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숙이는 우리 집 옆방에 산다.
학교 앞에서 쪽자 장사를 하는 엄마, 공장에 다니는 언니, 학교를 다니지 않는 오빠, 그리고 학교에 다니는 정숙이. 네 식구가 방 한 칸에서 산다.
정사각형이던 그 방은 한쪽 벽에 장롱과 서랍장이 나란히 자리하면서 길게 찌그러진 직사각형이 되었다. 밤이 되면 머리를 서로 엇갈리게 맞대고 누우면 네 명까지는 간신히 잘 수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와서 다섯 명이 눕게 되는 날이면 숨이 막혔다.
그래서 정숙이는 가끔 우리 집에 와서 잤다.
정숙이의 장래희망은 ‘빨리 시집가기’였다.
시집가면 자기 방도, 자기 집도 생긴다고 했다. 그 꿈을 향해, 그녀는 매일 밤 국군 아저씨들에게 편지를 썼다.
그러던 어느 날, 옆방에 군인 아저씨가 이사 왔다. 저녁이면 흰 메리야스에 군복 바지를 입고 기타를 쳤다. 줄이 튕길 때마다 방 안의 공기가 잔물결처럼 흔들렸다.
밥을 먹던 정숙이는 숟가락을 든 채 멍하니 귀를 기울였다. 그가 낮게 노래를 부를 때면, 정숙이는 고개를 숙인 채 얼굴이 붉어지는 걸 숨기려 조용히 따라 불렀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얼마 뒤, 정숙이는 밥맛이 없다며 식사를 거르더니, 급기야 픽 쓰러져 학교에도 나오지 않았다. 누렇게 뜬 얼굴로 이불 속에 누운 모습이, 괜스레 마음을 저리게 했다.
“니, 상사병 아이가? 상사병도 병이라 죽을 수도 이다 카더라!”
정숙이는 대답 대신 모로 돌아누웠다.
그날 저녁, 옆방에서 ‘딩-딩’ 소리가 들렸다.
나는 문을 두드렸다.
“익스큐즈미 좀 하겠십니더-”
그는 기타를 멈추고 힐끔 나를 보았다.
“저녁, 드셨어예?”
“지금 밥하고 있다.”
그는 부엌 연탄불 위에서 김을 토해내는 냄비를 턱짓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와? 무슨 할 말인나?”
“아제요-”
“오빠라 불러라. 내 고등학교 졸업한 지 얼마 안 됐다.”
정숙이 오빠의 매끈한 턱수염이 떠올라서인지, ‘오빠’라는 말은 목구멍에서만 맴돌았다.
“...정숙이 아시지예?”
“정숙이?”
“지하고 맨날 같이 다니는 안데...”
“아, 얼굴 하얗고 눈 땡그란 아 말이가?”“
”야-!“
”가가 와?“
”가가 아제 좋다고, 학교도 안 가고 방에 누워 있심더.“
그는 잠시 얼굴을 찡그리더니, 벽 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내, 좋아하는 여자 있다.“
벽에는 바닷가를 달리는 한 여자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수영복 차림에 긴 파마머리가 바람에 흩날려 얼굴 절반을 가린 여자였다.
”...브룩쉴즈도 아제 좋다 해예?“
그는 고개를 푹 숙이고, 바짝 다가서야 들릴 만큼 낮게 말했다.
”아직... 못 물어봤다.“
잠시 후, 그는 방 안으로 사라졌다가 군대에서 가져온 통조림 몇 개를 들고 나왔다.
”이거 갖고 가서 친구랑 나눠 묵어라.“
나는 통조림을 들고 와 정숙이와 나눠 먹으며, 옆방 아저씨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전했다.
정숙이는 복숭아 조각을 씹다 말고, 달콤한 맛 속에 울음을 삼키듯 끅끅거리며 흐느꼈다.
그날 밤, 희미한 스탠드 불빛 아래에서 울음으로 눈이 붉게 물든 정숙이는 다시 국군 아저씨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종이 위에 꾹꾹 눌러 쓰는 글씨는 겨울밤 유리창에 맺힌 성에처럼, 금세 사라질 것만 같았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옆방 군인 아저씨는 만원 버스에 사람들을 능숙하게 밀어 넣던, 태우기 솜씨가 탁월한 뒷집 버스 차장 영자 언니와 결혼했다.
손바닥만 한 수영복을 입고 모래사장을 뛰어다니던 브룩쉴즈가 아니라.
정숙이는 끝내 꿈을 이루진 못했지만, 여러 계절이 흐른 뒤 마침내 자기 방을 갖게 되었다.
아주 조용하고, 창가에 햇살이 오래 머무는 방. 이제는 더 이상 꿈을 꾸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