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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봄 Apr 18. 2023

육아휴직 5개월차, 다시 일할 수 있을까

나 무슨 일을 하고 싶은가

세 번째 육아휴직은 달라


나는 지금 세 번째 육아휴직 중이다.

첫째 아이를 낳았을 때 6개월,

둘째 아이를 낳았을때 9개월 육아휴직을 사용했었고,

아이들이 커서 (한국나이로) 10살, 8살이 된 지금 세 번째 육아휴직 중이다.


작년 12월 육아휴직을 내고 이 곳 말레이시아에 온 이후로, 일하지 않는 나를 보면서 나 혼자 '아무도 일하지 않는 사람들의 섬'에 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지금 '아무도 일하지 않는 사람들의 섬'에 와 있는데..내가 아는 한국의 동료들은 왜 일하고 있는 것인가..그들을 보면 뭔가 나혼자 두둥실 구름 위에 떠 있는 듯, 현실적이지 않은 느낌조차 들었었다.


첫 번째, 두 번째 육아휴직 때는 이제 막 태어난 아이를 돌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래도 틈틈이 회사 동료들이랑 이야기를 주고받고, 가끔 만나 밥을 먹으며 회사 돌아가는 사정도 듣고, 내가 참여했던 프로젝트의 진행 이야기도 듣고, 또 상사의 욕도 듣다보면 여전히 내가 일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었다.


- 요즘 업계 트렌드는 이렇다-

- 누구는 이번에 승진을 했다드라-

- 누구는 어디로 좋은 대우를 받고 이직을 했다드라-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괜히 나혼자 도태되는 것 같은 조바심이 들고, 어서빨리 복직해서 내 몫을 해내고 싶다는 의욕도 활활 불타올랐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정말 많이 다르다.

내 주변은 전부 국제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케어하는 엄마들 뿐이다. 주재원인 남편을 따라왔거나, 아이 공부를 위해 유학을 결심한 엄마들이 대부분이어서 나처럼 휴직을 내고 온 사람은 거의 없다. 있더라도 나와 일하는 업계가 다르니 통하는 이야기도 없다.

회사 사정 돌아가는 이야기도, 업계 트렌드도 나에게 말해줄 사람은 없다.

한 번은 회사 인트라넷에 접속해서 조직개편 소식도 보고, 업계 정보도 보다가 회사 동료에게 관련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는데, '거기까지 가서 무슨 회사 생각이냐며..아무 생각말고 푹 쉬고 놀다오라는' 핀잔만 듣고 정작 궁금했던 것에 대한 답은 얻지 못했었다.


나 무슨 일을 하고 싶은가?


얼마 전 문득, 나 2년 후에 돌아가서 다시 일할 수 있을까?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나 일을 다시 하고 싶은가? 다시 즐겁게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처음 2년간 육아휴직을 쓰고 말레이시아에 간다고 회사 사람들에게 이야기했을때,

저마다의 반응은 조금씩 각기 달랐었다.

가장 첫 번째 반응은 모두가 공통적으로 '부럽다-' 였고,

그 다음은 각자의 소망이 투영된 답변들이었다.


- 가서 영어 공부 열심히 하고 와서 돌아오면 글로벌회사로 이직해.

- 가서 유튜브 한 번 시작해봐.

- 가서 꾸준히 글 쓰고 관련 책을 한 번 내봐.

- 가서 스마트스토어 열고 온라인쇼핑몰 시작해봐.

- 가서 사업 아이템 구상하고 기회를 잡아봐.

- 그냥 돌아오지마. 거기서 애들 학교 보내면서 살아.


한국에서 위 이야기들을 들었을 때는, 뭔가 말레이시아에서 내 인생을 리셋해볼 수 있을 것 같은 희망감과 동시에 그런데 아무런 것도 해내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에 들었었다.


이 곳에 온 후 1~2달은 굉장한 조급함에 사로잡혔었다. 이제 뭐라도 시작해야한다는 부담감.

사업 아이템을 구상해볼까 싶어 쿠알라룸푸르 위워크도 기웃거리고, 업계 트렌드를 알려주는 사이트로 들락날락해보고, 링크드인도 열어보고, 말레이시아에서 팔만한게 뭐가 있을까 쇼핑몰도 살펴보고 키워드 검색도 해보고 그랬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냥 let it go.

10대든, 20대든, 30대이든 심지어 40대이든, 사람들이 앞으로의 삶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을 토로할때마다 가장 많이 하는 말 중 하나가 '제가 뭘 하고싶은 건지 잘 모르겠어요' 라고 한단다.

나는 꽤나 주도적으로 살아왔다고 믿는데, 대학을 갈 때도, 졸업 후 직장을 선택할 때도 점수나 누군가의 권유가 아닌 나 스스로 선택하며 살아왔는데 불혹을 눈앞에 둔 지금 내가 뭘 할지 선택 장애가 생겨버렸다.

직장 생활 10여년 동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한 순간보다 주어진 과제를 다하며 살아온 날들이 더 많아 그런가보다.


그래서 지금, 나는 무얼 하고 싶은가 생각해봐야할 시점이다.

덴마크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학에 바로 진학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한다.

내가 무엇을 공부하고 싶은지 아직 잘 모르니깐.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 대다수는 고등학교 울타리 밖 세상으로 나가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본인의 진로를 고민하고, 모두가 그것이 당연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단다.

다른 나라 여행을 하기도 하고, 봉사활동을 하기도 하고, 아르바이트를 경험해보면서 말이다.


그래서 나도 지금 그 시간을 가져볼까 한다.

물론 원래 하던 일이 가장 베스트였다며 즐겁게 회사로 복직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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