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어질 수 없는 짝사랑에 괴로워하던 금숙이는 어느 생일날, 포도주 한 병을 원샷하고는 한밤중에 학교로 달려갔다.
잠긴 교문을 마구 흔들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노란 병아리, 나와―!”
그때 어둠 속 수위실 불이 번쩍 켜졌다.
“어떤 가시나가 한밤중에 핵교 와서 행패를 부리노! 내 손에 잡히면 지기삔다!”
순간 술이 확 깬 금숙이는 겁이 덜컥 나 정신없이 내리막길을 달리다 그만 쿵 하고 넘어졌다. 무릎은 까지고 손바닥은 다 벗겨졌다. 피투성이가 된 그녀는 겨우 내 자취방까지 기어들어 와 쓰러져 잤다.
다음 날 아침, 손바닥은 살갗이 벗겨져 세수조차 할 수 없었고, 무릎에는 피딱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금숙이는 상처를 감추려고 체육복 바지를 꺼내 입고, 절뚝거리며 학교로 향했다.
학교 수위실 앞을 지나는데, 수위 아저씨와 선도부 선배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제 한밤중에 핵교에서 병아리 내놓으라고 행패 부리는 가시나가 있었다 아이가. 미친 가시나 인기라!"
선도부 선배가 심각한 얼굴로 맞장구쳤다.
"혹시 키우던 병아리를 고양이가 잡아 묵은거 아닐까예?“
수위 아저씨가 피식 웃으며 선배 어깨를 툭 치고 말했다.
"맞다! 그리 정신줄 놓은 거 보이 일리가 있타. 그라믄 양계장에 가야지, 와 핵교에 와서 난리를 치노? 요즘 가시나들 참- 문제다, 문제!"
나는 빗질을 하던 수위 아저씨 곁을 지나며, 산발한 머리를 내 어깨에 파묻듯 숨는 금숙이가 얄밉기도 해서 옆으로 툭 밀쳤다.
그리고 멍투성이 옆구리를 슬쩍, 그러나 꽉 꼬집어 주었다. 금숙이는 목소리가 들통날까 봐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입만 뻐끔거리다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끝내 얼굴을 홱 돌리며 울음을 꿀꺽 삼켰다.
졸업식 이후 한동안 소식이 없던 금숙이가 어느 날 전화를 걸어왔다.
”내 남자친구 소개해 줄게.“
순간 속으로 중얼거렸다.
'설마... 노란 병아리는 아니겠지?'
약속 장소인 찻집 앞, 막 버스에서 내리는 금숙이를 만나 함께 안으로 들어섰다. 실내가 어두워 잠시 문 앞에서 눈을 깜박이는 우리를 향해 누군가 손을 흔들었다.
"시-아부지 될 사람은 와 불렀는데? 니, 오늘 선 보나?"
내 말에 금숙이는 찢어진 뱁새 눈을 하고 나를 째려보았다.
"저 사람, 우리 엄마보다 한살이나 어리다!"
빨간 베레모를 쓴 금숙이 엄마보다 한 살 어린 남자친구는 직업이 예술가라고 했다. 그날 나는 오렌지주스가 자꾸 목에 걸려 콜록거리느라, 금숙이 남자친구 얼굴을 똑바로 보지도 못한 채 그들과 헤어졌다.
그 후, 금숙이는 절에서 위아래로 하얀 소복 같은 한복을 입고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후, 금숙이는 아이들에게 들려주던 ‘선녀와 나무꾼’의 선녀처럼 아이 셋을 낳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하나는 등에 업고 나머지 둘은 양손에 한 명씩 잡아 이끌며 친정으로 향했다.
옥황상제가 선녀와 나무꾼을 땅과 하늘로 갈라놓았듯, 가정법원의 결정이 두 사람을 하늘과 땅처럼 갈라놓았다. 이제 그들은 더 이상 한 가족이 될 수 없었다.
하늘로 돌아간 선녀가 아이 셋을 데리고 다시 재혼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금숙이는 가정법원의 긴 계단을 내려서자마자 아이들의 손을 꼭 붙잡고 곧장 또 다른 삶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