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늘도 생명을 먹는다

설 명절에 함께 읽고 싶은 그림책 <생명을 먹어요>

by 숲song 꽃song

설 명절이 다가오니 동네 가게와 온라인 쇼핑몰, 마트를 가릴 것 없이 정육 코너가 유난히 붐빈다. 평소에도 고기는 밥상에 자주 오르는 식재료지만, 명절만큼은 그 인기가 남다르다.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선물 품목이자 가족들의 젓가락이 가장 분주히 오가는 명절 음식의 주인공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 위에 올라 입으로 들어갈 때까지 우리는 그것을 그저 ‘음식 재료’로만 여긴다. 그 고기가 어떤 사람들의 손을 거치고 어떤 시간을 지나 여기까지 왔는지에 대해서는 굳이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참여하는 일본어 그림책 낭독 모임에서 2월 특별 기획으로 그림책 『생명을 먹어요』를 낭독하기로 했다. 낭독 연습을 위해 여러 번 책을 읽다가, 이 그림책이야말로 설 즈음 어른과 아이가 함께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어판 그림책 『생명을 먹어요』는 '우치다 미치코'가 글을 쓰고 '모로에 가즈미'가 그림을 그렸으며 '김숙'이 옮겼다.

『생명을 먹어요』라는 제목은 단도직입적이다. 우리는 모두 다른 생명을 먹으며 자신의 생명을 이어간다. 분명한 사실이지만 정면으로 마주하기에는 어딘가 불편하고 무거운 진실이다. 처음 이 제목을 보았을 때 마음이 크게 움찔했고,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림책은 우리가 매일 아무렇지 않게 먹는 ‘고기’ 뒤에 숨겨진 시간을 도축업자 사카모토 씨의 하루를 통해 보여준다.

“소를 잡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도 소고기를 먹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일이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죽기 전의 소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이 일이 싫어졌습니다.‘그만둘 거야. 언젠가는 그만둘 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일을 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동안 인간의 육식이 초래하는 환경 문제나 동물권에 대해서는 적잖이 고민해 왔다. 하지만 매일같이 죽음을 앞둔 동물의 눈을 마주해야 하는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는 한 번도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 그림책을 보며 처음으로 사카모토 씨의 마음을 상상해 보았다.


그는 어느 날 초등학교 3학년 아들 시노부의 학교에 학부모 참관수업을 보러 간다. 사회 시간의 주제는 ‘여러 가지 직업’이었다. 선생님은 부모님의 직업을 알고 있는지 아이들에게 묻는다. 자신의 일에 회의를 느끼고 있던 사카모토 씨는 아들의 대답이 궁금했다.

“우리 아빠는 정육점에서 일합니다. 그냥 보통 정육점에서요.”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은 아빠에게 묻는다.

아빠가 일을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고기를 먹을 수 없는 거지?

아들이 이야기하길, 수업이 끝난 뒤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시노부, 왜 아빠가 그냥 보통 정육점에서 일하신다고 했니?
너희 아빠가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선생님도, 너도, 교장 선생님도, 친구들도 고기를 먹을 수 없어.
아빠는 대단한 일을 하시는 거야.”

그 말을 듣고 사카모토 씨는 조금 더 이 일을 계속해 보겠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하는 일에 회의가 들 때, 누군가의 따뜻한 한마디는 큰 힘이 된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하는 가장에게 자신의 일이 존중받는다는 사실은 더욱 그렇다.


어느 날 도축장으로 소를 실은 트럭 한 대가 들어온다. 그 트럭에서 어린 소녀가 뛰어내린다. 소의 이름은 ‘미야’. 소녀는 미야의 배를 쓰다듬으며 계속해서 말한다.


그림책의 한 장면(미야의 눈물)
“할아버지가 그러는 거야.
미야가 고기가 되지 않으면 우리가 설을 쇨 수 없대.
미야를 팔지 않으면 우리가 힘들어진대.
미안해, 미야. 미안해.”

그 장면을 지켜보던 사카모토 씨의 마음은 다시 흔들린다.


이 대목에서 나는 한동안 소녀의 마음으로 머물렀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에도 외양간이 있었다. 소죽을 끓이며 오빠와 장난치던 기억, 김이 모락모락 나는 소죽을 긴 혀로 핥아먹던 소의 모습, 어느 날 외양간이 비었을 때의 허전함과 슬픔. 유난히 크고 슬퍼 보이던 소의 눈망울.


그날 밤 사카모토 씨는 아들에게 말한다. 미야를 죽이는 일을 하지 못하겠다고, 내일은 쉬겠다고. 하지만 아무런 말이 없던 아들이 한참이 지난 다음 이렇게 부탁한다.

