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리 조용한 것이냐. 산실에 들어간 지 이틀이 지났다.”
타케시는 산실 앞을 서성이며 초조하게 발끝을 굴렸다. 얼굴은 초췌했고, 눈빛에는 불안이 번지고 있었다.
“일연 스님께는 연락했겠지?”
하인이 얼른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예, 교토에서 이미 출발하셨답니다.”
그때 방 안에서 찢어질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악- 아아악-!”
타케시의 손이 덜덜 떨렸다. 그는 엔가와(방 앞의 긴 마루)를 끝까지 걸어갔다가 다시 돌아오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숨이 가빠졌고, 속이 타들어 가는 듯했다.
잠시 뒤, 그의 어머니 사키가 산실이 마련된 별관으로 들어섰다.
“성주님이 아무리 애를 태워도, 아이는 때가 되어야 나오는 법입니다. 본관으로 돌아가 잠시 쉬었다 오세요. 여긴 제가 지키겠습니다.”
그러나 타케시는 대꾸하지 않았다. 엔가와에 걸터앉은 어깨가 굳어 있었다.
그가 낮게 말했다.
“여긴 아무도 출입할 수 없다 했는데, 어찌 오신 겁니까.”
사키는 아들을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미유키를 친정으로 보내 달라는 말, 나는 아무 조건도 달지 않고 들어주었습니다. 그런 나를 아직도 의심하십니까?”
잠시 숨을 고른 뒤, 말을 이었다.
“이 아이는 어미에게도 첫 손주입니다. 제 걱정까지 의심하지 마세요.”
말끝이 날카롭게 갈라졌다. 그 사이에도 방 안에서는 수현의 신음이 끊이지 않았다. 타케시는 이마를 짚은 채 고개를 숙였다.
손끝이 떨렸다. 그때 마음속으로 문득, 한 생각이 스쳤다.
-아이는 이 아이 하나면 족하다.
초조함과 두려움이 뒤섞여, 그의 안에서 일렁였다.
방 안에서는 안상궁이 수현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소리를 너무 지르면 기운이 빠진다. 정말 견딜 수 없을 때만 소리를 내거라. 자, 이 물이라도 좀 마시고.”
수현은 힘겹게 몸을 일으켜 인삼을 달인 물로 목을 축였다. 식은땀에 젖은 얼굴은 창백했고, 입술은 파랗게 말라 있었다.
“일연 스님께는 연락을 드렸을까요... 자꾸 겁이 납니다. 세손 마마를 뵙고 싶습니다.”
안상궁이 젖은 머리칼을 쓸어주며 낮게 말했다.
“교토를 떠나신 지 꽤 되었다 하니 곧 도착하실 게야. 마음을 편히 가지거라. 그래야 배 속의 아기도 안심하지.”
그때 문이 살짝 열리며 아키가 들어왔다. 손에는 따뜻한 수건과 죽이 들려 있었다. 그녀는 말없이 무릎을 꿇고 수현의 이마를 조심스레 닦았다. 방 안의 공기는 숨조차 가빠질 만큼 무거웠다.
별이 지고 해가 다시 떠올랐는데도 진통은 멈추지 않았다. 난산이었다. 이전의 상처 탓인지, 더는 배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아기가 나올 듯 움직일 때마다 찢어질 듯한 통증이 온몸을 관통했다.
“제발... 무사히만 나오거라...”
수현은 숨을 몰아쉬며 중얼거렸다.
방 안은 고요했다. 바람 한 줄기조차 스며들지 않는 공간에서, 새 생명이 태어나기 직전의 시간이 길고 무겁게 흘렀다. 수현은 두 손으로 배를 감싸 쥐었다. 그 안에서 분명한 움직임이 전해졌다.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이 고통쯤은 모두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늦은 밤, 수현은 더 이상 소리를 낼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숨이 가빠지고 손끝이 차가워질 무렵, 그녀는 결심한 듯 산파를 불렀다.
