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우리에게 필요했던 건 특별한 기적이 아니었다

커플링을 맞추다

by 봄밤

몽글과 맞춘 커플 반지를 찾는 날이었다. 반지를 살 때 만났던 점원은 보이지 않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반듯이 접어 보관했던 영수증을 건네자 처음 보는 점원이 미소를 보이며 물었다. “남자 친구는 왜 같이 안 오셨어요?” ‘보통 커플’은 남자가 반지를 찾는 걸까? 미처 생각하지 못한 디테일이었다. 반지를 찾는 사소한 행위에서도 나의 성별은 기어코 눈에 띄고야 만다. 난감한 미소로 대답을 얼버무리는 사이 점원은 답을 듣고 싶었던 게 아니라는 듯 몸을 숙여 반지를 꺼냈다. “9호, 11호 맞으시죠?”라고 묻는데 ‘보통 남자’들은 몇 호를 끼나, 반지 치수가 둘 다 작지는 않은가 신경이 쓰여 도망치듯 가게를 나왔다.

나오자마자 후회가 엄습했다. 왜 또 난 당당하지 못했나. 약혼반지가 아닌가. “여자 친구랑 맞춘 건데요?”라고 반문하진 못하더라도, 반지 사이즈 때문에 정체가 밝혀질까 전전긍긍하지 말아야 했다. 이렇게 얼떨결에 ‘이성애자’ 행세를 할 때마다 마음이 개운치가 않다. 동성애자임을 들키지 않으면서도 직접 거짓말은 하지 않으려 애를 쓴다. 기준값, 당연함에서 벗어난 삶은 피곤하다.

글쓰기 수업에서 갓 연애를 시작한 17살 학생에게 “좋겠다”라고 말하니 질문이 돌아왔다. “선생님도 남자 친구 있잖아요?” 난 분명 “애인이 있다”라고 했는데 사람들은 당연히 남자인 줄 안다. 정정할까, 말까. 고민하는 사이 화제는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다. 늘 심각한 건 나다. 한 번은 “좋아하는 이성 스타일이 무엇인가요?”란 질문을 적은 학생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이성이 아닐 수도 있잖아요?”라고 되물었다. “네? 그럼 게이라고요?” 그날 그가 놀라 내뱉은 말보다 입가에 서렸던 묘한 웃음기가 마음에 맴돌았다. 그는 게이라는 말을 하면서 왜 웃은 걸까.

답을 알면서도 선뜻 단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내가 매주 마주해야 하는 학생이니까. 무뎌져야 사는데 막상 무뎌지면 사는 것 같지가 않다. 내게 동성애자로 산다는 것은 별 뜻 없는 질문에 답하지 못해 머뭇거리는 일상을 의미한다. 머뭇거리는 시간은 갈수록 줄지만, 덤덤해지지는 않는다. 이럴 때면 내가 커밍아웃한 사람들하고만 모여 사는 기적이 일어나면 좋겠다. 그곳에는 내 애인이 당연히 남자일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없다. 답이 정해진 질문에 답하느라 쩔쩔맬 필요도 없다. 애인과 함께 있을 때 모욕당하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어디서든 커플 반지를 사고 뽀뽀할 수 있다. 야외 결혼식을 준비하며 안전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상대방의 미세한 표정 변화 하나에 잠을 설치지 않는 내가 그 마을에 산다.

처음에는 약혼반지를 인터넷에서 사려고 했다. 어떤 점원을 만날지 모르는데 기쁜 날 애인과 함께 외상을 입고 싶지 않았다. 말보다 표정이 더 무섭다. 발뺌하기 쉬운 반면, 당한 사람은 오래 남는다. 하지만 화면으로는 어떤 반지가 어울릴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그냥 고르기에는 중요한 반지 아닌가. 결국 애인 손을 꼭 잡고 주얼리샵에 간 날, 나는 시계 코너만 맴돌았다. 잔뜩 긴장한 채 매장을 겉도는 우리를 본 점원이 어떻게 알았는지 물었다. “커플 반지 찾으세요?” 그 말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애인 손을 잡고 매장을 뛰쳐나왔다. 점원의 말은 별 뜻 없이 담백했는데, 그 말을 들은 다른 손님들의 반응이 두려웠다. 다행히 애인도 “여긴 너무 비싸다”며 별말하지 않았다.

그날 우리는 의외로 커플링을 사는데 빨리 성공했다. 두 번째로 갔던 가게 점원은 우리가 반지를 고를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다 적절한 때를 골라 물었다. “두 분이 같은 모델로 하시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에서는 우리가 똑같은 반지를 사는 일이 특별할 게 없었다. 이성애자 커플이 커플링을 맞추는 일이 특별하지 않듯 우리의 커플링도 평범했다. 계산을 하고 돌아서 나오는데 애인이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속삭이듯 말했다. “역시 자본은 편견이 없어.”


그 말을 듣고서야 몽글도 편견 때문에 일어날 일을 걱정했구나 싶었다. 커플 신발을 아무렇지도 않게 신자고 하고, 야외 결혼식을 강하게 주장하는 그는 다 괜찮은 줄만 알았다. 서로 괜찮은 척하느라 애꿎은 에너지를 썼던 우리는 그날 노래방에 가서 ‘다시 만난 세계’를 열창했다.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 이젠 안~~녕!!” 소리를 지르며 온몸에 쌓인 긴장을 풀지 않고는 집에 갈 수가 없었다. 그녀에게는 “그래, 역시 돈은 편견이 없네”라고 답했지만, 난 믿고 싶다. 축복받기 위해 준비한 반지를 사던 날, 우리를 지켜줬던 건 편견 없는 자본이 아니라 편견 없는 마음이라고. 그날 우리에게 필요했던 건 특별한 기적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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