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치유의 기억
인천공항 경당에서 미사를 마치고 단체로 기념사진을 찍은 뒤 흩어졌다. 각자 점심을 해결하고 게이트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식사를 하고 면세구역으로 들어섰는데 유리천장 위로 잔뜩 낀 먹구름이 보였다. 요란하게 천창에 부딪히는 비, 바람 소리가 사람들의 시선을 계속 위로 끌어당겼다. '저러다가 천장이 뚫리는 건 아니겠지'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오후로 들어섰는데도 여전히 비바람은 강렬했고 비행기 결항 소식도 잇따랐다. 본격적인 기다림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공항 안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클래식 공연도 즐기고, 간식도 사 먹고, 의자에 기대어 그저 멍하니 활주로를 보기도 하고, 준비해온 책을 읽거나 찬양 준비를 하기도 하고, 끝없는 수다를 떨기도 하고, 각자의 모습으로 오랜 시간 동안 누구 하나 불평불만 않고 기다렸다. 비행기가 끝까지 안 뜨면 공항 근처에 민박이라도 잡아 놀자고 누군가 던진 별것 아닌 농담에 껄껄 웃기도 하면서. 지난 수개월간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준비하며 모으고 발표했던 자료들을 엮어 만든 워크북까지 다 훑어봤는데도 기다림은 계속 되었다.
시간이 멈춘 듯 느리게 가는 이때에도 내 스마트폰만은 분주하게 울려댔다. 태풍에 비행기를 무사히 탔는지 묻는 연락부터 회사 메일함에는 토요일인데도 부지런히 메일이 쌓여갔다. 주책맞게 이 상황에 또 봉사활동까지 벌여놓은 것이 있어 장소 예약, 일처리 등을 위한 확인 연락이 수십, 수백 개씩 울렸다. 눈이 아플 정도로 하나하나 체크를 하고 답장을 했다. 고개를 돌려 활주로를 봤다. 비바람이 소용돌이를 치며 활주로 바닥을 이리저리 할퀴어대고 있었다. 폭풍 속인 창밖과는 별개로 클래식 음악이 들려오는 게이트 앞은 평화로웠다. 편안한 옷차림과 달리 내 마음과 머릿속은 비바림치는 창밖 활주로 같았다.
휴대전화 안에 담아놓은 메모에는 이번 순례의 개인과제가 적혀 있었다. '시작한 지 이제 겨우 한 달, 이 일을 계속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흔적들이 표로 간단히 표현되어 있었다. 결국은 '다니냐, 아니냐' 두 가지 선택지인데 나는 또 그 안에 너무나 많은 것들을 매달아 괴로워하는 중이었다. '더 놀면 안 되지. 요즘 세상에 일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해야지. 또 퇴사? 무슨 배부른 소리야. 다 그렇게 살아. 어디가서 그 연봉에 그 직급 구할 수 있을 것 같니?! 그리고 한 달 만에 퇴사는 좀 창피하지 않니? 너 그렇게 끈기 없는 애였어?', '그래서 매일 출근길 기도하잖아. 그런데도 출근길이 지옥이면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아? 무엇 때문에 퇴사했는데... 또 똑같은 상황에 너를 구겨 넣고 몸이 구조신호를 보내올 때까지 또 기다릴 거야?!' 간단해 보이는데 어려운 것 같고 복잡한데 답을 알고 있는 것 같은, 혼란스러움의 파도가 다시 나를 삼켰다. 비가 오니 산티아고 순례를 떠나며 다친 발목도 괜히 더 욱신거리는 것 같았다.
답이 나오지 않을 것 같은 것들을 생각하다 보니 창밖은 어둑해지고 저녁이 되었다. 오후 2시 45분 비행기였는데 어둠이 내려앉은 밤이 되어서야 출발할 수 있었다. 그래도 모두 '갈 수 있다'는 것에 기뻐하며 비행기에 올랐다. 기내는 만석이었다. 나에게는 생경한 '이스라엘'을 가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다시 한번 내가 넓은 세상 속 아주 작은 존재로 느껴졌다. 이스라엘까지는 직항으로도 10시간 반, 또 한 번의 인내가 필요했다. 맛난 기내식 비빔밥을 시작으로 여러 끼니를 먹으면서 몸이 배배 꼬이는 걸 몇 번이고 참아내야 했다. 이때를 위해 작은 성경책을 챙겨갔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읽지 못한 건지, 읽지 않은 건지, 대신 순례 준비모임에서는 말 한번 나눠보지 못했던 옆자리 친구와 이런저런 깊은 이야기까지 나누는데 시간을 썼다. 그 오랜 시간동안 무슨 말들을 그렇게 많이 했는지 세세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신기하다, 감사하다'는 문장과 느낌이 아직도 남아있다.
