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할 수 없는 사이; 당신과 나, 그러니까 우리.
*오늘의 글은 제이레빗의 <내일을 묻는다>와 같이 듣는 걸 추천해 드려요:)
하얀 종이 위에 He(그) 또는 She(그녀)라고 써보세요. 누가 떠오르나요. 당신의 첫사랑? 짝사랑? 그것도 아니라면 당신의 마지막 사랑인가요? 지금의 저는 제 첫사랑이 떠오릅니다.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저는 그렇다는 거예요. 제가 처한 상황과 감정에 따라 때로 He는 제 안타까운 짝사랑이 되기도 하고 저를 매정하게 떠난 마지막 사랑이 되기도 합니다. He는 특정 사람을 명확하게 지칭하는 이름 석 자와는 달리 참 다양한 사람을 가리킬 수 있는 매력이 있어요.
He 나 She를 영문법에서는 대(代) 명사라고 합니다. 명칭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명사를 대신하는 존재이지요. 고로 He는 남자를 가리키는 모든 명사를 지칭할 수 있는 것이며 같은 원리로 명사로 나타낼 수 있는 여자라면 누구나 She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엄마, 여동생, 짝사랑했던 누나 모두 동등하게 She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거예요. 당연히 첫사랑의 그녀도 She가 될 수 있는 것이지요. 당신에게도 첫사랑이 있나요? 첫 설렘. 아직 기억하시나요? 사랑을 한 번이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자신만의 He 또는 She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좀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첫사랑은 결국엔 애틋한 네버 엔딩 스토리라 그 아리고 애련한 마음이 앓음 다움을 아름다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학창 시절 때 조지훈의 <승무>라는 시 배웠을 거예요. 첫사랑이 생각날 때마다 참 묘하게도 속세와 해탈의 경계에서 승무를 추는 비구니의 몸짓이 머릿속에 그려지곤 한답니다.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 파르라니 깎은 머리 / 박사 고깔에 감추오고 / 두 볼에 흐르는 빛이 /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얇은 사라는 말에서부터 저는 이미 첫사랑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서툴다는 것. 미숙하다는 것. 그것은 어떻게 보면 아직 물들지 않고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뜻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요. 이러한 하이얀 마음은 그러나 풍파에 단단해진 그것과는 달리 얇은 비단처럼 찢기기 쉬워 잠시 꽃에 앉았다가 날아 가버리는 나비마냥 내 청춘에 머물렀다 금세 사라지고 잊히는 것이겠지요. 그리하여 ‘나빌레라’라는 표현은 아리도록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것인가 봅니다. 그 ‘나빌레라’의 몸짓은 어린 비구니의 승무인 것이며 이는 어린 여자아이가 감내하기에는 벅차기만 한 세속적인 욕망과 감내해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해탈의 경지 그 사이 어디 즈음에 행해지는 몸짓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첫사랑은 너를 향한 나의 맹목적인 사랑과 그 사랑을 자꾸만 시험대로 올리는 나의 계산적인 마음 그 사이 어디쯤에서 홀로 외로이 승무를 춥니다. 그 상반된 이미지는 푸른빛 도는 민머리와 발그레 홍조를 띤 앳된 두 볼처럼 구체적인 그림이라기보다는 색감입니다.
어린 왕자는 슬플 때 해가지는 것을 마흔세 번이나 보았다 하였지요.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노을 지는 풍경이 존재하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광활한 바다 아래로 노을이 침잠하는 광경이 가장 마음 아팠습니다. 첫사랑이란, 시간이 허락된다면야 더 타오르고 남을 열정을 강제로 수장시키는 것 아니겠어요.
