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이 그저 병인 세상
10년 전, 반년 만에 몸무게가 10kg이 빠진 적이 있다. 별다른 계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음식을 봐도 식욕이 돌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 있으면 창 밖으로 뛰어내리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사람들과 만나면 이런 날 알아볼까 두려워 심장이 쿵쾅댔다. 인터넷 창을 열어 '정신과 진료비'와 '우울증 진단비'를 검색했다. 당시 백수였던 나는 무모하게도 병원을 가는 대신 '우울한 생각이 꼬리를 물 때 생각을 끊자!'라고 결심했다. 돈도 돈이지만 정신과 진료 기록이 남는 게 두려웠다.
그렇게 난 우울증을 스스로 이겨냈다고 믿었다. "인문학은 우울증을 약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이겨내는 힘을 길러준다"는 한 지식인의 말을 신봉하며 몽글에게 우울증에 대한 책을 여럿 건네기도 했다. 부끄럽지만, 고백컨대 당시 난 우울증은 생각하는 힘이 약해서 오는 거라고 믿었다. 매일 수면제와 항우울제를 먹고 잠드는 몽글에게 "약 끊으면 안 돼?"라는 말을 심심찮게 던진 것도 그 때문이었다. 약에 의지하는 것보다 스스로 이겨내는 편이 우울증을 극복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정작 몽글이 약을 끊자 "다시 먹자"라며 설득한 건 나였다. 며칠 째 못 잔 두 눈은 쾡했고, 말을 걸어도 듣는 둥 마는 둥, 어떤 자극에도 반응이 없었다. 웃지도 울지도 않는 몽글은 마치 허물만 남은 빈 껍데기 같았다. 그나마 약을 먹어 몽글이 내 말에 웃기도 하고, 내 이마를 다정하게 손으로 쓸어줬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우울증은 병이었다. 나는 정신력으로 우울증을 이겨낸 게 아니라, 운이 좋아 감기처럼 앓고 지나갔던 것이었다. 그녀가 심장병이나 당뇨병을 앓았다면 약을 끊고 정신력으로 이겨내라는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몽글이 인권단체에서 일할 때였다. 어느 날 사무국장에게 "공황장애를 앓고 있어요."라고 말했더니 그가 깜짝 놀라며 말했단다. "네? 그건 진짜 정신병이잖아요?" 그의 머릿속에 진짜 정신병과 가짜 정신병의 어떻게 분류되는지 모르겠지만, 몽글은 고백을 철회하고 싶었단다. 몽글이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앓고 있다는 말을 들은 내 친구는 말했다. "너 그거 사랑 아니고 동정이야." 그래도 최근 몇 년간 연예인들이 줄줄이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앓고 있다고 말하며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예전에는 예민하고 특수한 사람만이 앓는 병이라는 인식이 있었다면 지금은 누구나 걸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역시 말하기는 힘이 세다.
병원에 다녀올 때마다 몽글은 영수증에 찍힌 F코드를 보며 한숨을 쉰다. "보험은 안 되겠네." F코드는 정신질환 질병코드이다. 5년 전까지만 해도 F코드 이력이 있으면 사보험 가입을 거절당했다. 지금은 몇몇 F코드 질병은 보험 가입이 되지만, 몽글은 이미 병력이 있어 보험 처리가 되지 않는다. 몽글이 조종사나 국정원 요원, 청와대 주요 직원이 될 확률은 희박하지만, 만약 되고 싶다고 해도 F코드 이력이 있어 입사할 수 없다.
최근 몽글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친구들과 모여 '코드F'란 모임을 결성했다. "왜 F코드가 아니고 코드F야?"라고 물으니 그게 더 간지가 나고(?), 무엇보다 F코드는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F4를 연상시켜 싫단다. 더 대박인 건 그 모임에서 몽글의 별명이다. 카톡에 선명히 뜬 "연탄재아가씨'라는 글자를 보고 나는 뒷목을 잡았다. 연탄을 피워 자살 시도한 걸 이렇게 희화화할 수 있다고? "아가씨는 또 뭐야? 너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아!" 외치는 내게 몽글은 웃음으로 화답한다. "자기야, 올바르지 않아서 재밌는 거야."
코드F 카톡방에는 주로 고양이, 강아지 사진이 올라온다. 다들 각자가 길에서, 보호서에서 구조한 유기묘, 유기견들이다. 추석 때 몽글이 하수구에서 구조한 손바닥만 한 아기 고양이는 '애기위아가씨'(약을 먹고 자살 시도를 해서 위세척을 많이 했다는 이유로 붙은 별명이다. 듣고 역시나 난 뒤로 자빠졌다.)네 집으로 입양 갔다. 강아지 등에 올라탄 아기 고양이 사진을 보며 몽글은 까르르 넘어간다.
'애기위아가씨'는 몽글이 입원할 때 나에게 '폐쇄병동' 생활이 어떤 것인지 그려지게 설명해주어 안심시켜줬던 고마운 친구다. 서로 약 기운에 일어나지 못할 때는 모닝콜도 해준다. 죽고 싶다는 얘기도, 약을 끊고 싶다는 말도, 다시 입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도, 우다다 하는 강아지 영상처럼 일상적으로 오고 간다. 그저 가만히 듣다 "나도 그래"하는 이가 있는 동병상련의 공간. 정신질환이 그저 병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가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