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마를 견디고 단단해진 초상들에 대하여 /로베르토 루고

Ekphrasis

by 완연한 봄


Lil Wayne and James Baldwin teapot (Roberto Lugo, 2022)

티포트

완연한 봄


도자기는

돌가루를 개어 입힌 옷을 입고

제 몸을 화마(火魔)에 던져 넣으며

비로소 단단해진다.


양면에 앉은 초상이

볼록한 몸통의 곡선을 타고 흘러내리다

온기를 잃은 채

가마 속 재 냄새 밴 공기에

그대로 굳어

표면에 자리한다.


겹쳐진 무늬 위로 인물의 윤곽이

선명하게 떠오를 때 우리는

미끄러진 말들의 행방을 묻는 대신

닳아빠진 행주로

설탕 알갱이처럼 부서지는 햇살을

조용히 털어 낼 뿐이다.


수구와 찻잔 사이

그 짧고도 가파른 낙차가

빚어낸 한 방울의 화인,

기물의 양면에 남은

뜨거운 흔적들을

가만히 받아 적는다.


그 기록은 낙관도 서명도 없이

오래된 빙렬을 따라

서로를 더듬어 읽게 하는

투박한 돌기—

엄지 끝에 걸려 끝내 지워지지 않는

작은 까끌함이 된다.


작가의 이전글밤의 향기 속에 피어난 잎맥 /도르 보스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