그렇게 이스라엘 텔아비브 공항에 새벽 2시 40분에 도착했다. 원래 현지시각으로 저녁 8시 45분 도착 예정이었다. 그래도 우리 순례단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음에 기뻐하며 감사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마주친 넓고 세련되고 현대적인 공항 모습에 너무 놀랐다. 이스라엘 하면 총, 칼, 분쟁지역, 중동전쟁으로 폐허가 된 집들의 이미지만 떠올랐기 때문일까. 그 무섭고 위험한 이미지가 조금씩 깨지기 시작했다. 휴전 중인 한국에서 평온하게 잘 살고 있는 내 모습을 신기해하던 외국인 친구들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물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구역인 웨스트뱅크와 가자지구 쪽은 분쟁과 갈등이 여전하고 위험할 수 있다고. 하지만 번쩍번쩍한 텔아비브 공항의 첫인상은 충격이었다. 상대적으로 사람이 없던 새벽시간에 도착해서인지 더 조용하고 평화롭게 느껴졌다.
텔아비브는 이스라엘의 국제법상 수도, 이스라엘 헌법상으로는 예루살렘이 수도라고 한다. 우리는 텔아비브 야포지역을 출발해 우선 나자렛으로 향했다. '나자렛 사람 예수'를 만나러 가는 길은 공항에서도 버스를 타고 1시간 넘게 이동해야 했다. 전세버스를 타고 나자렛으로 가는 길, 이리저리 구불구불 가다 보니 소박한 지역 소도시 같은 곳이 나왔다. 지렁이 같이 생긴 알 수 없는 아랍어로 가득 채워져 있는 간판 위에는 어둠이 내려앉았고 가게 셔터들은 닫혀 있었다. 어스름이 느껴지는 새벽 5시가 다 되어서야 숙소에 들어갈 수 있었다. 씻을지, 잠시라도 눈을 붙일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시간, 2시간 정도가 주어졌다. 제비뽑기로 정한 룸메이트와 인사를 하고 순서를 정해 번갈아 씻고 나오니 시간이 금방 흘러 창밖이 환해졌다. 그래도 따끈한 물로 씻고 옷을 갈아입으니 좀 살 것 같았다.
인천공항에서 태풍 때문에 기다린 시간들부터 10시간이 넘는 비행에 버스를 타고 더 이동, 씻기까지의 시간들이 필름처럼 지나가고 벌써 아득했다. 정신은 점점 더 몽롱해지고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정해진 아침식사 시간에 맞춰 함께 밥을 먹고 오전 9시로 예정되어 있는 성당 미사 시간에 맞춰 가려면 빠듯했다. 정신을 차려야 했다. 생각할 틈, 숨 쉴 틈 없이 다시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태풍으로 험난했던 순례의 시작, 어떠셨나요?! 혼자 다녀왔던 산티아고 순례와 단원들과 함께 했던 이번 이스라엘 순례는 분명 달랐어요. 혼자 여행할 때와 단체로 여행할 때의 장단점이 다르니까요. 오랜만에 경험하는 패키지여행 스타일의 스피드에는 적응해야 했지만 '함께의 시너지'도 분명했던 것 같아요. 시작부터 숨 가쁜 순례의 첫 장소 '나자렛'부터 함께 걸어보아요!
이제 곧 어디든 꼭 떠날 수 있길 희망하면서 부족한 글솜씨이지만 먼저 저와 함께 '이스라엘 랜선 여행, 랜선 순례' 함께 하는 것 어떨까요?! 이번에도 함께 걸어 주실 거죠?! 좋아요와 구독은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