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멈과 양이가 의원 문을 닫을 채비를 하던 때, 유모가 살며시 문을 열고 들어왔다. 막 나서려던 호는 발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지금 막 집으로 가려던 참이었습니다. 함께 가시지요.”
유모는 고개를 저었다.
“...마님께서 보내셨습니다. 잠시 말씀 좀 나누시지요.”
호는 잠시 숨을 고르고 어멈과 양이에게 안채로 들어가 있으라 일렀다. 그리고 유모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들어와 말씀하시지요.”
유모는 안으로 들어와 한참 머뭇대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마님께서... 도련님께 치료를 받고 싶어 하십니다.”
호는 손끝으로 이마를 짚었다. 잠시 긴 침묵이 흘렀다.
“...어머니는 반위(胃癌)이십니다. 자식 입으로 말하기 참담하지만, 이미 때를 놓치신 듯합니다.”
유모는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서양 의술은 몸 안의 종기도 도려낼 수 있다 들었습니다.”
호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병은 무엇보다 때가 중요합니다. 제가 얼마나 속이 타는지, 유모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유모는 고개를 숙인 채 나직이 속삭였다.
“...이래서 마님이 저를 보내신 듯합니다. 도련님이 만류하실 걸 아시고도, 살아날 가망이 없다 해도 마지막만큼은 아들에게 기대고 싶으셨나 봅니다.”
호는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 그리고 힘겹게 말했다.
“그 시술은... 오히려 명을 재촉할 수도 있습니다.”
그 말에 꼿꼿하던 유모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한평생 남의 마음만 헤아리며 사신 분입니다. 이번만큼은 도련님의 뜻이 아니라, 당신 자신의 마음을 따르고 싶으셨겠지요. 마님이 원하시는 일이 설령 잘못되어 지옥길을 함께 드는 일이라 해도... 저는 그 뜻을 거슬리고 싶지 않습니다."
말을 맺은 유모는 고개를 깊이 숙였다. 진료실 안에는 오래 묵은 바람 같은 정적이 내려앉았다.
어둠 속에서 새벽빛이 서늘하게 번져 나갔다. 호는 깊은 생각에 잠긴 채 하룻밤을 꼬박 한자리에 앉아 있었다. 어머니가 왜 굳이 조선에서 금기시되는 시술을 원하실까. 병이 이미 깊어 회복이 어렵다는 것을 아실 텐데, 그 마음속에 숨긴 뜻이 자꾸만 호를 불안하게 했다.
집을 나선 호는 희미한 안개가 깔린 골목을 걸으며 마호 신부를 찾아갔다.
그의 의원에는 시술에 필요한 도구조차 변변히 갖춰져 있지 않았다. 더구나 조선은 몸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함부로 훼손할 수 없다는 유교의 나라였다. 그런 곳에서 개복 시술을 시도한다는 것은 곧 목숨을 걸겠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이른 새벽, 복잡한 얼굴로 찾아온 호를 마호 신부는 조용히 맞아 주었다.
“그런 시술은 여러 번 해 보았으니 도울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위암이 이미 전이되었다면 시술은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마호 신부의 목소리는 걱정을 품고 있었으나 차분했다.
"각오는 하고 있습니다. 어머니께서 처음으로 간곡히 원하시는 일입니다. 그 뜻을 존중하고 싶습니다.“
호의 목소리는 낮고 무거웠다. 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을 이었다.
“혹여 신부님께 괜한 폐를 끼치게 될까 염려됩니다.”
마호 신부는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여차하면 나 혼자 중국으로 줄행랑을 치면 되지요. 하지만... 호형제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 아직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호는 자조적인 웃음을 띠며 고개를 숙였다.
시술이 무의미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손끝이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그를 짓눌렀다. 마지막만큼은 어머니의 뜻을 따라야 했다. 그것이 오래 묵은 빚을 갚는 길이라면, 그는 기꺼이 감내하리라 마음먹었다.
며칠 뒤, 호는 안방에 누워 계신 어머니 곁으로 갔다. 어머니는 아들을 보자 수척한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며 몸을 일으켰다.
"내 아들 왔구나...“
그녀는 호의 손을 꼭 쥐었다.
"... 미안하구나. 늙은 것이 살겠다고 욕심을 부려서.“
호는 감정을 누른 채 어머니의 손을 감싸쥐었다.
”이번 시술은 하지 않으시는 게... 어쩌면 오래 사시는 길일지도 모릅니다.”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직이 말을 이었다.
