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흔들림

by 릿다


“아― 아악―!”
새벽의 고요를 찢는 아키의 비명이 어둠을 흔들었다. 툇마루에 웅크린 돌이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쥔 채 어찌할 바를 몰라 했고, 돌이 아범과 마에다는 집 앞을 서성이며 발을 동동 굴렀다.

잠시 뒤, 문이 살며시 열리며 안상궁이 나왔다. 얼굴에는 깊은 피로가 어려 있었지만 표정은 담담했다.
“저러다 큰일 나는 건 아닐까요... 어젯밤부터 저러고 있습니다요.”
돌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안상궁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아키는 강한 아이다. 지금도 잘 버티고 있으니 너무 겁내지 말거라.”


곁에 있던 친정아버지 마에다는 불안을 참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그러게 말이야. 왜 굳이 나가야에서 낳겠다 고집을 부린 건지... 산파도 못 부르는 곳에서 참 답답한 노릇이지.”


그 말에 아키의 어머니가 남편 팔을 잡으며 나직이 타박했다.
“데릴사위는 절대 안 된다는 게 아키였어요. 아키가 정한 일이니, 괜한 소리 그만 하세요.”


마에다는 혀를 끌끌 차며 돌이 아범을 힐끔거렸다. 그 눈빛에는 ‘이 사달이 다 저 홀아비 시아비 때문이지’하는 원망이 어른거렸다.


여러모로 불안해진 수현은 살며시 방문을 밀고 들어섰다. 숨이 막히는 듯한 열기 속에서 아키는 식은땀에 젖어 축 늘어져 있었다. 고통에 몸을 뒤틀며 들썩이는 그 작은 몸을 보자, 수현은 손끝까지 떨려오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믿음이라곤 없이 살아온 그녀였지만, 이 순간만큼은 간절히 마음속으로 부처님을 찾았다.

“어미 되는 길이... 이리 고된 줄 몰랐습니다...”
아키가 힘겹게 속삭이다가 이내 얼굴을 찡그리며 비명을 삼켰다.
“아... 아무래도... 아기가 나올 것 같아요. 어머니... 어머니를 불러 주세요!”


곧 양수가 터지며 바닥이 흥건히 젖었다. 수현이 놀라 소리치자 안상궁과 아키의 어머니가 황급히 뛰어 들어왔다. 그 순간, 아키가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듯 몸을 비틀며 소리를 토해냈다. 두 다리 사이로 아주 작은 생명이, 세상의 빛을 향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나왔다!”

안상궁이 외치며 아기를 들어 올렸다. 잠시의 정적이 스치고, 곧 방 안은 힘찬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
“앙- 앙-!”


생명의 첫울음에 방 안의 이들도, 바깥의 사람들도 멍하니 서 있었다. 누구랄 것 없이 눈물이 흘렀고, 수현의 뺨에도 뜨거운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아키의 어머니는 눈물 닦을 틈도 없이, 떨리는 손으로 탯줄을 끊었다.


수현이 방을 나서자 바깥에서는 돌이 아범이 금줄을 치고 있었고, 돌이는 싱글벙글 웃으며 하얀 종이를 끼워 넣었다. ‘딸’이라는 표식이 금줄 위에서 바람에 흔들렸다.

“어서 들어가 보게. 산모도 아기도 모두 무사하네.”


안상궁의 말에 돌이는 두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정말입니까? 들어가도 됩니까?”
돌이 아범이 흐뭇한 얼굴로 아들의 등을 떠밀었다.
“어서 들어가 보거라.”


돌이는 잠시 망설이다가 아버지를 돌아보며 손을 잡아끌었다.
“아버지도 같이 들어가요.”
“아니다. 삼칠일은 지나야 한다.”

그때 수현이 조심스레 말했다.
“첫 손녀 아닙니까. 함께 들어가셔야죠. 산모에게도 큰 힘이 될 겁니다.”