“배에... 힘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아이를 살려주세요.”
산파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산도가 좁습니다. 자궁에 칼을 대는 방법도 있으나, 출혈이 심해지면 위험하십니다.”
수현의 얼굴에는 이미 각오가 서 있었다.
“이러다간... 저도, 아이도 함께 죽을 겁니다. 제발, 그렇게 해서라도 아이만이라도 살려 주세요.”
“안 된다!”
안상궁이 눈물을 머금고 수현의 손을 붙잡았다.
“아이는 또 낳을 수 있다. 네가 먼저 살아야 한다.”
수현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이 아이는... 지금, 나오고 싶어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어서요. 늦으면 둘 다 위험합니다.”
산파는 떨리는 손으로 칼을 뜨거운 물에 담갔다. 촛불이 일렁이며 벽에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짧은 기도가 끝나자, 방 안의 공기마저 멎은 듯 고요해졌다. 잠시 후, 꺼져가는 비명과 함께 새 생명의 울음이 터졌다.
“응애-!”
그 울음소리는 긴 어둠을 찢고, 새벽을 불러오는 듯했다.
타케시가 문을 밀치고 달려들어 왔다. 안상궁은 탯줄을 자르고, 아기를 씻기고 있었다.
“경하드립니다. 강녕하신 도련님이십니다.”
타케시는 말을 잃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곧바로 수현을 찾았다. 그녀는 창백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그 웃음은 꿈속의 빛처럼 흔들렸다. 그때 산파가 다가와, 사색이 된 얼굴로 속삭였다.
“출혈이... 멈추질 않습니다.”
“무슨 말이냐?”
타케시가 날카롭게 물었다.
산파는 다다미에 이마를 박으며 울먹였다.
“난산이었습니다. 산도가 좁아 어쩔 수 없이 자궁 입구를 찢었습니다. 더는 손쓸 방법이 없었습니다.”
타케시가 절규했다.
“안 돼... 제발, 살려만 다오.”
그러나 이미 이불은 붉게 물들고 있었다. 방 안의 모든 것이 정지한 듯 고요했다. 그 고요 속에서, 수현만이 침착했다.
“아기... 아기를 보여 주세요.”
안상궁이 강보에 싼 아기를 건넸다.
수현은 떨리는 손으로 아기를 품에 안고, 타케시를 바라봤다.
“일으켜 주세요... 잠시만요.”
“안 돼.”
타케시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나는 네가 떠날까 봐... 너무 겁이 나.”
수현은 고개를 저으며 힘겹게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 모습을 본 타케시는 그녀를 조심스럽게 끌어안았다. 두 사람의 품 안에서 아기가 고단한 듯 작은 하품을 했다.
수현은 그 얼굴을 바라보며, 남은 힘을 다해 미소를 지었다.
“아가야... 내가 어미다...”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 말이었다.
방 안은 정적에 잠겼다.
잠시 후, 흐느낌이 번졌고 그 문 앞에 일연 스님, 명이가 서 있었다. 명이는 손끝이 떨려 문을 열지 못한 채 허공만 더듬다, 이내 팔을 떨어뜨렸다.
같은 하늘 아래, 서로 살아 있기만을 바랐던 소망마저 이제는 사라지고 말았다. 신은, 부처는 어찌하여 이토록 가혹한가.
명이는 법복의 깃을 움켜쥐었다. 손에 힘이 들어갈수록 천이 깊게 찢어졌고, 그 틈으로 오래 눌러 두었던 마음이 터져 나왔다. 그는 더는 무엇을 붙잡고 서 있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늘 단정히 걸음을 옮기던 그는 달빛 아래서 몇 번이고 비틀거렸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땅바닥을 굴러 다시 일어섰다. 숨이 가빠질수록 가슴은 더 무겁게 내려앉았다. 성문을 벗어날 때까지, 그는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의 뒤로-
수현의 마지막 숨결이, 아직 끝나지 않은 말처럼 따라오는 듯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