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역, 늦겨울-

by 릿다

“강원도 갈 기차 금방 온다. 어디 가면 안 된다. 알겠제?”

이모는 커다란 가방 속을 뒤적이다, 막 캐낸 듯한 생고구마를 내 손에 쥐여 주었다. 나는 그것을 대합실 한쪽, 연탄난로 위에 올려놓았다. 하얀 김이 서서히 피어올랐다. 늦겨울, 영주역. 깊은 밤 공기는 숨이 하얗게 흩어질 만큼 차가웠다.


부산에서 강원도로 가는 길.

강원도까지 바로 가는 열차가 없어, 우리는 영주역에서 환승을 기다리고 있었다. 역 안에는 이모와 나뿐이었다.

문 밖은 안개 깔린 어둠이었고, 두 눈 가득 검은 기운만 가득했다. 그 속으로 발을 내딛기가 무서워, 나는 대합실 문고리를 꼭 쥔 채 고개만 살짝 내밀어 어둠과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저 멀리서 희미한 그림자가 안개를 헤치고 걸어왔다. 마른 어깨가 살짝 굽은 사람. 손에는 작은 봉지가 들려 있었다.

두 눈을 문질러도, 그 모습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버지였다.


꿈속처럼 달려가 안기고 싶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가 낯설어, 나는 문 그늘에 숨어 먼지 낀 구두 끝만 바라봤다.

“이리 와서 아버지께 인사드려야지. 니 아버지 보고 싶다 안 했나?”

이모가 나를 불렀다.

아버지는 허허, 웃으셨다. 메마른 웃음소리가 허공에 번져 메아리처럼 귀를 울렸다.

나는 삐죽거리며 아버지 옆에 가 앉았다.

아버지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래, 그래…” 혼잣말을 이어갔다.

나는 발끝으로 바닥을 장난스레 두드렸고, 이모는 조심스레 말했다.

“여자 혼자 애 키우고 살기가 어디 쉬워야지예. 언니도 힘드니 잠시 야를 지한테 맡기는 기라예.”

아버지는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으셨다.

난로 위 고구마가 익어가며 달큰한 냄새를 풍겼다. 하지만 아버지와 나, 누구도 그 냄새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뿌—, 기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울렸다.

승무원의 안내 방송이 대합실을 가로질렀다.

이모는 서둘러 짐을 챙겼다. 나는 달콤하게 익어 가는 뜨거운 고구마 하나를 집어, 얼른 아버지 외투 주머니 속에 넣었다.

아버지는 플랫폼까지 걸어와 나를 들어 기차에 올려 주며 사탕 두 봉지를 꼭 쥐여 주셨다.


그 손은 내 손을 꼭 잡았지만, 같이 가자는 말은 끝내 없었다. 나는 아버지 손가락을 놓지 못한 채, 따라가고 싶다는 말만 목끝에서 맴돌았다.


기차가 서서히 움직였다.

나는 창문에 얼굴을 붙였다.

싸락눈이 흩날리는 플랫폼 끝, 아버지는 두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서 있었다.

손바닥 속 사탕 봉지가 바스락거렸다. 달콤함이 입안을 채우는 순간, 목이 메였다.


그날이 아버지를 본 마지막 날이었다는 걸, 나는 아주 오래 지나서야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