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남는 것 /윌리엄 헨리 폭스 탈보트

Ekphrasis

by 완연한 봄
William Henry Fox Talbot Elm Tree in Winter, Lacock Abbey, ca. 1845.png

Elm Tree in Winter, Lacock Abbey (William Henry Fox Talbot, ca. 1845)

지우더라도 남는다

완연한 봄


나는 굳은 속살 속에 피치 못할 시간을 품은 채 오래도록 서 있었다.

한때는 나도 봄을 품고 있었으나 시간은 잎을 앗아 가고 메마른 줄기만 남겼다.

누구도 묻지 않았다 무엇을 잃고 지내 왔는지, 어디쯤에서 꺾였는지.

그저 살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이 자리에 아무 말 없이 버티고 있어야 했다.

수많은 바람이 내 가지를 스쳐 갔다. 머문 듯, 떠난 듯— 그저 지나갔다.

어느 날, 비를 맨몸으로 맞으며 나는 여기 있었다.

마른 시간 속 잊힌 내 이름을 천천히, 보았다.

아, 아— 누가 부르지 않아도 혀끝에서 내 이름이 조용히 돋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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