내친김에 제 첫사랑에 대해 얘기해 볼까 해요. 저의 첫사랑은 제가 다니던 대학의 1년 후배였습니다. 저보다 어리긴 하였으나 키가 크고 손이 크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큼지막한 손으로 제 손을 잡아 줄 때의 부드러운 감촉과 따뜻한 체온 그리고 저를 품에 안아줄 때 쿵쾅쿵쾅 들리던 상대방의 심장소리를 무척이나 좋아했습니다. 용기가 없는 저를 대신하여 먼저 마음을 표현해 주었고 저는 자꾸만 흔들리는 꼬리 때문에 좋아하는 마음을 절대 숨기지 못하는 강아지처럼 그를 따르며 좋아했어요. 아, 그러고 보니 그 예쁜 손으로 제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도 좋아했네요. 솔직히 나중엔 여느 연인들처럼 티격태격도 했지만 이름만 떠올려도 마냥 좋아서 헤벌쭉했던 시절이 내일모레 서른이 되는 제게도 있긴 있었습니다.
분명한 건 말이에요 첫사랑이 끝난 후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에도 똑같이 손을 잡고 그의 품에 안기긴 했으나 첫사랑에게서 느꼈던 그 첫 느낌만큼은 도무지 지울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길든 짧든 첫사랑 이후 사랑이 끝날 때마다 이상하리만큼 끝난 그 사랑을 아파하면서도 불쑥 떠오르는 첫사랑의 잔상에 당혹스러워하곤 했습니다. 이제는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 농무에 갇혀버린 첫사랑 이건만 그 아려한 흔적을 저는 어떻게든 붙잡아보려, 그리워하고 또 그리워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남자는 첫사랑을 못 잊는다는 말, 그거 남자에게만 해당하는 건 아닌 것 같네요. 영화 <건축학 개론>으로 국민 첫사랑이 된 수지는 뭇 대한민국 남자의 가슴속 저 깊이 존재하는 She만 건드렸던 것이 아니라 저의 기억 저 편에 아직까지 살아 있는 He의 존재감을 다시 확인시켜 주기도 하였습니다.
대개의 경우 첫 이별이란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나 미숙했기에 벌어진다는 점에서, 첫사랑 상대에 대한 나의 평가와는 별개로 그 미숙함 자체가 주는 회한과 아픔이 있는 것 같아요. 그와 내가 헤어지게 된 계기 또한 순전히 첫사랑만이 가질 수 있는 그 풋풋한 혼란과 미숙함 그리고 그것들로 인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한강변을 걷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헤어짐에 대해 얘기했고 그리고 그것이 다소 어설프고 갑작스럽긴 했지만 그와의 마지막 만남이 되고 말았던 것이었습니다.
저의 He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어느 순간부터 그와의 만남이 두려웠습니다. 그런 거 있잖아요...... 롤러코스터를 탈 때 설레면서도 한 편으로는 겁이 덜컥 나는 그 묘한 붕 뜬 기분으로 매일 같이 살다 보니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습니다. 롤러코스터를 쉬지 않고 계속 타는 기분이라 해야 할까요? 그때의 저의 감정은 굉장히 양가적이었고 실은 지금의 저도 설명하기 힘든 구석이 있습니다. 폭발하는 감정 속에 저를 영원히 맡기고 싶으면서도 점점 현기증이 나기 시작하여 얼른 그 롤러코스터로부터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었으니까요. 지금 생각해 보면 사랑할 때만큼은 현실이 보이지 않기에 모든 것을 외면할 수 있다는 점에 저는 무척이나 매료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정말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문득 제 내면 깊이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심장을 관통하는 낯선 목소리에 사시나무처럼 몸이 벌벌 떨리기도 했던 것이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제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사실 굉장히 단순하고도 유치한 문제였는데 그때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압도되어 제가 무엇을 고민하는지 조차 알지 못했던 것 같아요. 실은 그때의 수많은 질문과 고민은 ‘그가 나를 더 이상 좋아하지 않으면 어쩌지?’의 단 하나의 문제로 귀결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치기 어릴지언정 온 마음을 다해 그를 사랑했고, 그래서 서로를 향한 그 뜨거운 마음이 영원히 식지 않기를, 우리 사이에 핀 사랑의 꽃이 영원히 시들지 않기를....... 불가능하다는 걸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가슴으로는 바라고 또 바라였던 것 같습니다.
