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kphrasis
Yellow Relief with Black (Ellsworth Kelly, 1993)
노란진심
완연한 봄
서랍의 가장 낮은 수심에서
종이는 제 안의 습기를 다스리지 못하고
하얗던 이면(離面)마저
오래 우려낸 차(茶)의 빛깔로 침전한다
낮은 구름이 흐르는 오후를 건너온 빛이
창틀 위에서 버터처럼 눅진하게 녹아내릴 때
방 안은 노란 볕을 핥다가
끝내 제 색을 감당하지 못한 채 허물어진다
사진 속 웃음은
유리라는 차가운 투옥(投獄)에 갇혀
터진 달걀 노른자처럼
비릿한 번들거림으로 문드러지고
가로등은 밤마다 레몬빛을 길바닥에 쏟아내지만
나는 그 명도(明度)의 테두리 밖을 나가지 못한다
몸에서 분리된 심장을
녹슨 열쇠처럼 덜렁거리며 쥐고 있을 뿐
가로등 아래 부유하는 노란 잎들과
주인 없는 의자 위에 버려진 미지근한 악취
한때 온기였을 것들이
이제는 오래된 약봉지처럼 구겨진 채
서로의 구석을 찌르고 있다
노란색은 오늘도 밝은 쪽으로 투항하지 못하고
텅 빈 가슴 한복판에
지워지지 않는 흉터로 눌어붙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