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 글을 4편 올렸다. 3편까지는 블로그에 먼저 써놨던 글을 복붙 했고, 4편을 지난주에 쓰는데… 음… 내 글 왜 이렇게 재미가 없지? 그냥 이랬다, 저랬다 사건의 나열이었다. 분명히 신나고 재미있는 소재로 글을 쓰고 있는데 내 글은 왜 이렇게 재미 대가리가 없는가? 써놓은 글이 재미가 없으니 쓰면서도 즐겁지 않았다. 뭘 고쳐야 하나 글쓰기 수업에서 배웠던 후킹 문장 뽑기, 생생한 묘사 곁들이기, 묵혔다가 다시 퇴고하기 등 이론을 떠올려봐도 딱히 어떻게 고쳐야 할지 모르겠어서 며칠 고민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일단 올렸다. 그리고 이제 5번째 글을 써야 한다. 즐거웠던 글쓰기가 뭔가 숙제 같은 의무로 다가온다. 이유가 뭘까 툴툴대니 옆에서 남편이 너무 잘 쓰려고 힘을 줘서 그렇다고 했다.
지금까지는 내가 ‘글’을 쓰겠다고 의식해 본 적이 없었다. 단순한 기록이었고,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을 곁들인 정도였다. 그런데 뭔가 ‘글’을 ‘잘’ 써야지 하고 마음먹는 순간 어설픈 글이 더 신경 쓰이기 시작했고, 잘하려는 욕심이 ‘힘’을 주게 만들었다. 술~술 써지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소재 또한 지금 당장의 에피소드가 아니라 몇 년 전의 여행을 끄집어내어 쓰고 있으니 그때의 생생한 감정들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 감정이 밋밋하고 평평하니 쓴 글도 납작할 수밖에… (내 저주받은 기억력이여!). 그리고 잘 쓰려다 보니 내가 평소에 즐겨 쓰던 이모티콘이나 여러 비문들, ㅋㅋㅋㅋ 나 ㅜㅜ 따위들, 각종 비속어들 등을 거르게돼서 더 심심한 글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아무튼 나는 너무 힘을 주고 있는 것이다! 힘 준 글은 딱딱하고 재미가 없다.
얼마 전에 친구들과 힘 빼기의 기술에 관해 얘기한 적이 있다(동명의 책도 재미있게 읽었는데 세부 내용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몹쓸 기억력!). 친구 L은 요즘 수영에 진심인데 수영쌤에게 힘 좀 빼라고 맨날 잔소리를 듣는다고 했다. “내가 너무 힘이 세서 그런가?"하길래 초보가 힘이 안 빠지는 건 당연한 거라고 니가 지금 몇 개월 한 주제에 어떻게 힘을 뺄 수 있겠냐고 말해주었다. 친구 Y는 요즘 아이패드 드로잉에 빠져있는데 그림에서도 힘 빼기가 엄청 어려운 거라며 힘이 빠지려면 어마어마한 연습량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림에 문외한인 L은 그림도 힘을 빼는지는 몰랐다며 신기해했다.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그렇다. 힘이 들어가면 멋이 없고 퍼포먼스도 나지 않는다. 골프도 힘을 빼야 하고, 노래도 힘을 빼야 한다(박진영이 맨날 얘기하는 공기 반, 소리 반도 힘빼기겠지). 난 최근에 댄스에 진심인데 댄스도 힘을 빼야 한다. 더 나아가면 육아나 관계, 사랑도 힘을 빼야 한다.
힘빠진 멋진 라인드로잉 ㅡ성립 작가 개인전에서
댄스에 대해 말해보자면.. 나는 두 달 전 다시 댄스수업에 입문했다. 우리 수업은 보통 한 달에 두 곡 정도를 나가는데, 한 주(주 2회)에 진도를 다 나가고 1번 연습을 한 뒤 마지막 날 드레스 코드를 맞춰 촬영을 한다. 촬영은 전체가 추는 것과 반반씩 나누어 주는 것으로 나누어지는데, 쌤과 함께 단체로 추는 영상은 쌤의 유튜브에도 올라간다고 했다. 으악! 수업 첫날부터 진도를 너무 많이 나가 멘붕이었다. 선배들은 반복하다 보면 되니 너무 걱정 말라고 했지만… 혹시라도 내가 혼자 틀려 단체영상을 망쳐버릴까 봐 너무 걱정이 됐다. 그래서 집에서 딸의 전신거울을 거실에 옮겨두고 맹연습에 들어갔다.