그 말에 돌이 아범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그는 곁의 마에다를 바라보며 말했다.
“사돈, 같이 들어갑시다.”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마에다는 대답 대신 얼른 신을 벗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아기의 얼굴은 아직 붉게 달아올라 누구를 닮았는지 분간하기 어려웠지만, 그 순간 두 할아버지의 눈에는 오직 한 모습만 보였다.

“엄마를 꼭 닮아 예쁘다.”


그 말에 방 안의 사람들이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방안은 새 생명의 기운으로 가득 찼다. 나가야에도 드디어 아기의 첫울음이 울려 퍼지며, 겨울 끝자락의 공기가 포근하게 흔들렸다.


잠잠하던 마을은 그 소리 하나로 생기가 돌았다. 사람들 얼굴마다 미소가 번졌다. 아기의 이름은 명이가 교토에서 돌아오면 짓기로 했다.

그때까지는 ‘유키(雪)’라 부르기로 했다. 엄마를 닮아 눈처럼 희고 맑은 피부 때문이었다. 얼굴형은 아버지 돌이를 닮아 조금 넓적했지만, 그 넉넉한 모습이 오히려 더 아이 같은 순박함을 더해 주었다. 유키는 나가야 사람들의 사랑과 귀여움을 한몸에 받았다.




명이는 강론을 들으러 법당으로 가기 위해, 나가야 사람들이 정성껏 지어 준 승복으로 갈아입었다. 여벌 옷을 만들기 위해 여인들은 고된 몸을 이끌고 밤을 지새웠고, 여비 또한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이 어렵게 모은 것이었다. 그 생각이 명이의 마음을 짓눌렀다.


백성을 지켜야 할 자신이 오히려 그들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럽고 무겁게 다가왔다.

그는 문득 수현과 순이의 얼굴을 떠올렸다. 다른 삶을 살 수도 있었던 그녀들의 눈빛이 스치자, 마음 한켠이 저며왔다.


비록 ‘세손’이라 불렸지만, 이곳에서 그는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 조선에서 끌려온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 또한 이름뿐인 왕손이자 사실상 포로였다.
차라리 평범한 전쟁포로였다면 함께 돌을 나르고 흙을 옮기며 땀을 흘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왕족이라는 이름은 그를 가두어, 노동조차 할 수 없는 상징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는 늘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조선에서 끌려온 포로들에게 힘이 되어야 한다.’


그 사명감이 언제나 그의 어깨를 눌러왔지만, 명이는 사람들 앞에서 흔들림 없는 미소로 속내를 감췄다.

명이는 불경의 한 구절을 되뇌었다.

“자신을 의지하라. 다른 누구도 그대를 구할 수 없다. 오직 잘 다스려진 자신만이 최상의 벗이다.”

지금은 그 말만이, 불안한 그의 마음을 붙들어 주고 있었다.


법성사에서 강론을 마치고 나오던 길, 한 하인이 다가와 고했다.
“세손 마마를 찾는 이가 있습니다.”
하인의 안내를 따라 선방으로 들어서자, 조선에서 온 승려 한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큰절을 올렸다.

“세손 마마를 뵙습니다. 불충을 용서하옵소서.”

명이는 가까이 다가가 엎드린 그를 조심스레 일으켜 앉혔다. 그리고 차분히 말을 이었다.
“먼 길을 어떻게 오셨습니까. 아버님은 강녕하신지요.”


승려는 고개를 숙인 채 답했다.
“왜에 끌려온 조선 포로들을 데려가려 왔습니다. 조선에 잡혀 있는 왜병들과 포로들을 교환하자는 제안을 왜국이 조정에 올렸다고 합니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그리고... 광해 대군마마께서 왕위에 오르셨습니다.”


순간, 명이의 손이 떨렸다. 쥐고 있던 찻잔이 나무 받침에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그 짧은 울림 속에서 그는, 조선에서도 자신이 내버려진 존재임을 느꼈다.


승려는 고개를 더욱 깊이 숙이며 말했다.
“임해 대군마마께서는... 송구스럽습니다. 세손 마마에 대한 기록이 지워져, 이번 포로 교환에서 귀환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불충한 저희를 용서하지 마시고... 차라리 죽여 주십시오.”

