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는 세 번째 육아휴직을 보내는 중이다.
첫 번째 육아휴직은 첫째 아이를 낳았을 때 6개월,
두 번째 육아휴직은 둘째 아이를 낳았을 때 10개월,
그리고 그 아이들이 커서 한국 나이로 10살, 8살이 된 지금이 세 번째 육아휴직이다.
사실 작년 중순까지만 하더라도 육아휴직을 낼 생각이 전혀 없었다.
보통 아이가 초등학교 갈 때 휴직을 많이 쓴다고들 하는데..이걸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했던 2021년은 코로나19가 대유행하던 시기로 난 전면 재택근무 중이었고,
집에서 일하면서 짬짬이 아이를 돌보는데 크게 무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굳이 육아휴직 안 써도 되겠는걸? 생각하며 첫째 아이의 초등학교 1학년, 2학년을 보냈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집에 있으며 아이 하교를 돕고 밥을 차려주며 돌보는 것과
(이것도 무지 힘들고 쉽지 않긴했다..)
점점 학년이 올라가는 아이의 공부까지 케어하는 것에는 정말 큰 간극이 있었다.
간혹 하교길에 엄마들을 마주칠때 마다 오고가는 사교육 정보들,
- 사고력 수학학원 다녀요? : 아니요, 거긴 셔틀이 없어서 제가 아이 라이딩을 못해주기 때문에 못 다녀요
- OO 학원 테스트 신청 하셨어요? : 네? 아니요, 거기가 뭐하는 곳이죠? 처음 들어봤는데요....;;;
꾸역꾸역 맘카페 정보를 뒤지고 뒤져 아이 영어학원 스케쥴을 세팅해놓았지만,
숙제 봐주랴, 매번 돌아오는 레벨 테스트 준비하랴,
평일 저녁 7시가 넘어 PC를 끄고 (퇴근을 하고) 아이 공부를 봐주는 것은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곤욕이고 스트레스였다.
- 얼른 숙제하자, 빨리 자야지 키가 크지,
- 가방은 챙겼어? 내일 받아쓰기 시험이 있었네? 연습했어?
- 왜 이걸 몰라? 지난 번에 배우지 않았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한숨과 점점 일그러지는 표정, 그리고 슬슬 내 눈치만 살피는 아이.
그리고 그 시간에도 울리는 회사 메일 알람.
죄 없는 아이에게 온갖 짜증을 내고 아이를 재우고 나면 그 때 부터 또 매일 밤 유튜브의 갖가지 교육 영상을 찾아본다.
'그래, 아이에게 이렇게 말하는거야. 그래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이런 습관을 잡아주어야 한대.'
영상 보는 내내 조급해하고 불안해하며 또 그러면서도 내일부터는 잘해야지 다짐하고 오늘의 나를 반성했다.
위 마음을 반복하다 보면 한 번씩은 남편에게 화살이 돌아가기도 했다.
이 상태로 1년 이상 보내고 나니...지금 내가 하고 있는게 맞는걸까 의문이 들었다.
비싸다는 영어학원을 보내고 있는데 왜 영어가 늘지 않는거 같지?
이렇게 공부해서 명문대에 가는 것이 답일까? 근데 또 대학을 잘 못 가면 너무 속상할거 같은데...
뭐가 맞는거지? 지금 아이들이 다 큰 미래에는 학벌이 중요하지 않다고 해도, 그렇게 설득력 있는 메세지를 전하는 사람들도 명문대 출신 아닌가?
이런저런 고민에 빠져있을때쯤 남편에 내게 말레이시아 국제학교를 권했다.
남편은 중학생 시절 뉴질랜드로 이민 간 친구를 보고 스스로 유학을 결심했다고 한다.
한사코 반대하는 시부모님을 1년 이상 설득한 후 16살에 유학을 떠난 남편은 대학까지 호주에서 마쳤다.
그 경험이 살아가는데 큰 밑바탕이 되었다고 믿는 남편은 내게 아이들이 어렸을때 2년 만이라도 외국에서 지내보는게 어떠냐고 했다.
본인처럼 아이를 외국에서 쭉 공부시킬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그 경험으로 아이들의 생각이 넓어지면 좋겠다고 했다.
- 그래! 외국에서 2년 지내는거 너무 좋지.
- 근데 나 혼자 애 둘을 타국에서 보는게 괜찮을까?
- 그럼 내 일은? 지금 30대에서 40대로 넘어가는 이 애매한 나이에 휴직을 하고 돌아오면 내 커리어는 괜찮을까?
- 그리고 이왕 갈거면 원어민 국가로 가야지, 말레이시아가 과연 맞을까?
영 내키지 않은 제안이라고 생각하며 밍기적대던 2022년 여름,
한창 이직 준비를 하며 면접을 봤던 회사에서 탈락 메일을 받자마자 말레이시아행을 결심했다.
2023년이 되면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서 육아휴직을 낼 수 없다는 것,
내가 퇴사를 하지 않는 이상, 그리고 아이들이 더 크기 전에 온전히 2년을 보낼 마지막 기회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여기서 일을 붙잡고 갈팡질팡 고민하고 스트레스받는 생활에 지쳐있던 그 즈음..
면접 탈락 메일이 나에게 깔끔하면서도 강한 트리거가 되었다.
그렇게 2022년 하반기 업무를 마무리짓고 12월 육아휴직을 낸 나는 두 아이와 말레이시아로 왔다.
세 번째 육아휴직을 보내고 있는 지금,
조금은 들뜨기도 조금은 조급하기도 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앞으로의 2년이, 아니 정확히 말하면 1년 11개월이 무탈하고 의미있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