"나는 네가 의술을 펼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어릴 적부터 너는 의서를 참 좋아했지.과거 공부한다며 책상 앞에 앉아서도 몰래 의서를 펼쳐놓곤 했잖니, 나는 그걸 모른 척해 주었단다. 유모가 그런 너를 얼마나 못마땅해했는지... 우리 둘 다 그 사람 앞에서는 늘 주눅이 들었잖니.“
그녀는 쓴웃음을 짓고 옆에 떠놓은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네가 집을 나간 뒤, 나는 백방으로 널 찾아보고 싶었지만 병이 깊어 그러지 못했다. 네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난 뒤 내겐 너 하나뿐이었는데... 네가 없는 집안이 얼마나 허허롭고 쓸쓸했는지 모른다. 그런데도 병이 들어 너를 찾아갈 힘조차 없었지.”
말을 멈춘 어머니는 고개를 살짝 돌려 눈가를 훔쳤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말 못 하고 속만 끓인 사람은 아마 유모일 게다. 나보다 더 가엾은 사람이지. 참, 가엾은 사람이지.”
잠시 후, 그녀는 다시 아들을 바라보며 힘겹게 웃었다.
"나는 참 좋구나. 네가 이렇게 돌아와, 바라던 의원이 되었으니 이제 원도 한도 없다. 저승에 가서도 네 아버지께 자랑해야겠다.“
그 순간 그녀는 잠시 어린 소녀처럼 환하게 웃었다. 그 웃음을 바라보던 호는 고개를 깊이 숙였다.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평생 한을 품고 사시게 해서...”
그는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떨리는 목소리는 스스로 삼켜며 끊어졌다.
“아니다. 아니야.”
어머니는 손을 내저으며 나직이 말했다.
“어찌 그런 생깍을 하느냐. 네가 있었기에 내가 어미로 살 수 있었어. 그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너는 모를 것이다.”
그날 밤, 호의 어머니는 낮에 아들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반닫이를 열었다. 오래 묵은 보자기 하나를 꺼내 펼치자, 그 안에 호가 갓난아기였을 때 입었던 작은 배냇저고리가 고이 싸여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조심스레 펼쳐 손끝으로 매만지며 낮게 중얼거렸다.
"내 아들 호가... 이렇게 작았구나.“
첫 혼례날, 쪽을 찌고 남편을 따라 이 집 대문을 들어섰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그 짧은 세월 동안 참 많은 일이 흘러가 버린 듯했다.
호가 ‘어머니’라고 부를 때마다 가슴은 벅차올랐다. 그러나 동시에, 유모를 향해 스치는 아들의 눈빛 속에서 그녀는 어쩔 수 없는 천륜의 정을 느꼈다. 아들이 온전히 자신의 자식이 아니라는 절망은 가만히 있다가도 가슴 깊은 데서 불쑥 고개를 들었다.그때마다 스스로도 놀랄 만큼 마음이 서러웠다.
호가 집을 나간 뒤, 유모는 사람이 달라진 듯 그동안 눌러둔 원망을 모조리 쏟아냈다.
”모두들 마님을 미륵불의 화신이라고 치켜세우지만, 실상은 다른 여자만 바라보는 허수아비 같은 지아비에게 외면받고, 남의 뱃속을 빌려 낳은 아들에게 어미인 척 아양이나 떨는, 끝내는 버림받은 불쌍한 여자일 뿐이지요.“
그 모진 말들은 가시처럼 가슴에 박혔다. 그러나 그녀는 단 한마디도 따지지 못했다. 묵묵히, 그저 감내할 뿐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 말들은 가슴속에서 자라나 어느 순간 실체를 가진 한의 덩어리가 되어 가만히 그녀의 가슴을 후벼팠다. 언제부터였을까. 악다구니를 쓰던 유모의 원망이 어느새 자신의 내면으로 스며들어, 자기 목소리가 아닌 유모의 목소리로 가슴 깊은 곳을 울리기 시작한 것이.
그녀는 끝내 분간하지 못했다. 유모를 두려워한 것인지. 아니면 유모가 호에게 품은 복잡한 감정을 자신의 것인 듯 껴안고 평생을 살아온 것인지. 경계는 흐릿했고, 그 흐릿함이 그녀를 더 몰아붙였다. 마치 죽음조차 함께 나누고자 하는 어둡고 습한 절망처럼.
며칠 뒤, 호의 어머니는 수술대 위에 누웠다. 칼끝이 살을 가르자, 희미한 숨결이 흩어졌다. 병은 이미 온몸에 번져 뼛속까지 스며든 뒤였고, 그 고통은 차마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깊었다.
그녀는 끝내 시술 후 눈을 뜨지 못했다. 사흘 뒤,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창가에는 이른 봄빛이 내려앉았고, 그녀의 마지막 숨결은 한줄기 바람이 되어 방안을 천천히 지나갔다.