몸이 나쁘면 답이 없어...무한반복밖에
일단 순서와 동작 외우는 것부터 좌절.. 오른발이 나가야 하는데 왼발이 나가고, 한 바퀴 돌고 나면 정신이 혼미해졌다. 어찌어찌 비슷하게 순서를 외운 뒤에는 디테일 수정에 들어갔다. 팔의 각도는 어떤지, 고개는 어디를 향해 있는지(생각보다 머리가 중요하다), 어느 박자에 움직여야 하는지 쌤의 영상과 원곡 아이돌 영상을 슬로우 모드로 보며 계속 수정했다. 그 뒤에는 내 몸에 붙이기 위해 0.5배속, 0.75배속, 1배속, 1.25배속으로 번갈아 연습했다. 1.25배속을 하다 원곡 속도로 되돌아오면 한결 여유가 생겼다. 10년 전 방송댄스 수업을 들었을 때는 수업시간에만 췄지, 이렇게 열심히 연습까지 하진 않았는데 유튜브 촬영이 뭐라고! 어쨌든 연습한 덕에 틀리지 않고 첫 촬영을 무사히 마치고, 춤에 필이 있다며 선배들에게 칭찬도 받았다. ㅋㅋ 이런 나를 보며 부녀는 쯧쯔 혀를 찼지만 나는 뿌듯했다. 음악에 몸이 저절로 움직일 정도로 수백 번 반복을 해야 비로소 뭔가 멋지게 해 볼 여유도 생기는 것임을 이번에 배웠다.안무숙지도 못했다면 긴장이 되고, 긴장되면 뻣뻣해지고, 뻣뻣한 춤은 멋이 있을 수가 없다.
뭐 이건 내돈 내는 취미니까 이런 연습도 즐겁게 했지만 남의 돈을 받아야 하는 밥벌이에서는 매우 스트레스받는 일이다. 나는 20년째 강의를 나가고 있는데 처음 몇 년은 정말 괴로웠다. 초짜 티를 낼 수도 없는데 초짜이니… 일주일을 준비해 간 강의 자료가 30분 만에 끝나버렸을 때(강의시간은 2시간이었다), 열심히 듣는 줄 알았던 학생들이 딴짓을 하고 있었을 때, 질문에 대답 못하고 쩔쩔맬 때… 어찌나 당황스럽던지! 초반 몇 년은 매학기 강의 시작 전에 긴장이 심해서 악몽도 꿨다. 하지만 시간이 약이다. 10년이 지나자 페이지 한 장 띄워놓고 30분 떠들 수 있을 만큼(농담도 섞어가며) 여유가 생겼고, 수업에 집중 안 하는 학생들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그리고 모든 학생들의 수업에 대한 의지와 능력치가 제각각이라는 경험치도 쌓게 됐고, 모르면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도 생겼다. 1만 시간의 법칙을 체감했다(매일 2-3시간씩 한다면 대략 10년은 해야 하는 것 같다).
힘 빼기는 중요하지만 쉽게 얻을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기술이라기보다는 꾸준한 시간투자와 반복의 결과이다. 좌절도 하고, 고민도 하고, 자괴감도 들겠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무언가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저절로 힘이 빠진다. 힘을 빼려고 노력해 봤자 힘이 빠지진 않는다(물론 타고난 천재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일반인이고 천재도 시간투자 없이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써놓고 보니.. 내 글이 재미없다고 징징거리는 게 참 우습구나! 한 달 써보고 재미있길 바라나? 천재도 아닌데. 나중에(한 90살쯤?) “저두 처음엔 글쓰기가 매우 어려웠지요…”라고 인터뷰할 날을 상상하며 다음 쓰레기를 써봐야겠다(어제 팟캐스트에서 들은 말인데 이경미 감독은 작업이 안 풀릴 때 “쓰레기를 쓰겠어!”라고 맘먹으면 어떻게든 글이 써진다고 하더라. 이경미 감독의 책 <잘돼가? 무엇이든>도 참 재밌게 읽었는데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젠장!).
이 글은 새벽에 잠이 안 와 그냥 술술 써버린 건데 막상 또 잘 쓰려고 하면 재미없고 딱딱한 글이 나오겠지만… 어쩔 수 없다! 잘 쓰고 싶은 의지만 남아있으면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겁게 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