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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바람 언덕, 옆집 은퇴부부랑 함께 산책해 보실라우!

옆집 은퇴부부의 두 마리 토끼 잡기 7(거창 '별바람 언덕'편)

by 숲song 꽃song
【옆집 은퇴부부의 한마디】
옆집 부부는 은퇴 후 터득한 지혜, '따로 또 같이'를 실천하며 살려고 해요. 노후의 삶은 각자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누리도록 응원해 주고, 틈틈이 부부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즐겁게 살고 싶은 것이지요. 그래서 평소에는 각자의 취미생활과 동호모임 활동을 하며 자유롭게 지내다가 둘 다 특별한 일이 없는 날이면 함께 길을 나섭니다. 대부분 걷는 즐거움과 읽는 즐거움의 두 마리 토끼 잡기가 목적이지만, 때로는 새로운 즐거움을 잡으러 떠나기 하지요. 나이를 고려하여 오전엔 2~3시간 정도의 걷기 좋은 길을 걸으며 건강도 챙기고, 오후엔 분위기 좋은 카페나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배움과 성장을 멈추지 않으려고 해요.


며칠째 이어진 비 때문일까. 마음까지 눅눅해졌다. 이럴 땐 어디든 나가 바람을 쐬며 마음을 말릴 필요가 있다.

눈을 뜨자, 하늘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구름을 바라보던 옆집 남편이 말했다.


"오늘은 구름 구경하기 좋을 것 같은데, 거창 별바람 언덕을 걸어볼까요? 오후에는 카페에서 책 읽고."


별바람 언덕은 이달 초에 한 번 다녀왔던 곳이다. 누구나 편히 걸을 수 있는 무장애 나눔 데크길과 가을에 피는 보랏빛 아스타꽃이 아름답다는 소문을 듣고 불쑥 찾아갔었다. 하지만 날도 흐리고 꽃이 피지 않아서 아쉬움이 남았던 곳이다. "아스타꽃이 필 무렵 다시 오자"던 말을 옆집 남편이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그곳은 2022년 포브스 코리아가 꼽은 '전국 명산 핫플레이스 TOP 9'에 포함된 곳이기도 하다. 올해는 9월 19일부터 10월 12일까지 '보랏빛 노을 속으로'라는 주제로 축제가 열린다. 다양한 행사가 풍성한 축제 기간도 좋지만, 우리처럼 시간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평일의 한적한 나들이가 더욱 매력적이다. 거창읍을 벗어나 감악산 자락으로 접어들자 곳곳에 행사 포스터가 부착되어 있고, 행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언덕에 가까워지자, 양옆으로 보랏빛 아스타꽃밭이 드넓게 펼쳐진 게 보였다.'혹시 이번에도 안 피었으면 어쩌나'했던 걱정이 한순간 달아났다.




별바람 언덕은 주차장을 중심으로 위쪽에는 무장애 나눔 데크길이, 아래쪽에는 전망대와 아스타꽃길, 구절초 꽃길이 있다. 무장애 나눔길은 노약자, 휠체어 이용자, 유아차 동반자 등 교통 약자들도 편안히 숲 체험을 할 수 있도록 계단 없이 잘 조성되어 있다. 해발 900m에 있어 '감악고도(紺岳高道)'라고도 불린다. 3.5km의 짧은 둘레길이지만, 감악산을 중앙에 두고 지리산, 가야산, 황매산, 덕유산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 4곳과 포토존이 있어 산책하듯 걸으며, 멀리 펼쳐진 능선을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다.

무장애 나눔 길

점심시간을 고려해 1시간 반 정도 머물기로 하고, 각자 원하는 길을 선택해 걷기로 했다. 구름과 산세를 보고 싶었던 옆집 남편은 무장애 데크길로, 꽃을 보고 싶었던 옆집 아내는 아스타·구절초 꽃길로 향했다. 은퇴 후 터득한 '따로 또 같이'의 생활 지혜가 이번에도 발휘되는 순간이다.


아스타꽃이 활짝 핀 언덕은 장관이었다. 풍력 발전기와 어우러진 보랏빛 꽃밭을 걷다 보니, 잠자고 있던 낭만 감성이 꿈틀거린다. 축제 주제가 '보랏빛 노을 속으로'라는 걸 떠올리며, 노을 질 무렵 이 언덕에 돗자리를 펴고 노을과 별과 달을 바라본다면 얼마나 황홀할까 상상해 본다.

이번엔 벌개미취와 구절초 언덕길로 걸음을 옮겨본다. 벌개미취는 시들어가고, 구절초는 막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했다. 아직 만개 전이라 사람 발길이 드물어 오히려 한적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었다. 지금 상태라면 축제가 시작될 즈음에는 활짝 피어 더욱 볼만할 것 같다. 자작나무와 소나무 숲, 바위가 어우러진 구절초 꽃밭 위로 나비들이 분주하게 날아다녔다.

주황빛 바탕에 검은 점이 박힌 네발나비가 구절초와 큰 꿩의비름 꽃 사이를 오가며 꿀을 빠는 모습은 매우 흥미로웠다. 끊임없이 날개를 접었다 폈다 반복하면서 얼굴의 뿔처럼 뾰족한 부분이 좌우로 갈라지면서 빨대잎을 꺼내어 꿀을 빤다. 여름형은 주로 나무 진에 모이고, 가을형은 구절초와 산국 등 꽃에서 꿀을 빤다니, 내가 본 건 가을형인 듯했다. 꽃과 나비가 어울리는 모습을 지켜보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났다.

옆집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무장애 데크길을 걷고 난 뒤 소나무 아래서 쉬고 있을 테니 충분히 즐기고 오란다. 한 번 꽃밭에 들어가면 홀라당 시간을 잊어버리는 옆집 아내를 향한 배려였다. 고마운 마음으로 옆집 남편 있는 곳으로 이동하면서 다시 한번 천천히 보랏빛 아스타꽃밭을 만끽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별바람 언덕에서의 산책은 눅눅했던 마음을 보송보송 말리기에 충분했다.

간단한 점심 식사 후 읍내 카페에 들러 조용히 책을 읽으며 오후를 보냈다. 옆집 남편은 정호승의 詩가 있는 산문집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정호승/비채>를, 옆집 아내는 독서 모임 선정 도서인 <플라톤의 인생수업/장재형 지음/다산초당>을 읽으며 밑줄 친 문장들을 정리했다.


걷기와 책 읽기는 노후를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 , 옆집 부부가 꾸준히 실천하고 있는 생활 습관이자 즐거움이다. 서로 다른 점이 많아 갈등이 길 때도 있지만, 다행히 둘 다 이 두 가지를 좋아하는 덕분에 우리의 삶이 조금씩 더 단단해지고 있다. 오전 걷고 싶은 길을 마음껏 걷고, 오후엔 읽고 싶은 책을 실컷 읽었으니 오늘도 더없이 좋은 하루다.


이 글을 쓴 시점은 9월 15일이다.

<거창 별바람 언덕 행사 정보>

<제5회 감악산 꽃별 여행>
- 행사 주제 : 보라 빛 노을 속으로
- 행사 기간 : 2025. 9. 19(금)~10.12(일)
- 행사 장소 : 거창 별바람 언덕
- 개장 행사 : 2025. 9. 23(화). 15:00 / 축제장 야외무대
- 부대 행사 : 꽃별마켓, 먹거리 장터, 버스킹 공연, 노을빛 언덕 음악회



*이 글은 오마이 뉴스에도 실린 글입니다. 내용은 브런치글과 살짝 다릅니다.

https://omn.kr/2fcv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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