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는 예뻤다

by 릿다


내 방은 1층 조그마한 상가 옥상에 가건물로 지어진 옥탑방이다.

TV도 없고, 라디오도 없고, 책도 없어서 나는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읽다가, 그것이 지루하면 교과서를 읽고, 그것마저 지루해지면 숙제를 한다.


그날도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산수 확률 문제의 답을 찾는 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때 1층 가게에서 일하는 김양 언니가 살짝 문을 열며 들어왔다.


한 손엔 화장품 통을 들고, 구부러진 오른손으로 문을 밀어 닫으며 미안한 듯 나를 보며 웃었다. 걸을 때마다 한쪽으로 기울어져 화장품 통이 곧 쏟아질 듯했지만, 언니는 그 통을 고쳐 안으며 걸음을 재촉했다. 김양 언니는 어릴 적 소아마비에 걸려 오른쪽 팔과 다리가 마비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오른손은 팔 안쪽으로 살짝 구부러져 펴지지 않았고, 오른쪽 다리는 절룩거렸다.


“언니야! 오늘 쉬는 날이가? 그래서 박 씨 할배랑 놀러 갈라꼬?"


김양 언니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수줍은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는 얼마 전, 직업소개소 양 씨 아저씨 부탁으로 엄마가 잠시 데리고 있는데, ”병신이 술 따르면 재수 없다“는 손님들의 말에, 언니는 술자리에 나서지 못하고 주로 부엌에서 술안주를 만들거나, 손님 담배를 사 오는 잔심부름을 하며 지냈다.

가끔은 술에 취한 손님에게 이유도 없이 두들겨 맞기도 했지만, 그럴 때면 내 방으로 올라와 무릎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울다가 다시 가게로 내려갔다.


6월 장마로 비가 억수같이 퍼붓던 날이었다. “병신이 재수 없이 문 앞에 서 있다”고 소리치던 만취한 손님이 언니를 우산으로 마구 내리쳤다. 마침 쌀을 배달하러 가던 쌀집 박 씨 할배가 그 모습을 보고는, 머리가 찢어져 피를 흘리던 언니를 업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날 이후로, 술을 입에도 못 댄다던 박 씨 할배는 가끔 우리 집에 와서 언니를 불러 함께 술을 마셨다. 할매는 없지만 아들과 손주가 있는 그 할배는,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받겠다며 술잔을 내밀었고, 언니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 잔에 술을 따르며 얼굴을 붉혔다.


엄마 가게 언니들은 한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며 쉰다. 오늘은 김양 언니 차례였다. 쉬는 날이면 언니는 엄마한테 빌린 치마에 장날에 산 블라우스를 입고, 박 씨 할배와 공원에 가서 막연히 앉아 있다 오기도 하고, 함께 영화를 보러 가기도 한다. 평소엔 화장을 하지 않는 언니지만, 이런 날엔 꼭 화장을 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언니는 손이 떨려 혼자서는 화장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늘 내가 대신 해준다.


어제, 박 씨 할배의 아들이 불쑥 찾아와 언니를 때렸다.

”늙은 할배한테 젊은 년이 꼬리 친다.“며 돈을 노린 거 아니냐고 소리치고는, 언니를 마구 두들겨 패고 가버렸다.

그래서 지금 언니 얼굴은 멍투성이가 되어 있다.


“언니야, 멍 때문에 분을 좀 많이 발라야겠다.”


나는 가게 언니들이 하던 걸 흉내 내며, 순서대로 분을 바르고 눈썹을 그리며, 입술엔 빨간 연지를 발라주었다. 분을 너무 많이 발라 언니 얼굴이 피에로처럼 보였지만, 손거울을 들여다 본 언니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멍이 안 보이니 좋제?”


언니는 웃으며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언니야. 배 나오고 머리 벗겨진 박 씨 할배가 뭐가 그리 좋노? 언니는 이리 예쁜데. 옆집 봉춘이 삼촌도 언니 예쁘다 하더라. 봉춘이 삼촌이 훨씬 낫지 않나?”


김양 언니는 머리를 옆으로 세차게 흔들었다. 그러고는 내 손에 살며시 돈을 쥐여 주었다. 괜찮다고 해도 끝내 내 주머니에 넣어 주고는, 분과 눈썹연필, 빨간 입술연지가 전부인 초라한 화장품 통을 들고, 방에 들어올 때 보다 훨씬 화사한 모습으로 밖으로 나갔다.


나는 옥상 난간으로 나가 절룩거리며 멀어져가는 김양 언니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방으로 돌아와, 하다 만 산수 문제를 다시 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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