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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드저널 Jan 24. 2018

끌리는 대로 살아도 될까?

디자이너 문찬위 이야기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인생의 방향성을 점검하는 여행을 떠나겠다는 친구에게, 취직에 유리한 학과 대신 미래가 불확실한 학과에 진학하려는 자녀에게, 저축 대신 취미를 선택한 동료에게, 대다수가 선택하지 않는 길을 가려는 사람에게 우리는 흔히 이렇게 말한다. “야, 어떻게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사냐?” 이 한 줄의 문장 앞에서 자신 있게 “왜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못 살아?”라고 되받아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렇지. 역시 끌리는 대로 살 순 없겠지’라고 생각하며 달뜬 마음을 차가운 현실 안으로 담금질해 억지로 식혀버리는 이가 더 많을 것이다.


서울에서 전라남도 나주로 귀농해 농부로 살면서 비파나무를 기르고, ‘그롭자트’라는 핸드메이드 가죽 가방 브랜드를 운영하며, 아내와 함께 딸 이음이를 양육하고, 프리랜서 사진작가로 활동하는 동시에 시즌마다 몇몇 인디 패션 브랜드의 제품 기획자로 일하는 문찬위가 똑같은 질문을 받았다면 아마도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렇게 반문할 것이다. “왜 끌리는 대로 살면 안 되죠? 어차피 우리는 다 죽음을 맞이해야 하잖아요. 이 시간 이후 언제 죽을지 몰라요. 그러니까 살아 있는 동안 최대한 행복하게 살아야죠. 자기가 좋아하는 걸 빨리 찾으면 찾을수록 살아 있는 동안 행복할 수 있는 시간도 더 길어지는 거예요. 왜 망설이는 건가요?”


editor 최혜진 photo 이주연 film 최소명


https://vimeo.com/198301486



귀농한 디자이너라고 알고 있는데, 정확히 몇 가지 직업을 갖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귀농한 지는 4년 되었지만, 농사일이 공부할 게 워낙 많아서 올해 처음으로 수확을 했어요. 약으로 쓰는 과실인 비파를 재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울에 살 때 하던 웹 디자인, 의상 디자인 일을 계속 받아서 프리랜서로 하고 있고요. 대형 패션 브랜드 일은 아니고 인디 브랜드에서 제품 개발을 의뢰하면 의도에 맞게 소재를 선택하고, 실루엣을 잡고 패턴을 제작해서 샘플링까지 총괄하는 기획자 일을 해요. 1년에 네 권씩 나오는 핸드메이드 소잉 매거진 사진 촬영도 맡고 있고요. 마지막으로 가죽공예 전문가인 아내와 함께 가죽 가방 브랜드를 운영합니다. 예전에 일 때문에 제 취향에 꼭 맞는 가죽 가방을 찾으러 다닌 적이 있는데, 마땅한 것이 없어서 저희가 직접 브랜드를 만들었어요.


디자이너라면 트렌드의 중심이라고 하는 서울에 살아야 할 것만 같은데, 농촌 생활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서울에서 일하며 살던 총각 시절부터 저는 트렌드와 상관없는 삶을 살아온 것 같아요. 사람마다 각자의 표현 욕구가 다른데도 트렌드라는 미명 아래 같은 방식으로 옷 입는 현상을 의아하게 여겼거든요. 하려는 일이 꼭 서울에 살아야만 실현 가능하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제가 하는 일은 공간에 크게 구애받을 필요가 없어요. 스케치북, 연필, 지우개, 노트만 있으면 지구 어디에서든 할 수 있죠. 또 저는 선택의 관점이 명확해요.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최대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시간을 스스로 많이 확보해야 한다고 믿어요. 서울에서는 보통 출퇴근 시간으로 1시간씩 썼는데 여기에선 10분이면 충분해요. 그래서 저는 하루에 50분을 벌었죠. 재미있는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번 셈이에요. 여전히 서울에 일이 있기에 일주일에 하루는 출장을 가죠. 이틀은 비파 농장이 있는 완도로 출장 가고요. 하루를 위해서 아등바등 도시에 사는 건 어리석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마음 편하게 가족을 오랫동안 볼 수 있는 장소에서 일하기로 결정한 거예요. 행복하려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총각 시절에 귀농했다고 들었어요. 장가갈 걱정이 됐을 법도 한데요?
네, 아내를 만나기 전에 이미 귀농한 상태였어요. 아내는 스승과 제자 사이로 만났는데, 아내는 시골에서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는 여자였어요. 광주에서 가죽 공방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귀농한 저를 굉장히 신기하게 여겼죠. 가죽을 다루는 법에 대한 대화를 하며 수업을 받다가 점점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이야기했고,
둘이 꿈꾸는 행복한 가정상이 비슷하다는 걸 알았어요. 저와 연애하면서 시골 생활의 재미를 알게 됐고요. 지금은 호미질을 얼마나 잘하는데요.(웃음) 저로선 엄청난 행운이죠. 제 이런 모습을 좋아해주는 아내가 있다는 게 항상 감사해요. 매일 저녁, 딸 이음이를 재우고 나면 둘이 차나 맥주를 한잔씩 하면서 저희 가방 브랜드 그롭자트를 어떻게 일궈나갈지 상상하고 대화해요. 아내는 가죽을 다루는 걸 좋아하면서 기술도 있고, 저는 의도에 맞는 기획을 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이음이에게 물려주기에 손색없는 가방, 100년은 쓸 수 있는 가방을 만드는 게 저희의 목표입니다.



