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데이트 로맨틱, 성공적.

(feat.아들)

by 봄여사

오랜만에 아들과의 나들이를 계획했다.

몇 달 전 [장줄리앙의 종이세상]이라는 전시회 얼리버드 티켓을 사두었는데 매 주말마다 친구들과 노느라 스케줄이 꽉 찬 아들은 엄마와의 시간을 쉽게 허락해주지 않았다. 사실 나도 주말이면 집에서 쉬고 싶기도 했고 굳이 싫다는 아이를 억지로 끌고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기에 미루고 미루었다. 그러다 보니 이제 티켓 유효기간이 딱 하루남고 말았네. 오늘 가지 않으면 쓰레기가 되고 마는 티켓을 버릴 수는 없기에 토요일 느지막이 늦잠을 자고 일어나 아들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다.


"엄마가 디~~ 게 재밌고 인기 많다는 미술전시를 예약했어. 같이 가볼래?"

"아, 미술관 재미없어. 싫어."


단칼에 거절당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엄마가 같이 미술관 가자, 박물관 가자, 공원산책 가자고 하면 신나서 따라나서던 아들이었는데. 그치만 너의 거절에도 엄마는 굴하지 않는다. 돈을 날릴 수는 없으니까.


"가자~ 엄마는 오랜만에 너랑 둘이서만 가고 싶어. 동생은 아빠랑 놀아라고 하고 우리 둘만 가는 거야. 어때?"


아이는 '둘만'이라는 단어에 꽂힌듯했다.

5살 어린 동생이 늘 어디든 함께 해야 하기에 감수해야 하는 말 못 할 불편함, 엄마를 독차지 못하는 아쉬움이 왜 없었겠나. 오롯이 엄마와 둘만의 시간이라고 하니 아이에게도 솔깃했다보다. 드디어 같이 가겠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우리는 오랜만에 손을 꼭 잡고 지하철을 타고 서울로 향했다. 30살까지 지방에서만 살던 나는 이 나이가 되어서도 서울 나들이만 한다고 하면 설렌다. 아니다. 오늘 이렇게 가뿐하고 기분이 좋은 건 서울에 가서가 아니라 내 옆에 있는 이 녀석때문이겠지. 이 기세를 몰아 오늘은 아들과의 감성 터지는 카페 데이트까지 성공해보려 이리 저리 머리를 굴려본다. 지하철에 내려 슬그머니 여기 근처에서 우리 맛있는거 하나 먹고가자고 말을 꺼냈더니,

"좋아. 저기 맥도날드 있다! 우리 감튀랑 아이스크림 먹자."

나의 대답이 떨어지기도 전에 맥도날드로 뛰어가는 너란 놈. 기대한 내가 잘못이지. 뛰어가는 너의 뒷모습을 보며 오붓한 카페 데이트를 하고싶다는 나의 말은 꾹 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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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전시관람이 몇 년만이더라. 재작년에 아들과 함께 갔던 미술관이 마지막이니 2년도 넘었겠구나. 아이는 단순하고 직관적으로 표현한 여러 그림들을 보고 킥킥대며 굳이 몸소 행위예술로 표현했고, 코끼리 그림 하나를 보고도 우리는 "저건 코가 긴 돼지 같다, 풀만 먹어도 저렇게 살이 찐다, 나는 왜 풀만 먹는데 이렇게 말랐냐(아들은 육식을 거부한다. 고기가 세상에서 제일 맛이 없다고. 이런 초딩남아 있나요?)"와 같은 별 쓸모없는 온갖 수다를 떨어가며 전시를 관람했다. 미술전시를 관람한 게 아니라, 작품을 보고 누가 헛소리를 많이 하나 대결하는 게 더 맞는 표현일지 모르겠다.




그렇게 아주 오랜만에 로맨틱(이건 아닌 것 같기도..), 성공적 데이트를 끝내고 아들에게 다음 데이트를 신청한다.


"오늘 미술전시 어땠어? 엄마는 오랜만에 우리 둘이 노니까 너무 좋더라. 우리 한 달에 한 번씩 이렇게 둘이서만 나올래? 너무 좋지?"

"그래."


아빠를 닮아 벌써부터 AI주니어 조짐이 보이는 아들은 엄마의 온갖 설레발과 호들갑에도 어떤 리액션 없이 대답만 하고 돌아서 나를 실망시켰으나 그래도 굴하지 않겠다.


널 낳는 순간 엄마는 이미 알았거든. 영원히 끝나지 않을 애절한 짝사랑이 시작되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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