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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 Mar 30. 2020

그동안 고생 많았어.

아무도 얘기해주지 않아서 내가 위로할게.



소위 잘 나가던 내가 회사를 갑자기 그만둔다고 하니 다들 의아한 분위기였다. 그렇게 나가라고 눈치 줄 때는 안 나가더니?  그동안 나는 말 안 듣는 직원이었고 분위기를 흐린다며 미움을 받고 있었다. 처음 회사에 입사했을 때 군대 같은 조직 문화에 다소 놀랐었다. 내가 다닌 회사는 20명이 채 안 되는 작은 외국계 지사로 그중 임원이 절반이었고 사장님을 포함한 임원진 대부분이 10년 넘게 근무하고 있었다. 사장님의 말은 곧 법이었다. 회사 단톡 방에서 사장님이 무언가를 지시하면 모든 직원이 "네. 알겠습니다."를 재빠르게 단톡방에 남겨야 했다. 나는 바쁠 때 가끔 대답을 패스하기도 했고 사장님의 질문에 반문을 하기도 했다. 사장님 표현으로는 엉뚱한 직원이었다. 그래도 일은 잘해서 본사에서는 인정을 받았고 사장님과 임원들 눈에는 밉지만 어떻게 할 수 없는 눈엣가시가 되어있었다.


내가 퇴사한다는 것이 알려질 때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K 상무님은 다른 얘길 빙빙 돌려 말하더니 결국 말미에 퇴사에 대해 말을 꺼냈다.  “김 차장, 사직서 내고 어쩌려고 그래? 어디 다른 데 가는 거야?” 그분이 궁금한 건 내가 어느 회사로 이직하는지였다. “아니요. 앞으로는 전업주부로 살아볼까 해요.” 구구절절 얘기하기 싫어 적당히 둘러댔다. “에이, 김 차장이? 안될걸?” 짧은 대화가 끝났다. 마지막인데 그동안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 듣지 못했지만 서운한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사직서를 내고 며칠 뒤 저녁 즈음 한 동료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금 J 차장이랑 같이 있는데 술 마시면서 김차장님 얘기만 계속하고 있어요. 일 잘하는 사람을 이렇게 내보내도 되냐고. 왜 그 친구한테 지고 나가요. 이겨야지” 내가 퇴사를 하는 이유가 부하직원과의 싸움 때문인 줄 안다니... 끝까지 회사는 나를 실망시킨다. "이기고 지고가 어딨어요. 그 친구 때문에 회사 나가는 거 아니에요”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내가 회사를 나가고 난 뒤에 사람들이 어떤 얘기들을 나눌지 예상이 되어 조금 억울한 마음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퇴사를 잘 결정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이런 쓸데없는 일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그동안 내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다수가 같은 행동을 하고 나 혼자서 다른 행동을 하니 가끔은 내가 이상한 건가?라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모두가 나를 싫어하는 것 같다는 생각에 회사에만 가면 더욱 날을 세웠고 점점 더 뾰족해졌다. 그렇게 정치가 만연한 회사에서 나는 유별난 사람이 되어있었다. 사람들의 수군거림과 뒷얘기들이 내 귀에도 들려왔지만 그냥 그러려니 넘겨왔다. 나만 아니면 되니까. 그러다 점점 무뎌졌고 나는 괜찮은 줄 알았다. 사람들은 나를 또라이라고 생각하는지 더 이상 건드리지도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다. 나 역시 사람들에게 기대가 없으니 서운함도 아쉬움도 없었다. 회사는 그냥 돈을 버는 곳이고 회사에서 친구를 찾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회사를 퇴사한다고 말하니 형식적인 말들을 건네는 사람도 있었지만 아무도 관심 없는 조용한 퇴장이었다. 씁쓸하면서 행복하다. 더 이상 내 상식과 다른 일에 타협하지 않아도 되고 가치 없는 일에 에너지를 쏟지 않아도 된다. 내 소중한 시간을 오로지 나에게만 쏟을 수 있다. 그동안 나도 모르게 상처 받았을 내 마음에 위로를 건네고 싶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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