30대가 넘어서도 여전히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몰라 고민하는 분이 많습니다. 인생의 방향성을 잡아갈 때 가장 유용했던 경험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끌림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지 않고 거기에 집중했어요. 끌리는 게 있으면 그걸 작게나마 경험해봤어요. 예를 들어 사진에 호기심이 생기고 재미가 느껴지면 보급기 이상의 카메라 장비를 구입해보는 거죠. 그 정도는 어렵지 않게 실천할 수 있잖아요. 해보고 아니면 카메라는 중고로 되팔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경험을 해보면 감이 와요. 이게 진짜 내가 원하는 일인지 아닌지.


그렇게 끌리는 걸 조금 하다 말면 남는 게 뭐냐고 반문하는 분도 있을 거예요. 중도 포기하기 싫어서 아예 시작도 안 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남는 게 없는 것처럼 보여도 그게 다 남는 거예요. 다음부터는 제외시킨 일을 안 하면 되거든요. 선택지가 줄어들기 때문에 집중력이 생겨요. 진짜 내가 원하는 모습대로 내 삶을 깎아나가는데 필요한 경험이니까 전혀 아깝지 않아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으면 아등바등 타인과 경쟁하며 살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고,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강박에서도 좀 놓여나요. 남을 밑으로 깎아내리지 않고도 행복해질 수 있는 상태로 내 삶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니 아깝지 않죠.


성장기를 어떻게 보냈는지 궁금하네요.
저는 진심으로 어머니, 아버지를 존경해요. 제가 어릴 때 집이 무척 가난했어요. 그런데 가난이 싫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게끔 저를 키워주셨어요. 남들이 좋은 운동화 신을 때 나는 그걸 못 신는다고 해서 슬프거나 비참해질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셨죠. 제가 공부에 별 취미가 없으니 공부하라는 말씀도 딱히 안 하셨어요. 아이가 살아가는 데 고등학교에서 가르쳐주는 미적분보다 중요한 게 있다고 생각하신 거죠. 스무 살 때 제가 운전면허를 따자마자 허름한 자동차를 한 대 사주셨고, 저에게 “세상을 많이 봐라. 하고 싶은 대로 해봐라”라고 말씀해주셨어요. 부모님이 허락해주신 자유 안에서 마음껏 저 스스로를 탐험한 것 같아요.



끌림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지 않고 거기에 집중했어요. 끌리는 게 있으면 그걸 작게나마 경험해봤어요. 

부모에게 물려받은 정신적 유산 가운데 가장 소중한 건 무엇인가요?
저도 딸을 낳고 보니 이제 두 분이 제게 알려주고 싶었던 게 뭔지 이해할 수 있겠어요. “상황이 좋지 않다고 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까지 부정적일 필요는 없다. 어떤 환경에서든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너는 행복할 수 있다”라고 가르쳐주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놀라운 건 두 분이 말씀만 그렇게 하는 게 아니고, 노년기에 접어든 지금도 그런 방식으로 본인들의 삶을 살고 계신다는 점이에요. 어머니는 저와 함께 귀농해서 존경하는 헬렌 니어링처럼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고 계시는데, 테니스도 선수급으로 치면서 건강도 챙기시지요. 또 저에게 “나는 심각한 병에 걸려 죽음이 다가온다는 걸 알면 굶겠다. 죽음을 받아들이겠다. 그리고 수목장을 해줘라. 성묘 대신 나무 그늘 아래로 엄마를 만나러 와줘라”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본인의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이 명확하세요.


딸 이음이가 세상에 나오고 처음 아버지라는 역할을 부여받았을 때 혼란스럽진 않았나요?
귀농 후 제 삶이 어느 정도 안정되고 아이와 시간을 많이 보낼 수 있겠다고 생각한 순간에 맞춰서 이음이가 태어나 당황스럽진 않았어요. 육아를 해보니 제가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어요. 깊이 있는 재미랄까요. 이음이가 세상에 반응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워요. 흔히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우리 아이는 건강했으면, 공부를 잘했으면...’ 이런 바람을 갖잖아요. 그런데 이음이가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이 자연스럽게 바뀌어가요. ‘이 아이가 하고 싶은 일, 재미를 느끼는 일, 좋아하는 일을 잘 찾아서 자기 세계를 펼쳤으면 좋겠다’라고요. 그러니까 부모로서 바람은 점점 없어지고 그저 지켜봐주는 시선만 남는 느낌이랄까요.


부모가 당신에게 자유를 허락하고 지켜봐준 것처럼요?
어릴 때 “엄마처럼 커야지. 아빠처럼 커야지” 입버릇처럼 말했어요. 그런데 부모님 역시 불완전한 사람이에요. 단점들이 있죠. 지금도 두 분끼리 만나면 아웅다웅 싸워요. 제가 불편하게 느끼는 부모님의 단점을 보면서 그 단점들이 제 안에 지독하게 박혀 있다는 자각을 해요. 동시에 저는 그 단점을 고쳐서 부모님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고요. 이음이도 저를 보면서 똑같이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엄마 아빠처럼 원하는 대로 삶을 펼치며 살고 싶다. 그리고 나는 부모님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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