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장마철, 공항은 떠나는 사람과 돌아오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오가는 인파 속에서 무심히 걷던 풀잎은 출국장 앞에 서 있는 동이를 발견하고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여권 사이에 비행기 표를 끼운 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그의 모습 위로, 민속촌에서 마주쳤던 기억이 겹쳐졌다.
그때의 동이는 다급하고 절박했지만, 눈빛만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 그는 군 복무를 마친 후 한 사람의 성인으로서 당당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
‘절에서 만났을 땐 키가 나만 했는데... 어느새 이렇게 컸네... 참 잘생겼다, 울 동이.’
대견스러운 마음이 불쑥 차올라, 풀잎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기척을 느낀 듯, 동이도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보다가 풀잎을 보자 반갑게 웃으며 달려왔다.
“큰스님께는 공항까지 나오지 않으셔도 된다고 말씀드렸다면서... 많이 서운해하시더라.”
동이는 콧등을 찡그리며 난처한 웃음을 지었다.
“곧 복학해야 하고 금방 돌아올 거라고 말씀드렸는데... 제 생각이 짧았나 봅니다. 바로 연락드릴게요.”
풀잎은 고개를 끄덕이며 들고 있던 종이가방을 내밀었다.
“큰스님이 전해달라셨어. 비행기에서 꺼내 보라고 하시더라.”
동이는 말 없이 가방을 받아 바닥에 내려놓고, 잠시 그녀 앞에 멈춰 서서 깊은 눈길로 내려다보았다.
"한 번... 안아 봐도 되겠습니까?“
그러나 대답을 기다리기도 전에, 그는 풀잎을 살며시 품에 안았다. 갑작스러운 품에 놀란 풀잎은 잠시 굳어 있었지만, 이내 천천히 두 팔을 들어 그를 감싸 안았다.
젊은 스님과 젊은 여자가 서로를 껴안은 모습에, 지나가던 사람들의 시선이 힐끗 머물렀다.
그러나 동이는 아무것도 개의치 않은 채, 잠시 그녀를 안고 있다가 이윽고 천천히 팔을 풀었다. 그리고는 손목의 염주를 풀어, 풀잎의 손목에 채워주었다.
“다녀와서...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그의 맑은 눈빛이 그대로 다가왔다. 풀잎은 그 눈빛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리고 있을게... 잘 다녀와.”
동이는 드물게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는 출국장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람들 사이로 그의 뒷모습이 서서히 멀어졌다.
풀잎은 한동안 그 자리에 멈춰 선 채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잠시 후, 천천히 공항 밖으로 나섰다.
마침 머리 위로 비행기 한 대가 낮게 날아올라,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저 비행기에 동이가 타고 있겠지... 지금쯤 어느 하늘을 지나고 있을까.’
그 순간, 공항에 오기 전 잠시 뵈었던 큰스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부모에 대해 묻지 않던 아이가, 며칠 전 처음으로 자기 부모가 누군지 묻더구나.
나도 알지 못하니 가르쳐줄 수는 없었다. 대신 나와 동이의 인연이 시작된 티베트 사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이것은... 동이가 그 사찰에서 지낼 때 입었던 옷이다. 부모가 아이를 사찰에 맡기며 함께 두고 간 옷이지. 부모를 찾는 데 작은 실마리가 될지도 모르니, 네가 전해 다오.”
풀잎은 자신이 건네준 종이가방 속에 그 옷이 들어 있음을 떠올렸다. 그리고 조용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비행기가 사라진 빈 하늘은 텅 비어 있었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사라지지 않는 인연의 흔적이 깊게 스며들고 있었다.
※ 『손끝에 머문 기억- 풀잎 이야기』가 끝이 났습니다.
여기까지 함깨해 주셨어 고맙습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