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태중의 아이

by 릿다


며칠 뒤, 기요마사의 장례는 그의 사찰인 본묘사(本妙寺)에서 치러졌다. 다비가 끝난 뒤, 유골은 작은 단지에 담겨 본묘사 묘역 한켠에 묻혔다. 다비식 내내 비가 내렸다. 젖은 깃발들은 물기를 머금은 채 무겁게 늘어져 있었다.


기요마사의 죽음 이후, 타케시는 쿠마모토성의 새로운 다이묘가 되었다. 그러나 갑작스레 주어진 권력의 자리는 그를 안도보다 불안으로 밀어 넣었다. 밥을 먹을 때도, 물을 마실 때도, 그는 손에 닿는 모든 것을 의심했다. 수현의 거처는 그의 방 맞은편으로 옮겨졌다.


“네가 독에 쓰러지면 내가 바로 알 수 있게,”


타케시는 다짐하듯 말했다.

“가까이 있어야 한다. 무엇을 먹든, 내 앞에서 먹어.”


수현은 그의 눈빛 속에 깃든 공표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타케시는 나가야의 안상궁을 불러 수현 곁을 지키게 했고, 본관의 부엌은 정실과 측실의 공간으로 갈라졌다. 아키가 수현의 모든 음식을 직접 만들었다.

타케시의 정무로 인해 그들은 늘 늦은 점심을 함께했다.


“잘 먹겠습니다.”
타케시가 젓가락을 두 손으로 모아 합장하듯 들고 말했다. 요즘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속에는 늘 경계와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수현은 천천히 젓가락을 들어 밥을 떴다. 그들 사이의 나카니와(中庭)로 바람이 스쳐 지나가며 한여름의 열기를 식혀주었다. 대나무 잎이 흔들리며 만든 그림자가 밥상 위에 잔잔히 내려앉았다.

기요마사가 죽음 뒤, 성안의 공기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타케시의 말투와 걸음, 눈빛 하나까지도 어느새 아버지를 닮아 가고 있었다. 소년의 가벼움은 사라지고, 다이묘의 권력과 책임이 그의 어깨 위에 얹혀 있었다.

그를 바라보던 수현은 문득 깨달았다. 타케시가 아버지의 자리를 이어받은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숙명을 이어받았다는 것을.


그 생각이 머릿속을 스칠 즈음, 수현은 무심코 된장국 그릇을 들어 한 모금 마시려 했다. 그러나 입술이 닿는 순간, 역한 냄새가 콧속으로 치고 올라왔다. 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그릇을 내려놓더니, 갑자기 몸을 돌려 구역질을 참았다.


“수현!”
타케시는 젓가락을 떨어뜨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순식간에 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의원을 불러라! 지금 당장! 어서!”


외침이 터지자 가신과 하인들이 한꺼번에 움직였다. 성 안이 삽시간에 소란으로 뒤덮였다.

수현은 물을 한 모금 마시며 힘겹게 말했다.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정말로...”

그러나 그 목소리는 자신조차 설득하지 못할 만큼 희미했다.


곧 의원이 도착했다. 그는 자리를 정돈하고 수현의 맥을 짚었다. 방 안의 모든 시선이 그의 손끝에 붙들린 듯 움직이지 않았다. 잠시 눈을 감고 있던 의원이, 이내 고개를 들었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경하드립니다. 회임하셨습니다.”


공기가 멎은 듯 방 안이 고요해졌다. 타케시는 숨을 삼켰다.

“회... 임이라니. 아이를 가졌다는 말이냐?”

의원은 고개를 깊이 숙였다.
“예, 그러합니다.”


짧은 대답 뒤, 다시 침묵이 흘렀다. 타케시는 그 자리에 앉은 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정실과 세 명의 측실이 있었으나, 후계는 단 한 번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방 안의 모든 시선이 수현에게 쏠렸다. 수현은 살며시 자신의 배 위에 손을 얹었다. 그 아래, 아직 형체조차 없는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낯설고, 너무도 선명하게 느껴졌다.


나카니와(中庭)의 나무 사이로 꽃잎이 바람에 흔들렸다. 그 부드러운 소리만이, 놀람과 침묵으로 굳은 두 사람 사이를 스쳐 갔다. 잠시 후, 방 안의 사람들은 발끝을 들어 소리 없이 물러났다. 남은 것은 수현의 고른 숨결과 타케시의 떨리는 손끝뿐이었다.


타케시는 천천히 손을 들어 그녀의 손등 위에 얹었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그녀를 품에 끌어안았다. 그날 밤, 타케시는 오랫동안 잠들지 못했다.




“꺄아악!”

시어머니 사키의 거처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곧 사키의 여관(女官)들이 문을 밀치고 들어와, 부엌에 있던 아키를 거칠게 끌어냈다.

“무슨 일입니까? 이유라도 말씀하셔야죠!”


수현이 놀라 아키 앞을 막아섰다.
“아키를 이렇게 데려가실 수는 없습니다.”


여관(女官) 하나가 차갑게 말했다.
“그럼 함께 가시지요. 무슨 일인지는 사키님께서 직접 말씀하실 겁니다.”

수현은 겁에 질린 아키의 손을 꼭 붙잡았다. 아키 역시 손에 힘을 주었다.