명이의 가슴속에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그는 눈을 감아 감정을 눌렀다. 짧은 침묵 끝에, 낮고 담담한 목소리가 흘렀다.
“소식을 전해 주어 고맙네. 아버님께서는... 편히 가셨는가?”


승려는 주저하다가 조심스레 답했다.
“소인은 전해 들은 말뿐이오나, 대군마마께서는 군자답게 그 마지막을 받아들이셨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듣자, 명이의 눈앞에 마지막으로 보았던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적국의 인질로 끌려가는 아들을 바라보며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떨구던 그 침묵이- 이제는 피보다 짙은 멍으로 그의 가슴에 번져 갔다.


명이는 숨을 고르며 고개를 숙였다. 가슴속 깊은 곳이 서늘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그는 얼굴에 감정을 드러내지 않게 된 자신에게 처음으로 감사했다. 그 평온한 얼굴로 모든 슬픔을 삼켜냈다.


그리고 정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포로들을 안전히 모시고 돌아가시게.”


승려는 흐려진 얼굴로 다시 고개를 숙였다.
“포로들 중에는 스스로 남겠다는 자도 많습니다. 왜국에서 기술자로 받아들여진 이들입니다. 그들은 조선으로 돌아가 봐야 천것으로 천대받을 것이라 하며, 차라리 이곳에서 장인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세손 마마께서는 그들에게 등불 같은 분이십니다. 부디 무지한 그들을 이끌어 주십시오. 오죽하면 적국의 땅에 남겠다고 하겠습니까.”

말을 마친 승려는 다시 일어나 정중히 큰절을 올리고 떠났다.


남겨진 명이는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승려가 남기고 간 말들이 마음속에서 천천히 번져, 마침내 그의 온몸을 무너뜨렸다.

밤이 내릴 즈음, 명이는 불당으로 들어가 향을 피웠다. 불빛이 갈 길을 잃은 듯 어지럽게 흔들렸다. 그는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았다.
“아버님, 부디 내생에는 어느 세상에도 속하지 않는, 완전한 존재로 태어나시길...”

그는 밤을 새워 불경을 외우며 예불을 올렸다. 절 마당을 넘어 번져 나온 염불 소리는 겨울 새벽 공기 속으로 퍼지며, 이윽고 사라져 갔다.



“세손 마마 오셨다!”
“어서, 불 밝혀라!”

교토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명이를 맞이하느라, 늦은 밤 나가야 곳곳에 호롱불이 하나둘 켜졌다.


돌이가 가장 먼저 유키를 안고 달려 나왔다.

“세손 마마, 이 아이의 이름을 지어 주십시오. 세손 마마 오시기만 목이 빠지도록 기다렸습니다.”

아키도 수줍은 미소를 머금은 채 명이를 바라보았다.


명의는 아이를 받아 안았다. 유키는 까르륵 웃으며 두 팔을 뻗어 그의 목을 감았다.작은 손의 온기와 달콤한 젖내 속에서, 생명의 온기가 가슴으로 스며들었다. 그 따뜻한 감촉에, 명이의 입가에도 잔잔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잠시 생각에 잠긴 명이가 입을 열었다.
“연(緣). 이어줄 ‘연’은 어떻겠느냐. 조선의 아비와 야마토의 어미를 이어주는 귀한 아이라는 뜻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좋은 이름이오.” “부르기 곱네.” 하는 말이 터져 나왔다.
“연이! 렌짱!”
부부가 환하게 웃으며 이름을 불렀다.


모두의 입에서 ‘연이’라는 이름이 흘러나오자, 아기는 방긋 웃었다. 그 웃음 하나에 주변이 순식간에 환해졌다. 수현은 조용히 구석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곳의 명이는 더 이상 예전의 소년이 아니었다. 학문이 깊어져서인지, 목소리 하나, 시선 하나에도 위엄이 배어 있었다. 말없이 서 있어도 사람들을 숙연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 순간 수현은 깨달았다. 그는 본래 높은 곳에 있어야 할 사람이라는 것을. 그 깨달음은 매서운 겨울바람처럼 마음을 움츠러들게 했다. 오월의 밤바람이 스쳐 가는 마당에서도, 수현은 이유 모를 추위를 느꼈다.




