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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밤별 Jun 22. 2020

나 좀 괜찮나 봐

이야기 15. 자궁내막증 치료 일단 끝!

지난 금요일 퇴근길은 본가로 향했다.

1월부터 시작된 자궁내막증 호르몬 주사 치료가 이번 달로 끝나는데, 앞으로는 어떤 치료를 하게 될지 담당 의사분과 상담하기 위해서다.

그동안 4번의 주사는 회사 근처 병원에서 맞았지만 마지막 주사 치료인 만큼 나를 수술하셨던 의사분의 손에 맡기고 싶은 마음이랄까?


작은 동네에 몇 안 되는 큰 여성병원이라 늘 붐비는 것을 알기에 토요일 이른 아침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진료가 시작되는 9시가 되기도 전에 병원에 도착했다.

한적한 1층을 지나면서 역시 일찍 오길 잘했어!라는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접수창구가 있는 2층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 주었다.

진료 시작 10분 전 도착한 나는 역시 애송이었다. 접수창구 앞에는 이미 수십 명의 환자와 보호자들이 앉아있었고 내가 뽑은 번호표에는 푸른색 잉크로 32번이라고 쓰여있었다. 31팀 분들, 몇 시에 오셨나요.


나는 기다리는 것을 잘 못한다. 특히 병원과 미용실에서 그 취약함이 드러나는데, 그때만큼은 유튜브도 TV도 하나도 재미가 없다. 그저 1분 1초가 더디게 가고 답답함만 느껴질 뿐이다.

이번에도 다를 바 없었다. 진료실을 오가는 의사 선생님을 보면서 어딜 저렇게 자꾸 가시는 거지? 왜 이렇게 진료가 더딜까? 내가 먼저 왔는데 왜 나보다 뒤에 온 사람이 내 이름 앞에 떠있는 거지?(대기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한 병원의 효율적인 시스템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괜히 불안하고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등등 생각을 거듭하며 진료실과 대기판만 연신 기웃거렸다.


병원에 도착한 지 두 시간쯤 흘렀을까 드디어 진료실에서 내 이름을 불렀다.

진료실에서 오랜만에 만난 의사 선생님이 어쩌나 반갑던지- 오랜만이에요 선생님. 활짝 웃으며 진료실로 들어섰다.

네 잘 지내셨죠? 여전히 선생님은 굉장히 친절하지만 높낮이가 1도 없는 목소리로 나를 맞아주셨다.

지난 몇 달간 주사는 잘 맞았는지, 특이사항은 없었는지 체크하시고는 비잔(자궁내막증 치료약)을 먹을 건지 말지 선택하라고 하셨다.

오잉? 그걸 안 먹어도 되는 건가?

나는 주사치료를 받는 6개월 동안 생리를 하지 않았다. 자궁내막증의 원인 중 하나가 생리혈의 역류인데 호르몬을 투입하여 일시적으로 폐경 상태를 만들어 생리를 하지 않게 하는 것이 자궁내막증 치료의 한 방법이다.

생리를 하지 않으니 자궁내막증이 악화될 일은 없지만, 인위적으로 폐경 상태를 만들어 놓는 것이기 때문에 몸에 무리가 되어 이 치료는 최대 6개월까지만 진행한다. 그래서 이후에는 보통 비잔을 먹으면서 생리를 하지 않게 만드는 치료법을 사용한다.

대부분이 이런 치료 코스를 밟기 때문에 나도 이제 6개월간 비잔을 먹겠거니, 생각하고 왔는데 약을 먹을지 선택하라고 하시니 의아하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나는 약을 먹지 않아도 될 정도의 심각함인가?


간단한 상담 후 선생님은 일단 약을 먹지 말고 3개월 후에 초음파 검사로 경과를 지켜보자고 하셨다. 알겠다고,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리고 진료실을 나오면서 웃음이 세어 나왔다.

완치가 된 것도 아니고 초음파 검사로 난소 상태를 확인한 것도 아니지만 괜히 3개월 정도는 약을 먹지 않고 경과를 지켜봐도 될 정도로 너의 상태는 괜찮단다.라는 진단을 받은 기분이 들었다.


이제 한동안은 매달 병원에 가서 배에 주사를 맞지 않아도 되고, 매일 8시 40분마다 울리는 알람에 가방을 뒤적여 안젤릭 정을 먹지 않아도 된다.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것을 안다. 자궁내막증은 긴 여정이 되겠지.

지치지 말고 꾸준히, 내 몸을 사랑해주면서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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