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챙기는 아이들

by 봄봄

남편 없이 아이 둘과 외국에서 2년을 지내다 보니, 내가 참 잘 했다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아이들의 자립심을 키워준 일이다. 사실 키워줬다기 보다..내가 힘들어서 시키다보니 그렇게 되었다는게 더 맞는 표현인 것 같다.

예전에 한 다큐멘터리에서 한국과 미국 가정의 아침 모습을 비교했던 장면이 기억 난다.


아침 일찍, 한국 엄마는 초등학교에 등교해야하는 딸을 깨운다. 겨우 겨우 눈 뜬 아이의 옷을 골라주고, 머리를 빗겨주고, 꾸벅꾸벅 조는 아이가 행여나 학교에 늦을까봐 입에 아침밥도 떠먹여준다.

반면에 미국 가정에서는 아이 혼자 일어나 세수하고, 옷을 갈아입고, 식탁에 놓인 아침을 챙겨먹고 가방을 직접 챙겨 등교 준비를 마친다.

이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었지만 한국에 있을때 나도 여느 한국 가정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아이를 깨우고, 아침밥을 먹이고, "빨리 빨리"를 반복하며 아이를 재촉하고 서두르며 등교 준비를 했었다.


그런데 이 곳에서 아이들과 셋이서만 지내다보니 이 모든걸 내가 혼자 하기란 역부족이었다.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하나씩 하나씩 아이들에게 집안일에, 스스로의 준비에 동참하길 권유하기 시작했다.


저녁 설거지 중에 세탁기의 완료 알람이 들리면 아이들에게 빨래를 널어달라고 부탁했다.

처음에는 다소 엉망진창이었지만 몇 번 팁을 알려주니 곧잘 따라하고 때로는 나보다 더 크리에이티브한 방법으로 빨래를 널게 되었다. 특히 양말을 널때가 최고인데, 양말 짝에 맞춰서 예쁘고 가지런히 잘 널어 감탄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우리는 정수기가 없어 생수를 사먹고 있는데 찬 생수를 먹기 위해서는 냉장고 마지막 칸에 생수통을 차곡차곡 잘 넣어두어야 한다. 어느 날 내가 깜빡 잊고 물을 넣어놓지 않아 미지근한 물을 먹게 된 아이들이 투덜거렸다.

"엄마는 미지근한 물 먹어도 괜찮아. 차가운 물이 마시고 싶으면 앞으로 너네가 직접 냉장고에 생수통을 채워넣으렴. 엄마는 다른 집안일 할 게 많아서 이것까지 신경쓰기에는 바쁘니깐 너희가 대신 해주면 좋겠어."

이 말을 몇 번 해주었더니 이제는 시키지 않아도 본인들이 칼같이 냉장고에 생수를 채워넣고 있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홀연히 자리에서 일어나는 아이들에게 본인이 먹은 식기는 싱크대에 가져다놓으라고 시켰다. 몇 번은 까먹더니 반복에서 말해주었더니 이제는 자연스러운 행동이 되었다.

이 외에도 본인 책가방은 알아서 챙기라고 했다. 몇 번 준비물을 까먹고 학교에 갔었지만..사실 이게 아이 인생에 영향을 미칠만큼 큰 문제는 아니다. 불편함은 있었지만 이후부터는 더 꼼꼼하게 챙기기 시작했다.

"엄마! 나 오늘 깜빡하고 준비물을 안 가져갔어."

"어머, 그랬어? 수업받는데 큰 지장은 없었어? 앞으로는 꼼꼼하게 체크하도록 해."

이 대화면 끝이다.


어느 날은 아이도 나도 다같이 늦잠을 자는 바람에 아이가 좋아하는 스포츠팀 아침 훈련을 못 가게된 적이 있다. 속상해서 펑펑 우는 아이의 마음은 달래주었지만 너의 훈련이니 앞으로는 전날 일찍 자고 스스로 일찍 일어나보자고 했다. 그 때부터 아이는 중요한 날이 있을 때면 알람을 맞추고 잔다.

이제는 아침 일찍 일어나 세수하고 옷을 다 갈아입은 후 내 방문을 노크하며 나를 깨우는 지경이 되었다.


한 번은 아침에 몸이 너무 좋지 않아 도저히 일어날 힘이 들지 않았다. 오늘은 너희끼리 아침을 챙겨먹고 학교에 갔으면 좋겠다고 하니 알겠다며 내 방문을 조용히 닫았다.

잠시 후 아이가 똑똑 노크 후 내 방문을 열고 말했다.

"엄마, 우리 시리얼로 아침 챙겨먹고, 양치하고 선크림도 꼼꼼하게 잘 발랐어. 이제 자전거타고 학교에 갈게요. 엄마는 푹 쉬세요."

조용히 방문 닫는 아이들을 보면서 기특하고 고마운 마음과 동시에 "꺄~~ 이제 다 키웠다!!" 라는 생각과 함께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한국 학년으로 초등학교 2학년, 4학년인 아이들이니...만일 우리가 한국에 쭉 있었다면 아직도 나와 아빠의 손길을 당연시 받고 있을지 모르겠다.


본인의 빨래감은 세탁기 옆 통에 잘 넣고, 내가 개어둔 옷은 본인 옷장에 잘 챙겨넣는 아이를 보면 뿌듯하다. 앞으로도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스스로 할 줄 아는 것들을 더 늘려나가야지.

그렇게 혼자서도 잘 하는 아이로 키워나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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