묘안사는 히고 사람들로 붐볐다. 대청에는 가토 기요마사의 가신들과 귀족들이 줄지어 앉아 있었고, 기요마사와 그의 아내 사키, 그리고 타케시 또한 향을 피우며 엄숙히 자리를 지켰다.


나가야 사람들은 한쪽 구석에 모여, 시선을 피해 조용히 숨을 죽인 채 앉아 있었다.

명이도 부처님 앞에 나아가 절을 올렸다. 목탁 소리가 고요한 법당에 은근히 퍼져 나갔다. 곧이어 주지가 불경을 읊자, 향내가 자욱이 퍼지며 법당 안은 깊은 정적에 잠겼다.

법구경의 설법은 명이가 맡았다. 그의 목소리는 또렷하면서도 맑았다. 나가야 사람들은 숨을 죽인 채 그의 말을 들었다. 설법이 끝날 즈음, 사람들의 가슴은 서서히 벅차올랐다.


수현 또한 그를 바라보며 자부심과 두려움이 함께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언젠가 그가 이 나가야를 떠나, 감히 닿을 수 없는 높은 곳으로 가 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그는 본래 저 높은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이었다. 그 사실을 새삼 깨닫는 순간, 수현은 자신이 서 있는 자리의 낮음을 실감했다.

법정사의 법회가 끝난 뒤,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온 타케시는 곧장 나가야로 향했다.

“오미야게야. 콘페이토(별사탕)야.”


타케시가 작은 꾸러미를 내밀었다.
“도쿠가와 할아버지가 주신 건데, 네 생각이 나서 가져왔어.”

수현이 조심스레 종이꾸러미를 풀자, 수정처럼 맑은 알갱이 세 개가 반짝였다. 타케시는 그중 한 알을 집어 얼른 그녀의 입에 넣었다. 순간 수현은 그 손길에 놀라 몸을 굳혔다. 그러나 곧, 처음 맛보는 낯설고 진한 달콤함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았다.


“이 알갱이 하나가 쌀 서너 가마 값은 할 거야.”
타케시의 말에 수현은 깜짝 놀라, 얼른 콘페이토를 뱉어 손바닥 위에 올렸다.
“먹기 전에 말씀해 주셨어야죠. 이 귀한 걸 제가 어떻게...”


타케시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미 입에 넣은 건 팔 수 없어. 그냥 먹어.”
그는 그녀의 손바닥을 가볍게 밀어 올렸다. 그제야 수현은 다시 그 알갱이를 입에 넣었다.

수현은 울상을 지었지만, 혀끝에서 사르륵 녹아드는 달콤함에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타케시의 가슴이 알 수 없는 설렘으로 울렁거렸다. 그러나 그는 금세 얼굴을 돌리며 퉁명스레 말했다.


“법복 짓는 천은 더 값비싸도 받았잖아. 넌 왜 명이에게 필요한 것 말고는 다 필요

없다고 하는 거야? 넌... 너 자신에게 너무 인색해.”

말을 내뱉고 나서야, 타케시는 자신이 얼마나 속이 상했는지를 깨달았다. 그는 거친 걸음으로 나가야를 떠났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명이는, 무심코 담장 그림자 속으로 몸을 숨겼다. 타케시의 말처럼, 수현은 자기 자신을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명이를 위해서라면 자존심마저 내려놓았고, 그 희생을 스스로 당연하게 여겼다.

그런 그녀가 다른 이를 향해 웃음을 보낼 때마다, 명이의 가슴속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열이 치밀었다. 그는 스승이자 지도자였지만, 그녀 앞에서만은 한 사내이고 싶었다.

수현을 향한 그 마음은 연민도, 동정도 아니었다. 그건 분명히- 내 것이라 부르고 싶은 욕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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