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봄 Apr 04. 2023

30대 후반, 외국에서 친구를 사귄다는 것

올해 내 나이 서른아홉.

작년 손예진이 나왔던 드라마 '서른아홉'에서 친구들간의 우정을 진하게 담아냈었는데..

말레이시아에 온지 이제 3달이 넘은 나는 지금 친구 만들기에 고군분투 중이다.


작년 12월 이 곳에 온 후 집을 정리하느라, 현지 생활에 적응하느라, 아이들 국제학교를 챙기느라 쉴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나니 어느 순간 무료함이 찾아왔다.

뭔가를 하고 싶은데 뭘 해야할지도..누구랑 해야할지도 모르겠는....그렇다고 막 외롭지는 않지만 또 심심하기도 한 그런 순간말이다.


분명 한국에서 난 친구도 많고, 회사 동료도 많고,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사회적인 성격을 지닌 사람이었는데.

이 곳에 오니 한순간에 모든 인간관계가 다 끊겨버렸다.


'와~~ 살면서 내가 이렇게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곳에서 살게될 줄이야...

지금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하는건가?

와. 이거 참..새로운걸....'


물론 인생을 살면서 새롭고 낯선 환경에 나 혼자 놓이는 경우는 참 많았다.

학년이 바뀌어 새로운 반에 올라갔을 때, 전학을 갔을때,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 진학할 때, 입사했을 때도 아는 친구가 단 한 명도 없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도 뻘쭘한 상황에서 '나 외로워~' 라고 메세지를 보내면 이따 만나서 놀자며 위로해주는 친구가 있었고,

집에 가는 길에 만나 시끌벅쩍 수다를 떨며 고충을 털어놓을 수 있는 마음 편한 친구가 있었다.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갈 때도 같이 간 과 동기가 있었고,

물론 베트남으로 해외 봉사활동 갈 때는 정말 나 혼자였지만, 같이 봉사활동을 온 친구들과 24시간을 한 공간에서 붙어지내다보니 금세 친해질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그런데 이 곳은 정말 다르다.

우선 회사에 다니지 않기 때문에 내가 사람을 사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창구는 학교 엄마들이다.

한국에서도 일하느라 애들 학교 친구 엄마들은 거의 몰랐는데 여기서 그걸 해내야한다.

하교 시간에 학교에서 아이들을 기다리며 잠깐 만나는 그 때를 제외하고는 엄마들과 정기적으로 만나는 자리가 있는 것이 아니니 내가 친해지고 싶으면 먼저 다가가고 연락처를 묻고, 메세지를 보내야 한다.

이미 이 곳 엄마들은 끼리끼리 친해져있으니 내가 친해지고 싶으면 또 그 관계에 끼어들어야 한다.

'와..이건 거의 친구 만들기 중에서도 굉장한 하이레벨 아닌가?

39살 인생 동안 쌓은 내 사회생활 내공을 테스트하는 자리인건가?'


처음 한 달 동안 난 혼자만의 탐색전을 열심히 펼쳤다.

누구랑 친해지면 좋을지, 그저 열심히 사람들을 관찰한 것이다.

육아휴직을 내고 왔으니 영어라도 열심히 해야해. 그러니 저기 저 원어민 엄마랑 친해지고 싶은데..

저 엄마는 뭔가 나랑 안 맞아보여..

저 엄마는 나랑 잘 맞을 거 같은데 뭔가 말을 걸 기회가 없네..


혼자 이리 생각하고 저리 생각하며 단편적인 대화와 만남을 이어가던 중 한 일본인 엄마와 점심을 함께 되었는데, 그 때 뭔가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사실 이 곳에 있는 일본 엄마들은 정말 영어를 거의 못해서 대화를 많이 나눈 적도 없었고, 또 굳이 내가 친해지기 위해 먼저 다가가지도 않고 있었다.

그 날도 에리카라는 일본 엄마가 내게 먼저 점심을 먹자며 연락해온터라 만나게 되었는데,

에리카는 정말 간단한 문장 만들기와 단어 외에는 영어를 거의 하지 못하는 엄마였다.

그래도 부끄러움 없이 영어는 너무 어렵다며 천천히 말해달라고 부탁한다거나, 번역앱을 이용하며 대화를 이어가려고 노력했는데 놀라운 것은 너무 유쾌한 성격으로 그 시간이 하나도 지루하지 않고 너무 즐거웠다는 것이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이렇게 즐겁게 대화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는데,

더욱 놀라운 것은 나와 똑같은 시기에 이 곳에 온, 영어를 거의 한 마디도 잘 못하는 이 일본인 엄마가 이미 친구를 잔뜩 사귀었다는 것이었다.

특유의 활발한 성격으로 엄마들에게 스스럼 없이 편하게 다가가 연락을 이어나가고 친구를 만들었던 것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스스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난 수십년간 한국에서 나와 성격이든 취향이든 환경이든 뭐든 맞는 사람들하고만 관계를 유지해온터라 그 습성을 지금 여기서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였을까.

이리저리 상대방을 재고, 나의 마음을 따지면서 내가 너무 소극적이었던 것은 아니였을까.

"영어"라는 목적에 가려 새로운 친구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있었던 것은 아니였을까.


본인의 엣지를 찾으려면 이전과는 다른 완전 새로운 시선과 시도, 생각이 필요하다고 한다.

나만의 엣지를 찾을 수 있는 이 귀중한 시간을 나는 또 무의식적으로 한국에 살던 39살의 직장인이자 워킹맘의 인식을 유지하며 놓칠 뻔 했던 것은 아닌지....

이제라도 깨달았으니...어디 한 번 친구를 만들어볼까.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세번째 육아휴직 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