마호 신부는 고개를 떨군 채 앉아 있는 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직이 말했다.
”지금까지 살아 계신 것만도 기적이었네,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말게.“
북촌 본가는 초상 준비로 분주했다. 마루에 올라 곡을 하려던 당숙은, 염습이 한창이던 방에서 문이 살며시 열리며 안쪽에서 자신을 부르는 낮은 목소리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어르신... 아셔야 할 것 같아 말씀드립니다.”
“무슨 일이냐?”
염장이가 한동안 머뭇거리다 입술을 축이며 조심스레 말했다.
“아무래도 마님께서... 몸에 칼을 댄 흔적이 있습니다.”
"뭐라?“
당숙의 얼굴이 굳어졌다.
”병환으로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자결을 했다는 말이냐!“
염장이는 깜짝 놀라 손사래를 치며 급히 부인했다.
"그게 아니옵고... 서양 의원에서 칼을 댄 듯합니다. 저들이 말하는 ‘개복 시술’이라는 것이지요.”
"개복 시술이라니... 대체 무슨 해괴한 말이란 말이냐?“
당숙의 노기가 번쩍이자, 염장이는 목소리를 한층 낮추었다.
"배를 가른 뒤 바늘로 꿰맨 자국이 있습니다. 어르신... 그대로 염을 해도 되겠습니까?”
순간, 당숙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렸다. 그는 방을 박차고 나오며 떨리는 목소리로 신유를 불러댔다.
잠시 뒤, 당숙 앞에 선 신유는 난처한 기색으로 시선을 피했다. 당숙은 참지 못하고 고함을 질렀다.
“어째 말이 없느냐! 그 호라는 놈이 천인공노할 일을 저질렀다!
네 당숙모가 첩의 자식에게 몸을 난도질당해 눈을 감았는데, 분하지 않느냐! 설마 너도 한패가 된 것은 아니겠지?”
신유는 놀라 뒷걸음질쳤다. 그러나 이내 당황한 빛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문득, 이 일이 자신애게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신유는 곧 결심을 굳히고, 호가 당숙모를 서양 의원에 데려가 시술을 맡긴 일이며, 그의 손을 잡고 들어갔다가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온 전말을 소상히 털어놓았다.
그리고 격노로 달아오른 당숙에게 교묘히 불씨를 더했다.
“몇 해 전, 형님 댁을 드나들던 박물 장수가 있었지요. 강을 건너다 실족사했다지만... 그 여인의 신원을 확인한 이가 하필 형님이었습니다.
세상일이란 참 알 수 없습니다. 혹여 그 계집도 형님 손에 당한 건 아닐지.. 괜한 생각이 자꾸 듭니다.”
호는 노비의 피를 이은 유모의 자식이라, 당숙의 눈에는 늘 가시처럼 박혀 있었다. 그런데 그 손에 문중의 기둥 같은 형수가 당했다니, 반상의 질서가 무너져 내린 듯한 분노가 가슴을 휘저었다.
당숙은 입술을 파르르 떨며 이를 갈 듯 중얼거렸다.
"인간 백정 같은 놈... 서양 귀신 씌인 놈...“
다음 날 새벽, 그는 서둘러 상소문를 올리고 지방의 유생들을 불러 모았다. 상투를 풀어헤친 채 광화문 앞 돌바닥에 몸을 던지듯 엎드려 목이 터져라 외쳤다.
“신 임유지(任有之)는 감히 아룁니다.
신은 본관 풍천 임씨의 칠대손으로, 본가의 종손 호(浩)가 천비(賤婢)의 혈통으로 태어났음에도 감히 신의 형수를 어미라 속이고, 또 서역의 괴술에 미혹되어 인륜의 근본을 어지럽히더니 마침내 서양의 칼을 빌려 어미의 배를 가르는 참혹한 일을 저질렀나이다.
이는 곧 하늘이 금하는 불인(不仁)이요, 조상과 사문(斯文)의 도를 욕되게 한 대역죄이옵니다. 바라옵건대, 전하께옵서는 천륜을 거역한 그 죄를 엄히 다스리시어 어지러워진 법도를 굳게 바로잡아 주시옵소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형수의 넋이 하늘에서 울부짖고 있사오니, 신은 감히 목숨을 걸고 아룁니다. 원통한 그 한을 씻어주시고, 우리 집안이 다시금 도의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굽어 살피소서.”
절규에 가까운 읍소가 새벽 안개를 찢으며 번져 나갔다. 대궐 앞에는 이미 유생들이 앞다투어 모여들었다. 신유 또한 물 한 모금 입에 대지 않은 채, 돌바닥에 이마를 부딪치며 울부짖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