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kphrasis
Copper-Zinc Plai (Carl Andre, 1969)
완연한 봄
수직을 포기한 채 수평으로 누웠다. 누구의 눈높이에도 가 닿지 않겠다는 결심은 나를 아래로 가라앉혔다.
사람들은 나를 조각이라 부르며 그 위를 걸어갔다. 발바닥 아래에서 나는 매 순간 등분(等分)되었고, 무게는 오롯이 내 몸의 면적만큼 나누어 실렸다. 삐걱이는 대신 차가운 금속의 침묵으로 보폭을 감내했다. 바닥은 밟는 쪽이 아니라 견디는 쪽이었다.
나는 끝까지 버텼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버틴다는 말은 대개 위에서 하는 것이고, 바닥의 인내는 언제나 아래로만 향했다. 나는 마룻바닥처럼 비명을 삼키며 소음이 되지 않으려고 애썼다.
눈치 보지 않고 우는 건 특권이었다. 쓰러질 수 있는 건 다시 일어날 내일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쓰러질 곳조차 없다는 것은 더는 추락할 수 없다는 안도가 아니라, 영원히 바닥의 직무를 다해야 한다는 선고였다.
그래서 나는 부서지지 않는 방식으로 얇게 닳아갔다. 신발 밑창에 긁히며 조금씩 광택을 잃어갔으나, 산화(酸化)되는 피부 위로 타인의 자국이 남을 때마다 나는 비로소 누군가의 ‘장소’가 되었다.
바닥은 늘 거기 있었다. 그러나 나를 떠받쳐 주는 손은 단 한 번도 나를 향한 적이 없었다. 그저 내 밑에서 고요히 침잠할 뿐—그럼에도 당신이 지나갈 때마다, 반복되는 하중을 통해 나는 내가 아직 여기 놓여 있음을 비릿하게 감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