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말고 결연

다정한 할머니 커플을 꿈꾸며

by 봄밤

얼마 전, 몽글과 마트에 갔다. 내가 “에이취”하고 재채기하자 몽글이 내 등을 쓸며 “에이치 했어~”라고 말했다. 그러자 불쑥 계산원이 묻는다. “딸이에요?” 놀란 우린 합창하듯 “아니요”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계산원 왈 “그럼 동생이에요?” 신원 조사하는 것도 아니고 이건 아니다 싶어 그냥 배시시 웃으며 나왔다. 나오자마자 우리는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딸이라니. 몽글은 서른이고, 나는 서른다섯이다. “도무지 여자끼리는 사귄다고 상상도 못 하는 거지” 내가 말했다. 사실 이런 일은 흔하디 흔하다. 사람들은 은연중에 혈연 가족이나 이성애 관계가 아니면 친밀한 사이는 불가능하다고 전제한다. 다정한 우리를 보고 자매냐, 사촌이냐, 심지어 엄마와 딸까지. 사람들의 상상은 ‘정상 가족’의 문턱을 넘지 못한다.


한 번은 몽글의 신용카드를 대신 수령했다. “이주영 씨(가명)랑 무슨 관계세요?”라는 배달원의 질문에 며칠 전부터 준비한 답을 했다. “언니예요.” 그러자 배달원이 손바닥만 한 기계를 내민다. 아뿔싸. 이름 쓰는 란이 보였다. 그녀와 다른 나의 성(姓)을 쓰는 게 큰 잘못처럼 느껴졌다. “저 사실 제가 ‘그냥’ 같이 사는 언니인데요.”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그가 무심히 답한다. “그럼 친척이라고 체크할게요.” 참 별일 아닌 걸 왜 긴장한 걸까. 잘 지내다가도 이럴 때마다 그녀와 내가 바위섬 위에 서 있는 기분이다. 한 발만 내딛어도 망망대해다. 그곳에는 우리가 누구인지, 어떤 관계인지 표현해줄 언어가 없다.


이런 순간마다 자괴감이 드는 건 그들이 아닌 나의 태도다. ‘그냥’ 같이 사는 언니라니. 우리가 어디 ‘그냥’ 같이 사는 사람들인가. 혈연 가족이야말로 ‘그냥’ 같이 살지 않나. 뒤늦은 후회와 수많은 항변이 떠올랐지만 배달원은 이미 저 멀리 떠났다. 생각해보면 성(姓)이 다른 언니, 동생도 얼마나 많을까. 나처럼 ‘정상 가족’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아 카드 수령같이 작은 일 하나 대신하기 어렵고, 마트 같은 일상 공간에서 무시로 신원 조회를 당하며, 정체를 숨기기 위해 수치스러운 거짓말을 반복해야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싶다.


파도가 티 안 나게 바위섬을 깎듯 이런 일상의 차별들은 무심코 몰려와 내 공간을 조금씩 갉아먹는다. 몽글이 소원하는 것 중 하나는 아플 때 법적 보호자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녀는 부모의 허락 없이는 수술을 할 수 없는 자신이 정말 성인인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가족을 구성할 권리는 이성애자들만 가지고 있다. 아니 엄밀히 말해 다른 성을 가진 둘만 합의하면 사랑하든 안 하든 혼인 신고를 할 수 있다. 그 외에 친구나 동성 연인 등은 아무리 친밀한 관계라도 가족이 될 수 없다.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는.


가족을 구성할 권리가 없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 상속권, 입양권, 병실 접견권, 국민연금과 의료보험을 비롯한 각종 보험의 수령권, 배우자 수당과 소득공제, 경조사 휴가 등 배제되는 것을 나열하자면 끝도 없다. 원가족의 반대로 파트너의 장례식에 가지 못하거나, 유품을 소지했다는 이유로 절도죄로 고발된 사례도 있다. 일상적 차별도 다반사다. 내가 몽글과 겪는 소소한 갈등을 말하면 친구들은 “야, 그럴 바에 헤어져”라고 쉽게 말한다. 하지만 시어머니와 갈등 끝에 남편과 대판 싸운 친구에게 “야, 헤어져”라고 내가 말한다면? 동성애자인 나의 이별은 왜 더 쉽다고 생각하는 걸까. 친구들과 나의 관계는 결코 동등하지 않다. 마찬가지로 많은 정치인들이 동성애 결혼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라고 말하지만, 이성애자인 그들은 정작 나와 아무런 합의 없이 결혼했다.


몽글과 동거를 결정하고 설레던 마음으로 이사하던 날, 집주인 할머니는 말했다. “이 집에서 성공해서 각자 결혼해 나가요” 여자 둘이 사는 건 불완전하다는 시선이 끈질기게 우리를 따라붙는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결혼’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고민하던 난 결혼의 어원을 찾아봤다. 충격을 받은 난 몽글에게 말했다. “결혼의 혼이 혼인할 혼인데, 옛날에는 결혼을 밤에 해서 여자가 어두운 데서 남편을 기다리는 걸 형상화한 글자라네. 우리가 ‘결혼’하는 게 맞는 걸까? ” 나의 장황한 설명을 들은 몽글은 간단히 답했다. “그럼 우리는 결연하자. 결연식!” 결연, 인연을 맺다. 단순하고 좋은 단어였다.


결연식. 그 단어를 떠올리며 난 생각한다. 바위섬이 다리 뻗고 누워 살만 한 섬이 되려면 그만한 누적과 퇴적의 시간이 필요하겠지. 우리는 무엇을 누적해나갈까? 기존의 이성애 정상가족이 담아내지 못하는 우리의 경험과 일상, 그리고 새로운 언어들을 쌓으며 살아야지. 그렇게 터전도 다지고, 다리도 놓고, 사람들과 만나며 살고 싶다. 그녀와 나의 꿈은 다정한 할머니 커플이 되는 것이다. 누군가 “왜 같이 사냐?”라고 물으면 여유 있게 웃으며 주름진 볼에 뽀뽀하는 그런 할머니 말이다.



이전 09화내 애인은 F코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