“아무래도 아빠가 하는 게 낫겠어.
아빠가 하지 않으면 미야가 더 괴로울 거야.
아빠가 해주면 좋겠어.”
그림책의 한 장면(소의 눈물)

결국 그는 다시 도축장으로 향한다.

“미야, 미안하다.
네가 고기가 되지 않으면 모두가 곤란해진대.
네가 움직이면 더 괴로울 거야.
그러니 가만히 있어야 해.”

그의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미야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리고 눈물이 또르르 떨어진다. 사카모토 씨는 처음으로 소가 우는 모습을 본다.

소가 우는 모습을 본 그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 마음을 매번 감당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을 것이다. 고기 한 점 뒤에 숨어 있는 수많은 흔들리는 마음과 순간들을 떠올려 보면 어느새 마음이 숙연해진다.


다음 날, 미야의 주인이었던 할아버지가 도축장을 다시 찾는다. 손녀에게 조금 가지고 간 고기를 먹어 보라고 했지만 아이는 울면서 거부했다고 한다. 그때 할아버지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미야 덕분에 우리가 살아갈 수 있게 되었어.
미야에게 고맙다고 하고 먹자꾸나.
우리가 먹지 않으면 죽은 미야에게 더 미안하잖니.”

손녀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미야, 고마워. 잘 먹을게. 맛있다. 참 맛있다.”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도축장을 찾았다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사카모토 씨는 다시 생각한다. 그리고 조금 더 이 일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이 책은 그러니 육식을 줄이라거나 그만두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에게 조용히 묻는다.

우리는 생명을 먹는다는 사실을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소를 보내며 미안하다고 말하던 손녀의 마음을, 어쩔 수 없는 형편을 이야기하던 할아버지의 마음을, 마지막 순간까지 고통을 덜어주려 애썼던 사카모토씨의 마음을 한 번이라도 떠올려 본 적이 있는가 하고.


우리는 오늘도 내일도 생명을 먹고살 것이다. 그 사실을 외면하지 않고, 그림책의 뒤표지에 쓰여 있는 말처럼

“잘 먹겠습니다.” 하고 고맙다고 말하는 일.
“잘 먹었습니다.” 하고 감사하며 남기지 않고 먹는 일.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예의이자 생명에 대한 최소한이자 최고의 보답일지도 모른다.

그림책의 뒷 표지

이 책을 읽으며 한때 우리 집 식탁 위에 붙어 있었던 ‘공양게송(밥상머리 기도)’이 떠올랐다. 오래전 남편과 아들이 템플스테이를 다녀온 뒤 우리는 밥을 먹기 전 늘 함께 공양게송을 외웠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는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을 버리고
건강을 유지하는 약으로 알며
진리를 실천하고자 이 음식을 받습니다.

아이들이 자라고 삶의 자리가 바뀌면서 어느 순간 그 밥상머리 기도는 우리 식탁에서 슬그머니 사라졌다.


곧 설 명절이다. 이번 명절에도 우리 집 명절 밥상에는 반갑게 찾아 올 딸과 아들이 좋아하는 갈비찜과 고기전이 올려질 것이다.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인 설 밥상 앞에서 또다시 밥상머리기도를 함께 외워보자고 말해 볼 생각이다. 그리고 밥상을 물린 뒤에는 차 한 잔을 마시며 남편과 다 큰 딸, 아들에게 그림책 『생명을 먹어요』를 낭랑하고 숙연한 목소리로 읽어줄 것이다.



연휴, 잘 보내셨지요? 이 그림책을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오마이 뉴스에도 기사로 송고했습니다. 명절연휴 워낙 많이 올라온 글들에 밀려 명절이 끝나고 나서야 실리는 바람에 설 명절 전의 시점으로 썼던 글을 이제야 브런치에 올리게 되었어요. 물론 설날 아침, 글에서 말한 것처럼 오랜만에 밥상머리 기도를 해보았답니다. 차를 마시면서 그림책도 함께 읽어보았고요.

이런 연유로 기사글은 브런치글과 시점이 조금 다르게 실렸어요.


https://omn.kr/2h2uf


*그림책 소개 : <생명을 먹어요> 우치다 미치코 글/모로에 가즈미 그림/사토고시 감수/김숙 옮김/만만한 책방(그림책 뒤쪽에는 부록으로 그림책의 감수를 맡은 사토고시의 글과 사진과 작가의 말이 실려있는데, 그림책 못지않은 감동을 담고 있어요. 가까운 도서관이나 서점을 이용하여 그림책을 제대로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공양게송(불교적 가르침과 감사함을 담은 사찰 의식문)

*제목 배경 사진(그림책 '생명을 먹어요' 중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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