서 어린이집은 4살 때 보내고, 기왕이면 영어 어린이집을 보내라고 하셨다. (...돈은 누가?) 우리 집에 오실 때마다 그 말씀을 하셔서 결국 제가 알아서 할게요라고 했더니, "그럼 네가 알아서 해야지. 누가 알아서 하니?"라며 신경질을 내셨다. 그러다 동서와 시동생이 있는 자리에서 또 같은 말씀을 하셨는데 둘이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을 보이자, 그 얘기는 더 이상 꺼내지 않으셨다.(시어머니는 시동생을 버거워하신다. 남편은 딸 같은 아들) 쌍둥이들은 이제 막 돌이 지났다. 이젠 본인이 애 보기 힘드신지 그런 말씀은 일절 하지 않으신다. (시어머니는 첨에 열정이 넘치다가 나중엔 지쳐 나가떨어지는 스타일인 듯)


혹시라도 모유수유를 생각하는 산모라면 나는 적극 권하고 싶다. 내가 분유도 먹여보고 유축도 해보고 직수도 해봤지만, 직수가 진짜 편하다(6개월까지는... 밤중 수유를 끊고, 단유를 했을 때 얼마나 홀가분했는지 모른다). 주위의 시선에 흔들리지 말고 아이가 물 때까지 계속 시도해보면 분명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다. 사정상 모유수유를 할 수 없는 산모도 있을 텐데 분유 먹인다고 너무 실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모유가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얘기하는데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육아를 시작해보니 모유, 분유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한번이니깐 그냥 해봤다. 쌍둥이들의 돌이 지난 지금, 나는 가끔 육아에 지칠 때, 특히 아이들의 울고불고하는 소리는 듣고 있을 때면 울음소리에 지친 나머지(아기들도 힘든 걸 알지만) 차라리 감방 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요즘 애들 재우는 게 너무 힘들다. 다들 어떻게 했는지.... 세상의 모든 부모님들이 정말 위대하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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