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세상에 불릴 나의 이름을 찾는 과정
이번 독서모임의 책은 [시대예보:호명사회]라는 처음 들어보는 작가의, 처음 들어보는 제목의 낯선 책이었다. 아마 독서모임이 아니었더라면 서점에서 지나쳐버리고 말았을 책. 나의 기호에는 전혀 맞지 않는 책이어서 첫 장부터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다른 몇 권을 읽어내는 동안 이 책만큼은 몇 장을 채 넘기지 못한고 그대로인 상태로 몇 일채 방치만 되어가고 있는 불쌍한 책이여...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과감히 앞부분을 날리고 2장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그 순간 술술 넘어가는 책장과 계속해서 달리는 태그들. 어제와 다른 내일이 펼쳐지는 매일매일이 새로운 세상 속에서 마흔이 넘은 내가 고민하고 있는 것들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정리해 보게 되었다. 다 읽어내니 내게 많은 자극과 영감을 준 책으로 기록될 것 같다. 완독해 낸 것이 아주 뿌듯하다. 잘했어 나 자신!
1. 나의 호오(好惡)
개인이 전략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고유한 재능을 발견하고, 이 재능이 현시대에 어떻게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지 심도 있게 고민해야 합니다. 그 과정의 출발점은 개인의 '호오好惡', 즉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대한 이해입니다. 외부의 기준보다 자신에서 비롯된 질문에서 본인이 더 잘할 수 있고 오래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 이는 자신에 맞는 '본업'을 발견하는 길이며, 무엇보다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서도 중요한 일입니다. [시대예보:호명사회/호오에서 자립을 찾다]
- 호(好) : 조용히 혼자 있는 것. 계획을 세우는 것. 계획을 세운 대로 실행해 내는 것. 아침에 직접 내려 마시는 드립커피. 육퇴 후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 잔. 책을 읽는 나. 글을 쓰는 나. 내 교실. 남편과의 수다. 신맛이 덜한 화이트와인. 잘 발효되어 구수한 깜파뉴와 샤워도우. 건강한 한 끼 식사. 휴식 같은 여행. 조용한 시골 마을. 제주도. 한 겨울의 온천. 캠핑의 아침. 봄. 기록하는 일.
- 오(惡) : 계획되지 않은 일들. 어질러져 있는 집안. 근력운동. 정크푸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허비한 시간. 다른 사람의 계획에 맞추는 것. 사람 많은 장소. 기다림. 복잡한 도시. 겨울. 추위. 거절. 잔소리. 프레젠테이션.
2. 그래서 나는 어떤 이름으로 불리고 싶은가?
내가 교류해 온 사람들의 교집합이 곧 '나'입니다. 내가 남긴 글이 '나'입니다. 내가 좋아해서 시간과 열정을 쏟았던 일들이 '나'입니다. 내가 남긴 나의 모든 흔적들이 바로 '나'입니다. 그 자료들을 통해 '나'의 안에서 답을 찾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다음에 '세상에 불릴 나의 이름이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조직과의 관계에서 벗어나 온전히 나는 누구인가 정의하는 것이 출발에 선 '나의 이름'입니다. [시대예보:호명사회/호명사회의 도래]
당신이 가장 꾸준히 해온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만약 그 어떤 것도 꾸준히 해낸 것이 없다면 어떤 메시지를 통해 세상과 소통해 왔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자신만이 아카이브가 있다면 당신은 이미 성공한 사람입니다. 경력과 이력으로 점철된 성긴 기록은 이제 매일의 조밀한 기록으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이 기록이 차곡차곡 쌓여 스토리로 연결된 아카이브는 각자의 서사를 더 단단하게 합니다. [시대예보:호명사회/호명사회의 도래]
나의 이름 앞에는 어떤 수식어를 붙이고 싶은지 고민해 본다. 현재의 내 수식어는 엄마, 아내, 선생님, 읽는 사람, 쓰는 사람(아니지, 쓰려고 애쓰는 사람) 정도로 정리될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평범한 이들과 같이 직장에서는 선생님으로 불리고, 그 외의 시간은 가족들을 위해 살고 있는 현실적은 40대 보통 여자의 삶이자 누구나 가지고 있는 수식어일지도. 그래서 내 이름 앞에 다른 사람들과 다른 오직 '나만의' 수식어를 붙이고 싶은데 아직 나는 나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내 기준에 이걸 찾은 사람이 대단할 지경.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진작에 알아채고, 그 일을 함으로써 시간을 보내고, 그 시간의 결과를 인정받은 사람. 정말이지 참으로 부럽다. 나는 아직도 내 이름 앞에 붙일, 나에게 딱 맞는 이름을 찾지 못했다. 이제 시작될 40대의 삶은 아마도 내 이름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3. 대등한 연대
자기 이름으로 불리는 이들의 덕목은 동류를 모의고 선의의 네트워크를 만드는 힘입니다. 이는 '대등함'에 대한 높은 기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드높이는 것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그의 이름을 불러줄 수 있는 품성이기도 합니다.
(중략) 핵개인이 서로 연대해 나가는 과정에서 같은 고민을 나누는 동료들과 함께 성장하는 기쁨을 누리는 것은 대등함을 바탕으로 타인을 존중하는 이들만이 얻을 수 있는 선물 같은 것입니다. 그 과정이 때로는 고단하고 외로울지 몰라도 우리는 결국 그 길 위에서 진정한 자아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시대예보:호명사회/호명사회의 도래]
이 부분을 읽는 내내 슬초 브런치 3기 모임 생각이 많이 났다. 내가 유일하게 속해있는 동호 네트워크. 나의 취미와 관심은 여러 분야에 뻗어있지만 그것을 타인과 연대할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나는 완전한 내향형이라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 교류를 하는데 굉장히 높은 장벽을 쌓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형성되어 있는 관계를 잘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편이고, 애써 새로운 관계를 맺기 위해 벽을 넘어야 할 때는 어쩌다 알게 되어 친하게 지내게 된 아이 친구 엄마, 동네 엄마들 등 아이와 관련된 일이 아니고서는 없었다. 그런 나에게 작년 가을에 만난, 오로지 나의 의지로 나간 자리에서 맺게 된 연대. 그게 바로 슬초 브런치 3기 피오나. 비록 다른 작가님들보다 열심히 읽고 쓰고 활동하지는 못하더라도, 가끔 톡방에 올라오는 글들을 읽는 것만으로도 내게 신선한 자극과 동기가 되어준다. 기존이 나였더라면 읽지 않았을, 전혀 새로운 분야의 책을 읽고 새로운 자극을 받고 이렇게 글까지 쓰게 하는 그 모든 것이 바로 이 모임에서 출발되었다. 덕분에 같은 것을 고민하고 함께 나누며, 함께 하는 동료의 성장을 바라보는 기쁨을 감사하게도 누리고 있다. 느슨하면서도 끈끈한 이 연대가 지속되어 우리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빛을 발하는 핵개인이 될 수 있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