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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봄 Mar 03. 2023

국제학교의 인터내셔널데이

우리 아이들은 말레이시아에 있는 국제학교에 다닌다.

영국제 학교로 9월부터 Term 1이 시작하고, 우리는 이곳에 지난 12월에 왔으니깐 1월부터 시작하는 Term 2부터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니깐 이제 학교를 다닌 지는 2달이 채 안되었다.


첫 한 달의 적응을 끝내고 2월이 되니 학교가 연신 들썩였다.

다양한 국적의 아이들이 모여있는 국제학교여서 그런가? 학교 일 년 행사에서 가장 큰 행사 중 하나라는 인터내셔널데이를 맞이해서다.

지난 3년간 팬데믹으로 인터내셔널데이를 못하고 지나간 터라 4년 만에 하는 행사에 들뜬 분위기가 가득했다.


팬데믹 이후 첫 인터내셔널데이, 어떻게 하는거에요?

그런데, 인터내셔널데이를 경험해 본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 문제였다.

학생들도, 학부모도, 심지어 선생님들조차 대다수가 처음 해보는 행사였다.

게다가 기존과 다르게 올해는 나라별 부스도 없다고 했다.

예전에는 학교에 각 나라별 부스를 만들어놓고, 학부모들이 와서 전통용품도 전시해 놓고 대표 음식을 맛보기로 나눠주기도 하고, 조그맣게 게임을 체험해 볼 수 있는 자리도 마련해 놓았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엄마/아빠들이 모여 부스 하나만 잘 만들면 되는 거였는데.....

최근 들어 급격히 늘어난 학생수로 학교가 부담을 느꼈는지 올해는 부스 없이 학부모의 자원봉사로 이루어진다고 했다.

즉, 학부모가 직접 나라별 액티비티를 마련해서 아이의 반으로 찾아가 활동을 하는데 철저히 자원에 의한 것이라고 했다. 읭? 이건 뭐.. 하라는 건가.. 말라는 건가..


학교를 오래 다녔던 학부모들은 학교의 결정에 큰 실망감을 표하며 아무것도 하고 싶어 하지 않았고,

새로 온 학부모들은 그래서 뭘 어떻게 준비해야 한다는 건지 우왕좌왕했다.


첫째 아이의 반 그룹 채팅방에서는

엄마들을 다 모아보려고 했지만 고작 5명만 응답을 했고, 나머지는 답변조차 없다며 울상 짓는 영국 엄마,

본인 국적은 말레이시아이고 남편 국적은 호주인데 어느 나라 액티비티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레이 엄마,

전교생 통틀어 덴마크 사람은 오직 본인뿐인데 혼자서 뭘 준비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덴마크 엄마,

등등... 엄마들의 하소연만 가득할 뿐이었다.


이럴 때 보면 한국인의 끈끈함은 정말 최고

그런데, 이 와중에 한국 엄마들의 결집력이란 정말.....말 그대로 최고였다.

학교 공지가 뜨자마자 한국 엄마들의 단체 채팅방이 가장 먼저 만들어졌고,

빠르게 의견을 교환한 끝에 각 학년별 엄마들끼리의 그룹방이 다시 만들어졌다.

그 안에서 어떤 액티비티를 할지, 무얼 어떻게 마련할지 재빠르게 논의하고 착착 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같은 학년 엄마들끼리 힘을 합쳐 해당 학년의 모든 반에 다 함께 액티비티를 제공하기로 했으니...

즉, 학교에서 한국 엄마들만 유일하게 전 학년 모든 반에 한국 액티비티를 진행하게 된 것이다.

1학년은 노리개 색칠하기,

3학년은 딱지 만들기 및 딱지치기 게임,

5학년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하기 등등


한국에서 직접 주문해 공수한 딱지세트부터,

그냥 만든 딱지는 잘 안 넘어가서 아이들이 재미없다며 엄마들이 직접 모여 신문지 잘라 만든 속딱지까지..

와 이렇게까지 진심일까 싶을 정도로 모두들 참 열심히 했다.

사실 모인 엄마들이 많다 보니 뒷말 많을지언정... 프리라이더가 있을지언정..

우리 아이한테 좋은 경험을 주고 싶다는 마음, 다른 나라에 비해 뒤쳐지기는 싫다는 마음,

이왕 할 거 멋지게 잘하고 싶다는 마음들이 뭉쳤던 것 같다.


지나가다 만나는 선생님마다, 다른 나라 엄마들마다 엄지 척하며 칭찬한 덕분에..

이번에 한국 엄마들 없었으면 학교 인터내셔널데이 행사가 휑할 뻔했다는 자부심과 기쁨으로 정신없이 보낸 2월이었다.

그러면서 이런 한국인들의 특성으로 나라가 빨리 성장한 건가.. 싶기도 했다.


어느 국적을 선택해야해?


인터내셔널데이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날 진행된 나라별 퍼레이드.

우리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학생들의 국적이 매우 다양한 편인데 약 50여 개국의 아이들이 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말레이시아, 중국, 일본, 한국과 같은 아시아 나라들은 학생 수가 꽤 많은 편이었지만,

단 2~3명뿐인 핀란드, 덴마크, 시리아 등의 나라부터 익숙지 않은 말라위까지 다양한 국적의 나라를 보는 재미가 컸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부모의 국적이 다른 아이들이 많은 이 학교에서는 아이에게 아빠와 엄마의 나라 중 한 곳을 선택해서 퍼레이드에 참여하라는 학교의 가이드가 아이에게 폭력적이라며 불만을 가진 부모가 많았다고 한다. 대다수가 한국인, 단일민족으로 구성된 우리에게는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라며 뒤늦은 이해로 다가온 사안이지만... 이곳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문제이자 이슈였다.


미국에서 온 다른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미국의 사립학교에서는 인터내셔널데이와 비슷한 행사가 있는데 다만 본인 국적의 옷을 입거나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모두 제비뽑기를 통해 특정 나라를 고르고 본인이 뽑은 나라의 전통 의상을 준비해서 입는다고 했다. 행사를 통해 전혀 몰랐던 나라의 의상을 준비하며 해당 나라도 공부하게 되고, 또 친구들이 입은 다른 나라의 의상을 보며 체험해볼 수도 있겠구나 싶어 그런 성격의 행사도 꽤나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보통 80억명 지구촌이라고 하는데.....

우리 아이가 살면서, 그리고 또 내가 살면서 이렇게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될까. 이런 생각에 다다르니 어릴적 무심히 지나갔던 만국기도 달리보이고,  지금의 시간이 또 새롭고 의미 있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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