다시 대명사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대명사는 명사를 대신하는 것들이라고 했어요. 어린 왕자는 자신의 별에 있는 장미와 똑같이 생긴 5천 송이의 장미들을 마주하며 처음엔 절망에 빠집니다. 자신의 장미가 특별하지 않다는 생각에 충격을 받은 것이겠지요. 그러나 그는 그 장미가 특별한 이유는 자신이 그 장미를 위해 마음과 시간을 아낌없이 내어주었기 때문이란 사실을 이내 깨닫고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너희들은 아직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도 너희들을 길들이지 않았고 너희들도 누구 하나 길들이지 않았기 때문이지.
어린 왕자의 She는 오직 소행성 B16의 장미꽃일 수밖에 없다는 걸 알려주는 대목이죠. 그런데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부분은 어린 왕자에게 거부당한 5천 송이의 꽃이 하찮은 존재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단지 어린 왕자에게 특별한 존재가 아닐 뿐 각각의 장미꽃 또한 서로를 길들일 수 있는 누군가와 사랑에 빠진다면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그 꽃에게 등을 돌릴 지라도 그 사람 만큼은 You are special, 당신은 특별합니다.라고 말해 줄 테니까요. 어린 왕자는 5천 송이의 장미를 한 번에 너희들이라고 불렀지만 그 사람은 본인이 길들이고 본인을 길들인 그 장미를 하나밖에 없는 ‘당신’이라 부를 거예요. 재밌는 건 영어에서는 ‘당신’ 이란 단수형과 ‘너희들’이라는 복수형 둘 다 ‘You’라는 대명사로 쓰인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지금부터 제가 다룰 대명사 You는 단수형 ‘당신’입니다. 앞서 대명사 He와 She가 명사를 대신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드렸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당신(You)을 대신할 수 있는 명사가 존재하나요? 마찬가지로 대명사 나(I)와 당신과 나를 뜻하는 우리(We)를 대신할 명사가 있나요? 아무리 찾아봐도 없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별 생각 없이 요 세 녀석들을 대명사라 부르고 있어요. 그렇다고 이미 대명사로 분류된 녀석들을 갑자기 방출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대명사이되 대명사라 부를 수 없는 You, I, We를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 걸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가 여전히 대명사에 해당한다 생각해요. 대명사가 명사를 대신한다는 뜻의 대가 아니라 큰 대로 해석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존재 자체만으로 너무나 소중하기에 큰 대를 쓰는 것이지요. 그 누구도 나를 대체할 사람이 없으며, 이 세상에는 남자가 반, 여자가 반일 지언정 내가 사랑하는 당신을 대체할 사람 또한 없기에, 그리하여 당신과 나의 관계는 우리만이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이지 타인이 끼어들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랑은 나눌수록 커진다 하지만 기묘하게도 사랑에는 배타적인 면도 있는 것 아니겠어요. 우리는 때로 우리만이 전부인 세상, 그것이 비록 철장이 있는 우리일지라도 둘 만의 공간으로 우리를 몰아넣지 않나요. 그 우리 안에서 사랑은 더욱 깊어지는 속성 또한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장독에 장이 익어가듯 사랑 또한 깊어진 후에야 세상 밖으로 나눌 수가 있는 거라면 사랑의 배타성과 이타성은 동전의 양면처럼 모순되지 않고 오히려 서로를 완성시킵니다. 이 드넓은 세상에 오직 한 사람 만으로만 존재하는 당신, 그런 당신을 사랑하는 나 그래서 그만큼 소중하고 특별한 우리인 거잖아요. 代명사가 아닌 大명사일 수밖에요.
물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소중함마저 익숙하게 느끼는 것이 인간이 가지는 한계이자 비극이겠지요. 그럴 때마다 어린 왕자에게 사랑을 가르쳐 준 여우의 말을 되새겨 보세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고, 당신은 당신이 길들인 장미에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말이에요, 그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주는 건 정말인지 기적 중의 기적이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