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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밤 Jan 30. 2018

FTM 산호 구술생애사 [4]

호르몬 주사 이후 변화


정체성을 알고 나서도 혼란스러웠어요. 하. 수술을 해야 하는 건가. 수술할 생각하면 갑갑하니까 그냥 이대로 살까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죠. 호적 정정 같은 법적인 절차를 밟아야 하는 게 너무 크게 다가왔으니까요. 수술하려면 의학적 지식도 필요하잖아요. 초반에는 트랜스젠더 카페에 질문 올렸는데, 대답을 잘 안 해주더라고요. 다들 수술하고 나면 싹 사라지니까요. 저는 (몸이) 바뀌는 거보다 바뀌고 나서 부작용이 더 무서웠어요. 그러면 평생 고생이잖아요. 비싸더라도 잘하는 곳에서 하고 싶은데 정보가 없었죠. 그때 마침 조각보(트랜스젠더 인권단체, transgender.or.kr)* 가슴 수술하는 원장님이 오셔서 세미나 해주셨거든요. 그걸 듣고 그 병원에서 가슴수술했어요. 가격도 200만 원 정도 한다고. 그때부터 시작된 거 같아요. 조각보 만난 덕분에 잘 풀렸죠. 그리고 그때 만나던 여자 친구가 믿어줬으니까. 누나가 거부감을 느꼈으면 (수술) 못했을 거 같아요.          


호르몬 주사 이후 변화?

호르몬 주사는 가슴 수술하고 일 년 후에 시작했어요. 스물다섯 살 때. 세 번 정도 맞았을 때 변화가 있었어요. 목소리 변화가 제일 커요. 경험한 사람들 말로는 목소리가 내려가고, 식욕 왕성해지고, 성욕도 왕성해지고, 여드름 나고, 살찌고 그런다는데. 전 목소리 변화가 제일 컸어요. 그다음에 여드름 나고. 그다음에 성욕 조금. 식욕은 별로. 지금 제가 171cm에 59kg이거든요. 초반에는 조금 그러다가 지금은 오히려 밥 먹는 양이 줄었어요. 신경 예민해질 수도 있다고 했는데 그런 것도 별로 없고. 한 세 번째 맞을 때부터 생리를 안 했나 그랬을 거예요. 자궁 수술 없이도 호르몬 주사 맞으면 생리를 안 해요. 근데 안 맞으면 다시 생리가 돌아오죠. 그리고 한 4~5년 호르몬 계속 맞으면 자궁암 걸릴 확률이 높아져서 그래서 자궁 절제를 하는 거거든요.      


전 한 달에 한 번 ‘예나스테론’를 맞아요. 축약어로 ‘예나’. 예나는 기복이 심해요. 그래서 감정 기복도 심해요. 그게 한 번에 만 원이 안 됐어요. 지금 제가 바꾼 거는 뭐더라. 박태환이 맞은 건데. (네비도 주사) 그건 3개월에 한 번인데, 주기가 예나보다 안정적이래요. 3달에 25만 원. 부담이 되긴 돼요.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더 안전하다고 하니까 맞긴 맞아야죠. 일을 쉬게 되면 싼 예나를 맞아야겠죠. 그래서 일을 쉬려면 호르몬 주사는 몇 달을 맞을 수 있는지까지 계산해서 예산을 짜 놔야 돼요.      


자궁 수술하고 나서는 호르몬 안 맞는 분도 많이 있어요. 근데 제가 강의에서 들은 의사 선생님 말로는 안 맞으면 갱년기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고, 노화가 빨리 오고, 골다공증이 쉽게 생긴다고 해요. 평생 맞는 게 낫다더라고요. 여성호르몬은 유방암이랑 여러 가지 부작용이 있어서 오십 대부터는 안 맞는 게 좋다고 얘기해주셨고요. 그래서 MTF들은 한 오십 살 정도에 끊는 거 같아요. FTM은 계속 맞아도 된다고 말씀하셨어요.     


남성 호르몬을 맞으면서 운동을 하면 근육 커지는 속도가 빨라지는 거 같아요. 제가 손목이 아파서 운동할 때 무거운 걸 안 드는데도 금세 금세 (근육이) 잘 먹더라고요. 골격 자체는 바뀌지는 않는데 근육 때문에 몸이 좀 바뀌는 거 같아요. 얼굴형도 약간 사각이 되는 거 같아요. 만약 2차 성징 전에 호르몬을 맞으면 골격도 달라질 거 같아요. 외국에는 있더라고요. 호르몬 주사를 일찍 맞은 외국 사람 보면 엉덩이랑 가슴이 크지 않더라고요. 일찍 맞으면 행운이죠. 그러면 더 남자 같을 테니까. 늦을수록 여성화된 모습이 잘 안 바뀌어요. 그냥 어중간하게 ‘강부치’ 비슷하게 가는 거 같아요. 저는 이미 골반도 다 커져있고. 남자는 허리랑 골반이랑 다 일자잖아요. 옛날에는 엉덩이가 두드러져서 싫었는데 지금은 상체가 커서 두드러지지는 않아요.  