사키의 거처에 들어서자, 늘 그녀의 무릎 위에서 가르릉거리던 고양이 ‘요’가 차갑게 식은 채 누워 있었다. 방 안에는 싸늘한 기운이 가득했다. 사키는 팔짱을 낀 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분노로 얼굴이 굳어 있었고, 온몸이 떨렸다.


아키를 보자마자 그녀는 안마당으로 성큼 내려와 아무 말 없이 뺨을 후려쳤다.

찰싹—.

수현이 급히 그녀 앞을 막아서며 무릎을 꿇었다.
“아키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아키의 잘못은 곧 제 잘못입니다.”


사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요가 죽은 것이 보이지 않는냐!”

여관(女官)이 한 걸음 나섰다.
“수현님의 하녀가 준 생선을 먹고 죽었습니다. 독살이 분명합니다!”


“그 생선은 제가 준 겁니다.”

수현이 놀라 외쳤다.


“밥을 먹고 있는데 요가 들어와서... 상 위의 생선을 나누어 준 것뿐이에요!”

말이 끝나자, 수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핏기를 잃었다. 그녀는 숨이 막힌 듯 목을 움켜쥐더니, 마당 쪽으로 비틀거리며 달려가 구역질을 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힘없이 무너졌다.


“수현님!”

아키가 비명이 울렸다. 사람들이 달려와 수현을 방 안으로 옮겼다.

의원이 급히 불려왔다.
“음식에서 독이 나왔습니다.”

그 말에 방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금세 토해낸 덕분에 태중의 아기는 무사한 듯합니다. 다만... 당분간 결과를 지켜보셔야 합니다.”


타케시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장 어머니 사키의 방으로 향했다. 닫힌 문 너머로 낮지만 거친 목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한참 동안 언성이 오가더니, 문이 열리고 타케시가 무거운 얼굴로 걸어나 왔다.


사키는 그가 사라지자마자 팔걸이를 세차게 내리쳤다. 분노와 두려움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그녀는 숨을 고르듯 길게 내쉬더니, 여관(女官)을 불렀다.
“미유키를 데려와!”


잠시 후, 여관(女官)의 안내를 받아 미유키가 방으로 들어섰다. 그녀의 얼굴은 핏기 없이 창백했다.
“멍청한 것.”

사키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일을 어찌 이렇게 시끄럽게 만들어! 세상에 다 드러나게 하고서 제정신이냐!”


미유키는 고개를 깊이 숙였다. 사키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사내의 마음을 그렇게도 모르느냐? 타케시가 네 목을 치라며 날뛰는 걸, 내가 너와의 인연을 봐서 이 정도로 끝내 준 것이다. 당분간 친정으로 돌아가 있거라. 내 은혜나 잊지 말고, 친정에 잘 전하거라!”


미유키는 입술을 깨물며 낮게 말했다.
“고맙습니다, 어머니.”
그러나 그 눈빛에는 분함이 가득했다. 방을 나서자마자 그녀는 여관(女官)을 향해 억눌린 원망을 쏟아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키가 고개를 저었다.
“저러니... 먼저 당하지.”


이 모든 일은, 지금으로부터 얼마 전 시작되었다. 수현의 회임으로 불안해진 안상궁이 아키를 불렀다. 그녀는 품에서 작은 은장도를 꺼내 건넸다.

“손잡이 안에 은침이 들어 있다. 앞으로 수현님이 드시는 음식마다 이것으로 찔러 보거라. 독이 있으면 검게 변할 것이다.”


그날부터 아키는 음식을 내기 전마다 은침을 꽂았다. 놀랍게도 대부분의 음식이 어둡게 변했다. 날이 갈수록 그 색은 더 짙어졌다.


안상궁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대로 두면 정말 죽을 수도 있어. 그러니 누가 독을 쓰는지 반드시 밝혀야 한다.”

아키는 집안의 연줄을 통해 독을 구했다. 그 독을 생선에 묻혀, 사키의 고양이 ‘요’에게 먹였다. 그리고 그날, 수현은 일부러 음식을 토해냈다.


토해낸 그릇 속에는, 사키의 여관(女官)들에게 끌려오던 중 아키가 손에 쥐여 준 독이 섞여 있었다. 그 결과, 요의 죽음은 ‘수현의 음식을 나누어 먹은 탓’으로 남았다.


며칠 뒤, 수현과 아키는 쿠마모토성 성곽 위에 서 있었다. 멀리 미유키의 가마가 천천히 성문 밖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사키님이 그러셨어요. 다른 측실들도 아기가 태어날 때까지 친정으로 보내겠다고요.”


아키가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조금은... 안심이에요.”

수현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고마워요, 아키. 많이 무서웠을 텐데...”

아키가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음식에서 독이 나왔을 때, 정말 무서웠어요. 매일 웃으며 마주하던 사람이 나를 죽이려 하고 있었다는 게...”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런 곳에 수현님이 계시는 건 싫지만... 그래도 다이묘 곁에 계실 거지요?”


수현은 대답 대신 아키의 팔을 끼고 몸을 기댔다. 성곽 아래 마을이 저녁 햇살에 붉게 물들고 있었다.
“나도... 이제는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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