(‘남성 호르몬’이란 말 자체도 그냥 호르몬인데 거기다 굳이 성별로 나눠서 이름표를 붙인 거잖아요. 남자라고 다 근육 많고 힘이 센가?)

 

그죠. 얼마 전에 네이트판에서 봤는데 남편이 자기 뜻대로 안 되면 때리고 그랬나 봐요. 근데 그 여자분이 어릴 때 복싱을 배운 거죠. 계속 맞다가 아이가 생기고 나서는 ‘아, 이렇게 하다가는 애랑 같이 맞겠구나’ 싶어서 남편을 때렸대요. 그때부터 말 잘 듣는다고. “제가 폭력을 행한 게 잘한 걸까요?” 이렇게 올려놨더라고요. 여자들도 충분히 운동하고 방어할 능력이 있으면 괜찮겠다 싶더라고요. 몇몇 남자들은 강한 사람한테는 약하고, 약한 사람한테는 강하거든요.


(사람들이 남자가 하면 근력 운동이고, 여자가 하면 다이어트라고 생각하잖아요. 요즘에는 여자도 힘 키우자는 얘기가 많이 나오더라고요.)


근데 운동을 취미로 하면 여자답지 못하다는 인식도 있는 거 같아요. 여자는 피아노 쳐야 하고, 발레 해야 하고. 그런 인식이 있잖아요. 남자는 태권도해야 되고. 그런 인식 때문에 여자들은 몸에 근육 생기는 거 별로 안 좋아하잖아요. 종아리에 알 생기는 거 싫어하고. 근육이 생기는 거에 대한 거부감이 좀 있는 거 같아요. 그것도 남자가 원하는 이상적인 여자 모습에 맞춘 거잖아요. 남자들은 보통 여자가 근육이 있으면 여자답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얼마 전에 회사 사람이랑 얘기하다가 애견 계통에는 훈련 잘하는 사람은 여자든 남자든 운동도 많이 하고, 근육도 많고, 머리도 짧다고 말하니까 “그게 무슨 여자냐”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능력도 있고, 실력도 좋은 건데 왜 그것 때문에 여자가 아니에요? 일터에서 일만 잘하면 되지." 그랬더니 "그런가..." 그러시더라고요.      


요즘 회사에서 대표님이 밥도 사주고 잘해주시니까 좋긴 좋은데 약간 부담스러워요. 예쁜 여자 있으면 막 보라고 그러고. 하루는 여자분이 걸어가고 있었어요. 약간 살이 하얗고 물렁물렁해 보이는 살인데 핫팬츠 입고 가셨죠. 대표님이 갑자기 “저런 살은 되게 탄력이 없어 보인다”라고 하시는 거예요. 방금 지나간 여자는 탄탄하게 운동 열심히 한 사람 같은데 저 여자는 탄력이 없다고. 그냥 웃었더니 “아이, 산호 씨는 이런 얘기하는 거 싫어하는구나” 그래서 “제 몸도 어떻게 못하는데 남의 몸을 평가하는 건 좀 그렇다”라고 했더니 “산호 씨도 많이 좋아졌다고. 처음에 왔을 때는 멸치였는데 좋아졌다”라고.(웃음)     


원래 저도 남성성을 가지려고 노력하면서 성별의 구분을 확실하게 했었어요. 남자는 이래야 한다. 여자는 이래야 한다. 그래서 남자는 이래야 한다는 행동을 많이 했었고. 요리하고 설거지하는 거 여자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되면 안 하고. 청소도 안 하고. 그런 편견이 좀 있었죠. 지금은 뭐 그런 건 없는 거 같아요. 딱히 어떤 순간에 딱 변한 건 아니고, 하나하나씩 바뀐 거 같아요. 그냥 요즘 여론 같은 걸 보면 이젠 청소나 빨래나…. 네이트온 판이라는 게 있어요. 글 진짜 많이 올라오거든요. 그런 거 보면서 ‘아, 이렇게 행동하면 이상한 사람 되겠구나. 조심해야겠다’ 많이 느껴요. 내가 가졌던 편견이 여자한테는 어떻게 느껴졌을까 생각하고. 그냥 인간 대 인간인 거지. 그런 거 보면서 이런 거 때문에 상처를 받았겠구나. 이런 행동하면 안 되겠구나 생각하죠.



- 다음 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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